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국’으로 지정한 한국과 전격 재수교한 쿠바는 ‘북한의 형제국가’
공식 반발 대신 ‘기시다 방북’ 언급 뒤 독일·스웨덴대사관 재개 움직임
“김정은의 2국가론이 쿠바에 수교 명분 줘, 북의 외교참사 발생한 것”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난달 14일 밤늦은 시간에 전격 발표된 한국-쿠바 수교체결 이후 북한이 보름째 침묵하고 있다. 한-쿠바 수교는 한국정부가 20년 이상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온 결실이다. 쿠바를 ‘형제국’으로 여겨온 북한 당국으로선 불만이 상당할 것이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한에 대해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2국가론’을 주장했다. 동시에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국제사회의 ‘반미 연대’ 강화를 내세웠다. 코로나19가 끝나면서 북한은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중국, 러시아, 몽골, 쿠바 국가에만 외교관 근무를 허용했다. 중남미의 ‘반미 3국’ 중 하나인 니카라과와 상호 대사관 개설 합의 소식도 들렸다.

김일성 북한 주석은 1986년 쿠바를 방문해 친선조약을 맺으면서 ‘형제적 연대성의 관계’를 명시했다. 그래서 북한 매체에선 쿠바 소식이 자주 언급됐다. 지난 2월 1일에도 쿠바 대사의 신임장 제정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한-쿠바 수교체결 이후 북한 매체들은 일절 쿠바 소식을 싣지 않고 있다. 북한매체는 15일 북한 주재 외교단 소식을 전하면서 이례적으로 쿠바는 제외시켰다. 이 때문에 북한이 쿠바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과거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 소련도 한국과 수교를 맺은 적이 있으며 당시 시일에 차이는 있으나 북한의 공식 반발이 나왔다. 지난 1990년 9월 30일 한-소련 수교가 있었을 때 5일 뒤인 10월 5일 북한은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대대적으로 비난에 나섰다. 또 1992년 8월 24일 한-중국 수교가 체결됐을 땐 1달 뒤인 9월 27일 북한이 조선중앙방송을 통해서 중국을 비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김일성 주석이 받은 충격이 상당히 컸고, 이 때문인지 소련에서 유학 중이던 북한인들이 급거 귀국조치 당하기도 했다. 이번에 쿠바에 대한 북한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한-쿠바 수교에 대한 충격파가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지금은 김정은이 ‘신냉전 외교’를 벌이던 와중이어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지난 18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안토니오마세오 공원에 있는 쿠바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2024.2.20./사진=연합뉴스

북한은 한-쿠바 수교 발표 이후 ‘김여정 담화’를 내고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북 가능성을 언급하며 북일관계 개선에 여지를 보였다. 또 4년만에 서방국의 평양 주재 대사관 재개 동향도 포착됐다. 최근 독일 외무부측이 평양을 방문했고, 스웨덴대사 임명자도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영국 외무부의 기술·외교 대표단이 조만간 평양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고, 스위스대사관의 평양 복귀 의사도 전해졌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유엔 및 인도주의적 비정부기구 등 국제기구의 평양 복귀를 혀용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서방국의 평양 복귀가 본격적인 국경 개방이라기보다 일시적인 방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기구의 경우 북한 내 지방 방문 등 접근성이 허용돼야 하므로 국제기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당국이 여전히 이를 예민하게 여겨 거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과거 중국과 소련에 크게 의지했던 반면 쿠바에 대한 의존도는 다른 만큼 북한이 이번 한-쿠바 수교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하지 않고 조용하게 넘어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런데 이번 한-쿠바 수교는 김정은이 내세운 2국가론때문에 쿠바에 한국과의 수교 명분을 준 것이며, 결국 ‘북한의 외교참사’가 발생한 것이란 전문가 분석도 나왔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김종원 통일미래연구실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2국가라고 선포한 이후 쿠바가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명분을 갖게 된 셈이어서 북한의 대외전략 핵심인 반미주의와 비동맹운동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북한 외교참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중, 한-소 수교의 경우 사전에 인지했는데도 강한 반발을 보였던 북한이 한-쿠바 수교엔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하지만 김정은은 체제결속 및 쿠바와 외교관계 유지를 위해 함구하고 지나갈 것 같다”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김종원 연구위원은 한=쿠바 수교가 갖는 의미에 대해 “쿠바가 경제위기를 극복할 대상이 북한이 아닌 남한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 됐다”면서 “김정은이 대외전략으로 내세운 반제 자주국가들의 연대엔 중국, 러시아, 쿠바 외 이란, 시리아도 포함돼있는데,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김정은의 대외전략 방향에 심각한 타격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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