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개발 이끌어 내는 것이 평화통일의 새로운 길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폭넓은 학술활동을 통해 기업정책 및 경제발전 연구에 매진한 ‘기업경제’ 전문가다. 좌승희 석좌교수는 주류경제학이 놓쳐온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장 업적을 삼위일체 경제발전론으로 재해석한다.

이와 더불어 좌승희 석좌교수는 오늘날 통일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 지배층을 배제하려는 통일보다는 김정은 정권이 북한 경제체제의 변화를 자발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선택지를 제안한다. 과거 대한민국이 이루었던 ‘한강의 기적’, 박정희 시대의 기업부국패러다임을 북한에 적용하여 ‘대동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음을 밝힌다.

좌승희 석좌교수는 진정한 통일대박을 위해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철저히 경제발전 원리-경제적 차별화-에 충실할 것을 주문한다. 미디어펜은 광복70주년, 한일국교50주년기념 한일공동주최로 열린 14회 동아시아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대동강기적의 새 통일패러다임”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첫 번째 연재다. [편집자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미디어펜 회장

1. 문제의 제기

1988년 남북경협이 시작된 이래 특히 김대중정부 이후 ‘햇볕정책’기조 아래 남북경협이 확대일로를 걸어왔고 2004년에 들어서 개성공단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남북경협은 진일보하는 뜻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이명박 정부에서는‘비핵ㆍ개방ㆍ3000’이라는 기조 하에, 지금의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론’을 제기하면서 지속적으로 통일을 위한 남북한 관계개선의 의지를 표명해왔지만 천암함 사태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가시적 진전전망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동안 “햇볕정책”이나“비핵ㆍ개방, 3000”등 북한의 발전을 돕겠다는 그 많은 제안들이 왜 북한을 실질적 남북협력으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가?

이 글은 오늘날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그 동안의 대북협력제안들이 그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소위“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전제하에 북한의 정치경제체제의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 “옷 벗기는 정책”으로 궁극적으로 북한 지배층의 구축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의 지배세력을 구축할 수밖에 없는 소위“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전제하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려는 반북제안(?)들을 북한당국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개발연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정주영 현대창업주, 이병철 삼성창업주, 박정희 대통령(왼쪽부터). 한국은 개발연대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과 아주 양호한 동반성장을 달성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동반성장을 실현하였다(World Bank, 1993). 박근혜 대통령 뿐 아니라 북한 김정은 정권도 과거 대한민국의 이러한 동반성장 과정과 그 원리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이 글은 그럼 북한의 주민과 지배층, 그리고 한국의 이해가 같이 갈 수 있는 모두 함께하는 북한 경제개발과 평화통일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이 글은 북한이 한강의 기적을 교훈삼아 대동강 기적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북한 경제개발과 평화통일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동안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한 제안들이 많았지만 사실상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채택하기가 어려운 경우이거나 정책의 성공노하우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되어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글은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한강의 기적의 성공노하우를 새롭게 해석해냄으로써 대동강기적의 구체적 실현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따라서 이글은 단순히 대동강 기적의 새 통일 패러다임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그 성공 노하우를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통일패러다임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북한 지배층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의구심이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하였다.

2절에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치경제체제하의 통일전략이 갖는 현실적인 그리고 원리상의 문제점을 논하고, 3절은 그 대안으로서 대동강기적의 새 통일패러다임을 제안하고 그 기대효과를 제시한다. 4절과 5절에서는 대동강기적의 모델로서 한강의 기적의 성공원리를 새롭게 규명하고 대동강기적모델에 대한 시사점을 논의한다. 6절에서는 대동강기적의 성공을 위한 북한의 정치경제체제선택과 주요 경제정책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7절은 대동강기적 후의 북한경제와 한반도 통합경제의 비전을 생각해 본다. 마지막 8절에서는 북한이 직면한 새로운 선택지로서 대동강기적패러다임의 의의와 이의 실현을 위한 선결조건으로서 발전친화적 리더십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 인류는 19세기 산업혁명과정에서 오늘날의 유한책임주식회사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인 기업조직을 발명하였다. 이 조직이 지난 200여년의 세계경제의 산업화와 발전을 이끌고 있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를 위시한 현대, LG, SK 등의 대기업집단이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중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도 시장친화적 친기업적 제도가 완비된다면 이러한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다./사진=미디어펜

2.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발전”의 황금조합,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체제와 통일의 헌법적 질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헌법 제119조>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그 동안의 모든 남측의 통일논의는 바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질서를 전제로 전개되어왔다. 정치체제로서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경제체제로는 제 119조 ①항의 “시장경제질서” 규정이 대한민국의 남북통일에 대한 접근의 기본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경제학계의 남북경협이나 통일문제 논의에서, 정치체제나 이념을 사상(捨象)하는 경제학의 특성상, 민주주의를 전제 혹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경우나 혹은 비민주적 정부도 허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없지 않으나 정치학계의 경우는 민주주의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2)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통일의 전제가 갖는 현실적 문제점

① 원리상의 문제

<민주주의의 기본이념과 시장경제의 본질은 항상 충돌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이념은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데 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법 앞의 평등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경제적 결과의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장치이다. 민주주의는 개인 간의 평등한 수평적 관계를 달성하려 노력하지만 시장경제는 궁극적으로 경제적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즉 경제적 사다리를 세우는 장치이다.

그런데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일인 일표의 다수결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정치가 경제정책기조결정에 개입하면서 경제정책이 법 앞의 평등을 넘어 기회의 평등이나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이런 형태의 민주주의를 평등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데 예컨대 사회민주주의나 소위 포퓰리즘 민주주의 등이 이에 해당된다. 물론 사회주의는 극단적 형태의 평등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이상이 잘못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정치경제체제로 전환되면서 오늘날 세계 많은 나라가 시장의 작동이 원활치 못해 성장과 발전의 정체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이상의 수정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실험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여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 어려움이 직면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은 바로 이런 현상의 극단적 경우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원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

경제학 교과서는 완전경쟁시장균형은 모두를 경제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불교의 극락세계나 기독교의 천당이라 가르친다. 이런 시장에서는 빈부격차도 없고 대기업, 중소기업도 없고, 즉 경제적 불평등이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다. 경제학 교과서는 극락세계나 천당에서만 통하는 특수이론에 불과하다. 이 모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도, 사회주의 계획경제에도 적용되는 만능 모형처럼 쓰이지만 현실의 경제와는 동 떨어진 “진공”속의 경제모형이다. 많은 문제점 중에서도 특히 현실의 불평등문제 혹은 평등의 이념문제, 경제발전문제를 못 다루는 문제점이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끝없이 새로운 재화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자원을 창출하는 복잡경제이지만 주류 경제학은 주어진 자원을 주어진 재화의 생산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술적 문제는 잘 다루지만 새로운 자원과 재화가 어떻게 창출되는지 설명 못한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와 개인 재산권을 기본으로 하는 현실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스스로 도와 성공하는 경제주체(개인, 기업)를 우대함으로써 모든 경제주체들을 ‘경제적 성공의 유인과 경제실패의 압력’을 통해 모두 다 더 열심히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장치이다. 따라서 이런 시장의 경제적 차별화를 통한 경제적 불평등 압력이 경제성장과 발전의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든 국가나 사회가 경제적 평등(기회의 평등이든 결과의 평등이든)을 보장하는 순간 성장과 발전을 위한 노력의 유인은 사라진다. 따라서 경제적 불평등 없이 경제성장과 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 좌승희 석좌교수는 오늘날 통일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 지배층을 배제하려는 통일보다는 김정은 정권이 북한 경제체제의 변화를 자발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선택지를 제안한다. 좌승희 석좌교수는 진정한 통일대박을 위해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철저히 경제발전 원리-경제적 차별화-에 충실할 것을 주문한다.

또한 기업의 성장을 통한 대기업의 출현이나 경제력 집중은 -잘못하면 부작용도 있을 수 있으나- 경제발전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자본주의 경제발전은 개인적으로 부자들이 양산되고 경쟁력 있는 대기업들이 양산되는 과정이다. 경제적 역량과 노력에 따른 지역 간의 경제발전의 차이 또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지역균형을 보장하거나 추구하면 경제성장, 발전은 정체된다.

이 모든 결과는 우리가 항상 신상필벌의 원칙하에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는, 즉 좋은 제품을 선호하고 좋은 인재를 선호하고 좋은 기업에 투자하고 살기 좋은 지역을 선택하는, “인간의 선택 본능”에서 연유한다. 이런 진화의 기본 원리에 역행했던 사회주의의 몰락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사적 시장에서 들어나는 우리들의 선택 본능을 제거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황금배합문제는 인류 앞에 놓인 영원히 풀기 어려운 난제이다. 공적으로 경제적 평등을 외치는 정치인, 지식인들도 사적 시장에서는 어김없이 차별의 본능을 발휘한다.

② 경험상의 문제: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역사

<인류 경제발전사에서 선(先) 민주적 질서가 경제발전을 가져온 사례가 얼마나 되는가?>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의 산업혁명기,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식민제도나 노예제도를 용인하는 대단히 불완전한 민주제도하에서 경제적 도약을 이뤘으며, 2차 대전 후 선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평등민주주의(수정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적극 수용하였으나 이제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극단적 경제평등을 추구한 인민민주주의하의 사회주의는 북한을 제외하고 모두 몰락하였다.

2차 대전 후 독립한 세계 신생국들은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혹은 식민 선진국들의 영향으로 수정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따랐으나 아직 한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인도의 선전은 1980년대 중반이후 “인도식 사회민주주의”에서 탈피한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는 사치재와 같아서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그 수요가 폭발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나 일단 도입되면 평등민주주의로 변질되면서 점차 성장을 정체시키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물론 정치적 이념 때문에 경제발전의 초기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평등민주주의로 변질되어 경제성장이 정체되는 경향이 있다.

<체제전환국들의 경험은 어떠한가?>

체제전환국들의 경우, 소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채택한 동구나 러시아, 중앙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성과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배제한 체‘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공식적인 명칭 하에서도 실용적으로 자본주의 경제개혁을 먼저 한 중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주목해야 할 점은 체제전환국들 대부분이 자본주의시장경제라 하지만 실상은 아직도 사회주의 혹은 사회 민주주의적 성향의 평등민주주의에서 못 벋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비민주적 정치체제하에서 평등민주주의의 유혹을 배제함으로서 자본주의적 시장개혁을 추진한 중국만이 이에 예외이다.

<20세기 경제적 기적은 주로 비민주적 정치체제하에서 가능했다.>

후발 선진국인 일본의 명치유신이후 20세기 초까지의 선진국도약과 한국의 한강의 기적, 대만의 성장, 싱가폴의 도약과 성장, 최근의 중국의 놀라운 성장은 모두 비민주적 혹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하에서 제한적 정치적 자유, 때로는 제한적 경제적 자유 하에서 경제발전을 이룬 예이다.

③ 경제발전 친화적 정치체제의 조건

산업혁명이후 경제적 도약이 주로 제한적 민주주의체제하에서 일어났다는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역사에 비춰 볼 때, 그럼 비민주적, 독재 정치가 경제도약의 전제인가?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 이다. 지구상에는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비민주적, 독재정치체제국가들이 너무나 많았고 또한 지금도 많다는 사실이 반증이 될 수 있다. 또한 20세기 후반이후 후발국이나 신생국들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선(先) 민주주의체제가 반드시 경제성공을 보장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놓고 볼 때, 보다 의미 있는 질문은, “정치체제의 형식에 관계없이 어떤 내용의 정치가 경제발전에 친화적인가?”하는 것이다.

상기 질문에 대한 답은, 위에서 제시한 시장의 기능에 비춰 볼 때, “시장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불평등을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즉 인간의 선택 본능에 수반하는 경제적 차등, 차이를 허용할 수 있는 정치체제만이 그 형식이 민주적이냐 권위적이냐 독재냐에 관계없이 경제발전에 친화적일 수 있다.” 산업혁명이후 경제적 성공을 거둔 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이 조건에 부합하는 정치체제를 가졌던 나라였다. 역으로 시장의 차별화기능에 역행하여 경제적 평등을 보장하겠다는, 혹은 경제, 사회, 지역적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치경제체제는 그 이름이 어떠하든 시장의 불평등창출 기능에 역행함으로써 경제정체를 초래하였다.

3)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기조가 갖는 문제점

우리가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일인, 일당독재 정치권력의 포기와 국가의 경제통제권의 포기”를 의미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체제붕괴를 유도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동안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큰 틀 하에서의 개혁과 개방, 그리고 협력 제안들은 상생적 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이고, 궁극적으로 북한 지배층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반북적 제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통일정책기조 하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주장과 북한의 공산당일당독재하의 사회주의 체제는 어느 일방이 완승이나 완패를 하지 않은 한 평화통일이나 협력의 접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북한의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동안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존립근거를 위협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해법을 채택하기보다 위협전략을 통해 남한을 이용하거나 기타 여러 방법을 통해 단기적, 임기웅변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미봉책을 추구할 유인이 컸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