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북한에 전수 대동강의 기적 이끌어 내야
   
▲ 허경회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겸임교수

통일시대는 통 큰 정부가 연다

8.25 남북공동합의문. 무박4일 43시간의 울트라 마라톤협상 끝에 남북고위급이 내놓은 성과물이다. 잘했다. 비록 아직은 문서에 불과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최대 성과라 할만하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문제다. 이 문서를 불쏘시개삼아 남과 북의 온돌방을 따뜻하게 지펴가느냐, 아니면 휴지조각삼아 다시 냉골로 돌아가느냐. 선택의 절반은 적어도 우리 몫이다. 바른 선택을 위해 차분하게 이번 합의문을 뜯어보자. 꼭 읽어야 할 3가지가 있다.

첫째, 북은 지뢰 폭발에 대해 사과를 하였는가. 이는 대통령이 직접 “사과 없이 타결 없다.”고 한 만큼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답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이다.

‘사과’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를 뜻한다. 그런데 남북합의문 2항을 보자.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함.”이다. 문맥은 우리에게 북과 지뢰 폭발 간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다만 자기네와 상관은 없지만 불상사가 일어났으니 유감, 즉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밝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북에 돌아간 황병서는 남조선 당국이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었고” 이번 북남 긴급 접촉을 통해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번 합의문 2항은 북이 그러한 내부 선전을 하는 데 좋은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 통 큰 정치, 통 큰 정부는 원래 내 것을 고집하지 않는 법이다. 남의 아이디어라도 내가 이루면 나의 업적이다. 박근혜 정부에게 바란다. 통 큰 정부가 되라. 통 크게 ‘한강의 기적’을 북에 전수하여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라.

둘째, 그러면 8. 25 공동합의에 이르지 말았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처럼 북의 내부 선전에 이용당하는 일을 감안하더라도 의당 했어야 했다.

세상에 내게 100점짜리 협상이란 없다. 협상 자리에서 주는 것 없이 100퍼센트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자리를 잘못 고른 것이다.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전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전쟁이 최선의 선택일까. 전쟁은 가장 고비용 저효율의 방책이다. 최선이 아닌 최후의 수단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통일은 내년에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 대통령이다. 협상 중에는 협상 가이드라인으로 ‘사과’를 설정했던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이 ‘사과 없는 합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잘못한 것인가. 전혀. 아니 잘했다. 백번 잘한 일이다. 확성기 방송 중단은 현찰이다. 현찰을 내주고 그 대신 뚜렷이 얻은 소득이 있는가. 없다. 이번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한다는 어음 정도이다. 밑진 장사를 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동합의에 박수를 보내는 까닭은? 하나다. 5. 24 조치 이래 5년여 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는 남북의 창에 입김을 불어넣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채산에 연연하지 않고 내일의 채산을 따져보는 안목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셋째, 그런 내일의 안목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과 북은 이번 고위급 접촉을 계기로 남북 간 당국 회담을 정례화하고 체계화해 가자는 데 뜻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매우 소중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통일시대를 여는’ 정부이고자 하는 현 정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의 장일 터이다. 주문이 여럿, 많다. 정부 안에서는 박 대통령의 작년 3월 ‘드레스덴 선언’과 올해 8. 15 경축사에서 내놓은 대북 제안을 의제로 올리겠다는 복안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 실현이 되면 의미 있는 제안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제안을 보면 북으로선 문자 그대로 ‘유감’을 표명할 만하다. 북의 눈으로 보면 섭섭하고 불만스러운 점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를 헤아리지 않고는 남북 간 당국회담은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얼어붙은 냉골에서 만나 얼어붙은 창에 입김을 불어보고 헤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 남과 북이 이런 소모적인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 통일로 향한 동행의 길로 가자면?

   
▲ 지금 우리에게 전쟁이 최선의 선택일까. 전쟁은 가장 고비용 저효율의 방책이다. 최선이 아닌 최후의 수단이다./사진=연합뉴스

우리 사회 내에 ‘대동강의 기적’이 유효한 통일 해법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는 다른 게 아니다. 우리가 이룬 ‘한강의 기적’을 북에 전수해 북의 경제 성장을 실질적으로 돕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북이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 때가 되면 통일을 실현시켜 가자는 구상이다. 금년 3월 좌승희 교수가 민주평통 평화통일대토론회에서 발제한 것을 이번 8. 15 광복 70주년 기자회견에서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대표가 이어받고 있다. 통 큰 정치, 통 큰 정부는 원래 내 것을 고집하지 않는 법이다. 남의 아이디어라도 내가 이루면 나의 업적이다. 박근혜 정부에게 바란다. 통 큰 정부가 되라. 통 크게 ‘한강의 기적’을 북에 전수하여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라. 그것이 ‘통일시대를 여는 정부’의 할 일이다. /허경회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