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문제 제기 감사팀장 전보·친위 특조팀·성추행 논란에는 함구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 말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이다. 한비자의 내저설 편과 전국책의 위책 혜왕편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전국시대 위나라 방총이 조나라에 인질로 가는 태자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면서 혜왕에게 묻는다.
“한 사람이 달려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임금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왕은 당연히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러자 방총은 또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해도 안 믿겠냐고 묻자 왕은 역시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세 번째로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이 말하면 믿겠냐고 묻자 혜왕은 그 때는 믿는다고 답했다.

방총은 “시장에는 분명 호랑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호랑이가 만들어집니다(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까지 중상모략에 휘둘리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방총은 결국 중상모략을 당해 위나라 조정에 복귀하지 못했다.

세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없던 호랑이도 생긴다는 고사처럼 정말 세 번 거짓말을 하니 있던 사실도 없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이 성추행 피해학교에 감사를 가서 음주감사와 부하직원 성추행을 했다는 논란이 인 김모 감사관 문제를 덮은 과정에 대한 얘기다.

   
▲ 김형남 감사관은 지난달 26일 술을 마신 채 피해 여교사 4명을 면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서울시의회가 지난 19일 개최한 교육위원회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사실로 확인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첫 번째 거짓말은 음주감사 문제가 제기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감사관실에 근무하던 직원들이 감사관의 음주문제를 제기하고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시교육청에서 급히 진화에 나섰다. 시교육청의 거짓말에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 마치 시교육청이 스스로 감사관에 대한 조치를 한 것처럼 보도됐다.

그러나 첫 번째 거짓말만으로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았다. 곧이어 사실이 밝혀졌다. 시교육청이 업무에서 배제한 것은 감사관이 아니라 음주감사 문제를 제기한 감사팀장이었다. 문제가 일어나자 즉시 감사팀장을 전보 발령낸 것이다. 감사관은 직을 보전했을 뿐 아니라 성추행 피해학교 감사업무를 계속 총괄하면서 현장 감사만 안 나간 것이었다.

일부 언론이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고 서울시교육청 일반직 공무원 노조가 감사청구까지 하겠다고 나서자 조희연 교육감이 직접 나서 두 번째 거짓말 카드를 꺼내들었다.

조 교육감은 10일 대책회의를 열었고, 그 결과 특별조사팀을 투입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조 교육감의 사람인 김 감사관을 시교육청 자체조사로 조사해봐야 ‘셀프조사’가 되기 십상인 일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만 했으면 거짓말이라고까지 말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교육청이 조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인다며 감사관실 직원들을 배제하고 외부 전문가들을 포함시켰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외부 전문가의 명단이 조 교육감, 김 감사관과 인연이 깊은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공정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김일병 구하기를 하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었다. 세 명의 외부 인사는 오성숙 상근시민감사관,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이지문 한국공익신고지원센터 소장이었다.

오 감사관은 조 교육감이 규정에도 없는 자리를 새로 만들어 데려온 역대 진보교육감 선거공신이다. 박봉정숙 대표는 조 교육감이 한국사회포럼2006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일 때 집행위원을 지냈고, 조 교육감과 김 감사관이 거쳐간 참여연대 활동도 함께 했다. 이지문 소장 역시 조 교육감의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시절 참여연대 병역비리 시민옴부즈만을 지냈다. 또 다시 시교육청이 스스로 김 감사관을 잘 조사할 것처럼 거짓말한 것이다.

그러나 외부인사들의 전력과 관계가 드러나고, 김 감사관과 피해학교 여교사들의 부적절한 술자리 얘기까지 나오자 세 번째 거짓말이 이어졌다.

12일 시교육청은 김 감사관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에 정식으로 요청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을 감사원에 넘기고 공정한 조사를 받겠다는 모양새였다. 김 감사관이 특별조사팀을 지휘하는 부교육감을 감사하겠다고 했다는 둥 불러도 가지 않았다는 둥 통제가 어려웠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거짓말의 신빙성은 더 높아졌다.
그러나 사실 김 감사관의 음주감사와 성추행에 대해서는 이미 서울시교육청 일반직노조가 이틀 전인 10일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를 접수해놓은 상황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감사 청구를 하지 않았어도 감사받을 일이었다. 어차피 감사받을 거 시교육청은 공정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이미지라도 챙기자고 의미 없는 감사 청구를 한 것이다.

물론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조에서는 반영해주지 않았던 감사관의 주장을 담아 감사팀의 다른 직원들에 대해서도 조사해달라고 했다. 말하자면 김 감사관을 대신해 맞고소까지 해 놓고 오히려 감사관에 대한 감사 청구를 한 것처럼 발표한 것이다.

그래도 세 번의 거짓말이면 시장에 없던 호랑이도 생긴다. 김 감사관을 공정하게 조사하겠다는 의지가 없어도 세 번 그런 것처럼 거짓말을 하면 사람들은 믿는다. 시교육청이 김 감사관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는 발표 이후 주요 언론에서는 김 감사관의 성추행 등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논란의 후속기사는 보도되지 않았다.

김 감사관이 계속 직무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국민교육감시단의 성명이 나왔지만 본지를 제외하고 이를 보도한 곳은 없었다. 김 감사관은 교육청이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는 다음날에도 피해학교 감사 관련 녹취록 작성을 외부 법무법인 등에 위탁하겠다면서 지출 계획 변경을 요구하는 서류를 결재했다. /박남규 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