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명분 없는 몽니다. 의사 파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칠 것 없이 폭주하는 의료진들의 파업은 문제다. 사고에 연유해서든 아니든 그 생명을 살리는 일은 의사의 의무다. 그렇기에 지금껏 사회가 도덕을 요구하든 윤리를 요구하든 그러하지 않든 존경 받는 위치에 있었다.

지난 6일 의대 지원자를 2000명 늘리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 70% 이상이 사직서를 냈다. 뒤따르는 대학 후배들도 속속 동맹휴업을 강행한다. 아직 의사가 되기도 전이다. 이런 문제를 20년 이상 수수방관해 온 정부의 책임이 온전히 부끄러운 자화상을 드러냈다. 

현실과 미래를 외면한 채 달콤한 과실을 꿈꾸는 갑질.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의 배수진울 치는 이들에게 도덕이 있을까? 쏟아지는 비난이다. 강변할 거다. 도덕과 윤리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고. 맞고 틀리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의료계 의대 정원 확대는 오랜 과제다. 1998년 이후 27년간 정원 확대는 ‘제로’다. 2000년과 20006년 사이 351명이 감축된 후 19년간 정체다. 27년간 단 한 명도 늘어나지 않은 의대 정원이다. 의약분업(2000년), 취약지역 비대면 진료(2014년),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증원(2020년) 등 ‘밥그릇 싸움’에서 승리(?)했다. 

의료 인력 확대를 막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한국만의 이야기다. 선진국들은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해 의사 수를 늘리는 추세다. 독일은 공립 의대 정원이 9000명이 넘지만 1만5000명 가량으로 늘리기로 했다. 영국도 8639명을 뽑지만 2031년까지 1만50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의사 수가 4만3000명가량 늘어났다. 

   
▲ 지난 6일 의대 지원자를 2000명 늘리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 70% 이상이 사직서를 냈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 증원 반대 포스터가 부착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다른 선진국 대비 의사가 절대 부족하다.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는 2021년 기준 2.6명(한의사 포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2.5명)를 빼면 가장 적다. OECD 평균 3.7명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 명당 7.3명으로 이스라엘(6.8명), 일본(7.2명)에 이어 세 번째로 적다.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늘어날 게 뻔하다. 보건복지부는 "2035년이 되면 의사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복지부가 지난해 전국 40개 의대 대상으로 정원 확대 수요를 조사했을 땐 2025학년도에 최소 2151명, 2030학년도에 최소 2738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왔다.

각 대학들이 올린 증원 가능 인원의 결과치는 최대 2847명이다. 2030년까지 3953명을 늘리고 싶다고도 했다. 희망 인원을 이처럼 올린 건 전국 40곳 의대 학장 협의회다. 이들은 문제가 불거지자 2000명은 불가능이고 350명 운운한다. 눈치보기에 윤리불감증이다. 

파업에 나선 이들은 정부의 불통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계 입장을 반영하여 의료현안협의체를 운영하며 28차례 논의했다. 의료계는 의대정원 확대 전제 조건으로 수가 인상, 의료 사고 부담완화, 근무 여건 개선을 패키지로 담아 정부에 요구했다. 이후 증원에 답하지 않자 정부는 의료계 및 사회 각계 각층과 130여 차례의 의대 정원을 논의해 증원 결정을 내렸다.

한국은 내년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0%를 초과해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한다. 2035년이면 그 비중이 30%를 넘어설 전망이다. 당연히 의사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으면 2035년까지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정부 계획대로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최대 1만명의 의사가 확충될 뿐이다. 여전히 5000명이 부족한 셈이다. 그런데도 전공의들이 이를 빌미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며 사실상 파업에 들어갔다. 윤 대통령은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은 안된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벌이는 의사들의 협박에 정부는 더 이상 굴복해서는 안된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의사보다 모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한다는 헌법에 따라야 한다. 천재지변 상황에서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최우선이다.

현실의 의료대란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운운하는 건 사치다. 문제는 의료진의 절대 부족 현상을 의료계에서 인정해 왔음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 해결보다 옷부터 벗고, 사직서 내고, 환자를 외면하는 ‘슈퍼 갑’의 비인간성이다. 불편하다.

비대칭적인 의료현실은 국민 모두가 느끼고 있다. 의대 증원은 국민 절대가 동의하는 사안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다. 

국민 10명중 9명이 찬성하는 의대 증원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배경엔 학습효과가 자리해 있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에서 의사들은 의약분업은 못 막았지만 의대 정원을 10% 감축하고 수가를 대폭 올리는 요구 사항은 관철했다. 이후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돼 왔다. 

2020년에 정부가 의대 정원을 400명 늘리려 했으나 전공의 70%가 한 달가량 파업을 이어 갔고, 코로나19로 환자 피해가 속출하면서 손을 들었다. 당시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전공의와 전임의들을 고발했으나 의료계 요청에 밀려 결국 취하했다. 

이런 선례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의사들의 비뚤어진 인식을 낳았고 국민을 볼모 삼은 집단행동을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다. 무조건 의사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 사각 해소와 미래 의료를 그려나가야 할 큰 그림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학습효과는 과거다. "환자를 외면하는 의사는 결코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의사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다.

"의사는 환자 곁을 떠나선 안된다. 가운을 벗는 순간 의사가 아니다." 어느 환자의 절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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