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란 이름으로 위장한 해방신학 만연, 북한 찬양 체질화

   
▲ 조우석 문화평론가
호랑이 등에 올라탄 두 시간이었다. 강연 내내 그런 느낌을 피할 수 없었는데, 북한 구원과 해외선교를 목표로 하는 기독교운동가그룹 ‘에스더기도운동’이란 단체를 알았다는 게 그날의 개인적인 소득이다.

때문에 강연을 맡았던 내가 청중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했다기보다 귀한 자리에 초대받아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했던 계기였다. 서울 영등포 당산동의 초교파 모임인 에스더기도운동에서 26일 필자가 했던 강연의 제목은 ‘한국사회 좌파와 기독교’였다. 참가자들은 50명 내외.

일반인도 있지만, 해외선교사에 목사도 상당수이고, 연령은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했다. 주최측이 기독교신자가 아닌 내게 듣고 싶어했던 주제는 문화권력-지식권력을 틀어쥔 종북세력의 구조에서 요즘의 정치사회적 쟁점, 그리고 선동언론의 구조 등이었다. 왜 개신교에서 이런 쪽에 관심을 둘까?

온세상이 좌편향인데, 교회라고 온전할까?

강연 직후 물어보니 조우석의 이름으로 된 미디어펜 칼럼이나 ‘정규재TV’의 돌직구 강의 등을 관심있게 체크해온 청중도 없지 않았다. 뜻밖의 이런 관심은 최근 10~20년 내 한국교회 내부가 빠르게 좌편향이 진행됐기 때문에 생긴 역설적인 부산물이자, 의미있는 반작용이었다.

에스더기도운동은 비정치적 단체다. 단 본래의 목표인 북한 구원과 해외선교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교회 내부까지 침투한 종북좌파에 맞서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교회 자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그들의 관심은 교회의 안과 밖을 아우른다.

온통 반(反)대한민국 심리 속에 “헬조선(지옥조선)”을 외쳐대는 대형포털, 걸핏하면 ‘개독교’를 조롱하는 반(反)기독교의 물결에 맞서 ‘인터넷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근현대사아카데미를 개설한 것도 그 맥락이다. 에스더기도운동을 설립한 게 2007년인데, 당시가 광우병 파동 한 해 전의 상황이다.

   
▲ ‘에스더기도운동’이란 북한 구원과 해외선교를 목표로 하는 기독교운동가그룹으로 비정치적 단체다.
벌써 그때 사회가 심상치 않았다. 세상이 그럴수록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다짐하는 저들을 보면서 나는 아찔함과 용기를 동시에 얻었다. 좌편향의 오염이 제도권 교회의 골수까지 점령했다는 아찔함, 그럼에도 맞서 싸우겠다는 전사들의 등장에 반가움을 함께 느낀 것이다.

“여러분, 일본 내 기독교 인구는 지금도 인구 대비 1%라는 거 아시지요? 그럼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인구 1% 벽을 돌파한 게 언제인 줄 아세요?”

그래서 강연 초기 내가 덕담을 겸해 일부러 물어봤다. 기독교 인구 1% 벽 돌파는 3.1운동이 있던 1919년에 이뤄졌다. 이게 뭘 의미하는가? 한국 기독교는 단순한 신앙공동체를 넘어 이 나라 이 민족 근현대사의 뼈대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특히 그러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케케묵은 조선조의 유교질서 구조를 기독교 문명으로 깨버리는 위대한 실험을 했다.

그렇게 닦아 놓은 길 위를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박정희의 돌진적 근대화라는 이름의 탱크가 기운차게 굴러갔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그래서 가능했다. 유교야 물론 위대한 전통문화의 하나이지만, 구한말 구체제 속에 끝내 썩어버렸다면, 도려내는 게 정상이었다.

1970년대 양적팽창 이후 찾아온 불길한 징후들

교회는 그래서 성장했다. 1970년대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에 온세상이, 지구촌 전체가 놀랐다. 자연스레 양적 팽창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으나, 지금 생각하면 이 빅뱅도 잠시잠깐이었다. 잠시잠깐? 맞다. 교회의 팽창은 당시 개발연대 한국사회의 빅뱅현상과 구조가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교회가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가 점차 들려왔다.

교회 공동화 현상, 신자들의 고령화, 신자가 없는 교회 건물의 부동산 매각 소식 등이 줄줄이 들리던 게 2000년대 초반. 이런 외형 변화와 함께 또 다른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고 작은 교회가 개혁세력으로 위장한 종북좌파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풍문이 현실로 나타났다.

   
▲ ‘동성애차별금지법’ 철폐를 요구하고 있는 기독교운동가그룹 에스더기도운동.
교회세습이나 운영상의 비리 등으로 떳떳하지 못한 제도권 교회가 약점이 잡혔고, 이내 내부는 좌빨 냄새 물씬한 해방신학 내지 자유주의 신학으로 교체된 것이다. 그걸 “교회에 들이치고 있는 마귀”라고 표현했던 담대한 분이 에스더기도운동 고문을 역임했던 고(故) 김준곤 목사다.

지금도 이런 내부 붕괴의 흐름을 대형교회의 유명목사들이 잘 파악하지 못하는데 비해 김 목사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가 지적했듯이 개혁으로 포장된 좌파 핵심거점의 하나가 서울 당산동의 D교회다.

이들은 외국인노동자-노숙자들을 재우주거나 청년들을 꼬드겨 사회복지를 말하고 6.15선언을 찬양하게 하는 등 신자들을 잠재적 좌익으로 키운다. 서울시장 박원순이 키워낸 성미산마을공동체와 구조가 비슷한 초교파 성격의 C공동체란 존재도 무시 못한다. 이곳에서 현재 150명의 좌익형 인간을 키워 전국의 신학교에 침투시켰으니 앞으로가 더 큰 걱정이다.

민주화 항쟁 87년 체제가 문제다

좌파 국사학자인 이만열 교수, 중립적인 듯 보이는 철학자 손봉호 교수 등도 이런 흐름을 추인하거나 대세로 따르고 있는 게 지금의 형편이다. 담대하게 “노!”의 목소리를 내는 이는 드물다. 그걸 지적하고 나서면 “수구꼴통 교인”이란 손가락질이 돌아온다.

이미 신학대학교 교양 커리큘럼까지, 특히 교양선택 과목은 ‘의식화의 스승’ 리영희 류의 왜곡된 지식정보로 짜여져 있다. 교회-신학-교인의 세 가지 요소가 내부 붕괴의 위기에 처한 게 지금이다. 지금 상황은 교회위기 차원만이 아니다.

즉 배후엔 서울시장 박원순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있다. 저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집요하게 ‘동성애차별금지법’을 추진해오고 있는데, 그건 국가 전복에 준하는 일이다. 종북좌파는 정치투쟁 못지않게 서구의 68혁명 같은 걸 통해 결국 한국사회의 해체를 함께 노리고 있다는 인식도 중요하다.

실제로 구 통진당 의원 김재연 등이 발의했던 문제의‘차별금지법’이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데, 그 문제는 다음 기회에 추가로 다룰 생각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의 지금 관심은 한국교회의 구조적 위기가 실로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위기란 교회만의 것이 아니다.

이른바 민주화 항쟁으로 만들어진 87년 체제 이후 용공 좌익이 민주화 세력으로 위장해 사회 각 부문에 침투했다. 요란한 경제민주화의 구호 속에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던 것도 그 때 이후다. 그 이전부터 지식권력-문화권력을 탈취한 좌익이 세상을 이렇게 흔들어댄 지도 30년을 넘긴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뿌리째 흔들리는데,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는 셈일까?

다행히 에스더기도운동은 이런 교회 해체, 국가 해체의 흐름에 맞선 용기있는 기도운동단체다. 이들에 대한 응원은 너무도 당연하다. 생각해보니 우연치 않게 에스더기도운동 강연을 맡았다가 우리사회의 또 다른 진실을 발견한 느낌이다. 그 진실을 차례로 전해드릴 것을 오늘 약속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