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78)-국가는 사회계약의 산물이다
토머스 홉스(1588~1679)의 <리바이어던>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현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와 국가체제의 당당한 성원이 된다. 물론 주권을 가진 국가에 태어날 경우에 그렇다. 이미 국가가 형성된 사회에 태어나는 이는, 특별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기성 사회체제의 작동 원리를 체험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자신과 가정을 보호해 줄 제3의 초월적 권력, 즉 국가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개인 간에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경쟁에서 불거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 사이의 어떠한 타협이나 계약에 의한 위임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미 사회와 국가의 진화된 운영체계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의 경쟁과 갈등을 조정해 줄 기제가 없는 사회, 즉 통치자가 없는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빚어질까? 이들 사이의 무한 경쟁과 갈등은 끝이 없는 투쟁을 빚어낼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인간의 이성적 노력의 산물이 곧 국가다.

일찍이 이러한 사회와 국가의 생성 원리와 과정, 국가를 움직이는 권한의 원천과 주체, 그리고 바람직한 운용체계에 대해 근원적인 고민을 던졌던 사람이 바로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이다. 그의 통찰의 산물이 <리바이어던(Leviathan)>(1651)이다.

<리바이어던>에서 홉스가 제시하는 자연법과 자연권의 사상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시의 정치사회상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저술하게 된 현실적 의도와 그의 심오한 사상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홉스가 태어난 시기의 영국은 절대왕정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다. 당시는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이 풍미했다. 스튜어트가의 제임스 1세에 의해 창도된 왕권신수설의 신봉은 왕의 절대 권력을 강력히 옹호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왕권신수설을 계승한 찰스(Charles) 1세의 폭정은 귀족과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이로 인해 민심이 흉흉한 혼란기가 지속되었다. 특히 1215년 대헌장이후 과세와 전쟁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 의회가 점점 무력화되면서, 그동안 축적되어 온 왕당파와 의회파의 갈등과 대립이 극심하게 분출되었다.

   
▲ <리바이어던>(1651년) 초판 속표지.

이러한 잠재적 요소들은 결국 청교도 혁명과 3차례의 내전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이 결과 영국 역사상 최초로 백성에 의해 국왕(찰스 1세)이 처형되고, 크롬웰의 독재공화정이 실시되었다. 이후 찰스 2세의 왕정복고 등 혁명과 반동이 연속되는 격변기가 이어졌다.

토머스 홉스도 이 격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한때 찰스 2세의 어린 시절 ‘황태자의 스승’이 되기도 했지만, 왕당파의 일원으로 분류되면서 프랑스 망명했다가 귀환하였다. 하지만 왕정복고 이후에 출판한 <리바이어던>, <시민론> 이 왕당파로부터도 비판받고 금서로 지정되는 등 현실정치세력에게 철저하게 배척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리바이어던>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인간에 대하여’, 제2부 ‘코먼웰스에 대하여’, 제3부 ‘그리스도교 코먼웰스에 대하여’, 제4부 ‘어둠의 나라에 대하여’로 나누어 기술되었다.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제3부와 제4부는 하나님 왕국의 권력과 작동원리에 대한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이 부분에서 교황이 국가의 통치권을 가질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종교와 기독교 성서의 해석에 대한 내용을 주로 기술했다. 따라서 현대에는 잘 읽히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국가와 중세 기독교와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홉스의 자연법과 자연권 사상의 내용, 리바이어던의 탄생과 운용원리의 중요한 논점은 제1부와 제2부에 담겨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담긴 내용을 이 책의 핵심사상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제1부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 내는 다양한 개념 하나 하나를 정의하고 있다. 인간의 감각과 심상, 갖가지 정념과 언어, 그리고 추론과 학문, 담론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덕과 결함, 지식의 주제, 힘과 명예, 생활태도와 종교, 그리고 자연 상태, 자연법, 인격 등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제1부의 13장~16장에 그의 자연법사상의 핵심이 담겨있다. 홉스는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능력의 평등’이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한 ‘희망의 평등’을 낳고, 목적 달성의 경합이 불신과 전쟁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특히 인간의 본성 중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세 가지 주된 원인을 경쟁(competition), 불신(diffidence), 공명심(glory)으로 꼽았다. 상대에 대한 불신과 경쟁이 격화되다보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가 된다.

하지만 홉스는 인간의 이런 본성을 비난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이득과 안전, 공명심을 위해 공격자가 되고, 가족과 재산을 지키고, 자기 방어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적인 상태’는, 모두가 두려워할 만한 ‘공통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불가피한 인간의 생활양식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만인은 자연적으로 모든 것에 대하여 권리를 갖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바로 ‘자연법(Law of Nature)’ 태동의 실마리가 된다.

홉스는 제1의 자연법으로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따르라’고 제시한다. 또 제2의 자연법으로 ‘평화와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한, 자신이 타인에게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결국 인간 간의 전쟁상태를 막기 위해 일정부분 자신의 권리를 양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일은 너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자연스런 사람의 법(자연법)’이 된다.

하지만 모든 권리를 양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명보존을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에도 저항할 권리는 누구도 포기할 수 없다. 즉 불가양(不可讓)의 권리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 간의 계약(covenant)을 통해 권리의 양도가 가능하고 행위자들을 구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홉스는 인간의 화합은 오직 이러한 인위적인 계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자연히, 이러한 계약들을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공동이익’에 맞도록 지도하는 ‘공통 권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에 따라 다수결에 의해 모든 권력을 ‘한사람’ 또는 ‘하나의 합의체’에 ‘공통 권력’을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공통 권력’이 탄생하게 되는 원인과 형성의 근거가 된다.

‘공통 권력’은 이러한 사회계약의 산물이다. 곧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된 통일체, 즉 코먼웰스(Commonweath, 공화정체), 라틴어로 키비타스(Civitas, 국가)라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이 탄생한다. 리바이어던은 많은 사람들이 서로 계약을 맺어 세운 하나의 인격체, 즉 ‘인공 인간(artificial man)’이다.

제2부에서 홉스는 이 리바이어던의 속성에 대해 자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는 인공구조체 리바이어던을 인간에 비유했다. 홉스는 주권자 리바이어던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과 기능을 인체에 각 부위의 기능에 비추어 설명한다.

주권은 온몸에 생명과 운동을 부여하므로 인공의 혼이다. 행정가와 사법관리는 인공관절에 해당한다. 상벌은 모든 관절과 팔다리를 주권자와 연결시켜 그 의무수행을 위해 움직이게 하므로 자연인의 신경과 같다. 부와 재산은 코먼웰스의 체력이다.

리바이어던은 인공의 이성과 같은 공정과 법률로서 신민을 다스려야 한다. 이러한 ‘인공 인간’이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 토지와 산물이 영양제로 주어져야 하고, 화폐는 혈액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홉스는 주권자의 권리와 백성의 의무와 권리를 비교 설명한다. 그는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한 리바이어던에게 전제군주적 권능을 부여하고, 백성에게는 ‘신의계약’의 준수로서 복종을 요구한다. 이는 ‘평화를 바라고 추구하라’는 제1의 자연법의 원리에 당연히 부응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서로 계약을 맺어 세운 리바이어던에 대한 ‘복종’은 위임자들이 주권자에게 보여주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이런 측면에 주목한 나머지 혹자는 홉스가 전체주의자나 절대왕정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홉스는 국민의 자유와 주권자의 무한권력이 양립한다고 보았다. 국민은 비록 공통 권력으로서 주권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일정부분 양도하였지만, 자기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도록 구속받지는 않으며, 주권을 규정한 목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면, 복종을 거부할 자유를 갖는다고 말한다.

나아가 주권자에게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이 존속하는 한 복종해야 하지만, 아무도 보호해줄 자가 없는 경우, 즉 후계자가 통치권을 포기한 경우, 주권자가 다른 사람의 국민이 되는 경우에는 ‘자기보전의 자연적 권리’에 따라 국민은 복종의 의무에서 면제된다고 보았다.

이는 주권자를 탄생시킨 사회계약의 효력이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권리와 의무의 존속과 이행의 신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백성들의 ‘자기 방어권’, ‘자연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홉스가 탄생시킨 리바이어던은 왕권신수설에 의한 절대주의 주권자인 군주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절대주의 군주는 그 권능을 ‘신’으로부터 전수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비해, 리바이어던은 사회구성원들의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한 인공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인공인간은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다양한 정체 속에서의 한 사람의 주권자이거나 합의체의 주권자일 수도 있다. 또 설사 군주로서의 주권자라고 할지라고 절대군주와는 주권의 탄생시킨 주체와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물론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비참한 내전을 종식시키고 청교도 혁명을 이끈 새로운 주권자인 크롬웰의 공화정에게 평화와 질서의 확립을 명분으로 한 강력한 독재정치와 백성의 복종을 정당화해주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1660년 찰스 2세의 왕정복고 이후에는 왕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민의 계약으로부터 나온다는 홉스의 주장은 왕에게는 반역적 주장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더구나 국민의 자기 방어권을 주권자의 통치권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는 홉스의 위험한 자연권 사상을 받아들이기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리바이어던>이 금서로 지정된 까닭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관점으로 보면, 리바이어던은 지나치게 전제적 권력을 가진 국가체계를 옹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끊임없는 내란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진 17세기 중반 영국 사회에서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는 일은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였다. 홉스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백성의 정당한 위임을 받은 평화롭고 강력한 국가의 탄생을 희구했다. 리바이어던은 이러한 홉스의 혁신적 정치 철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고전의 생명력을 갖게 된 이유는 ‘사회계약’을 바탕으로 국가체계의 생성과 작동의 원리를 보편적인 자연법과 자연권 사상으로 설계해 내었다는 점이다. 그의 자연법사상은 스피노자,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존 스튜어트 밀에게 이어지며 17~18세기 정치사상계의 한 획을 긋게 되었다. 특히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사상을 바탕으로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사상의 근간에까지 맥을 잇고 있다고 하겠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지음, 진석용 옮김, 나남(2008), 5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