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평의 끝장 투쟁 그대로…표 노리는 얼치기 정치인도 한 몫

정권마다 한 두 번은 노동개혁을 시도하지만 바탕에는 손도 못대고 개칠만 해왔다. 여당측에서 내년 총선-청년 일자리-노동개혁 연내 마무리 구상을 발표하고 나서자, 야당측에서는 추미애의원을 앞세워 노동개혁 초점을 흔들어 국민을 혼동시키고 있다.

한국의 노동법체계는 부산 피난국회에서 급조된 것이므로(1953) 손 볼 곳이 많으며, 그동안 부분적으로 손질은 했으나 일관된 설계없이 물새는 틈을 땜질하는데 그쳤다. 이런 환경에서 노동개혁 총론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십인십색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문제 발생의 뿌리

1987년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폭발한 노사분규 가운데 정치투쟁노선이 새로 등장했다. 법외 단체로 출발한 이들은 전노협(1990)을 거쳐 민노총(1995)으로 조직화하여 제도권에 진입했다. 민노총은 홈페이지에 1일 평균 163개 산하노조가 파업한 1996년 기록을 올려놓고 투쟁 행적을 기린다.

전평을 승계한다고 자부하는 민노총의 투쟁노선은 일본의 총평 투쟁노선과 같다. 계급투쟁 노동운동을 개발하고 실천한 총평의 투쟁방식은 민노총 투쟁실적과 일치한다. 정부상대 정치투쟁, 교원노조를 동원한 교육투쟁, 일상적 현장문제를 물고늘어져 제도문제로 확대시키고 총력 결사투쟁으로 끝장을 보는 전술 등. 결국 한국노사는 타협없는 민노총의 정치적 투쟁노선에 막혀 호흡곤난에 빠졌다. 대화통로로 개설된(1996) 노사정위원회가 민노총의 반발로 사실상 기능을 잃은 것은 그 증거다.

   
▲ 28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열린 노동시장 개혁저지 집중행동 집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동문제에 실린 본질

여당은 통상임금과 주당근로시간문제-비정규직 기간제한문제-파견대상업무를 넓히는 문제- 실업급여수당 수급기간문제-산재급여를 높이는 문제 등을 꼽고 있지만 이것이 본질적으로 일에 관계되는 문제라는 인식이 없다. 노동개혁의 본질은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민노총 사전에는 일이 빠지고 노동과 투쟁만 살았다.

노사는 적대적이지만 이성으로 대하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이 단체교섭제도를 낳았으나, 일 대신 노동을 세우고 투쟁으로 일관하는 전술이 소박한 생각을 죽였다. 단체교섭 기능이 빈사상태에 빠지고 투쟁이 무성한 한국노사는 부딛칠 때마다 죽느냐 사느냐의 수레를 타고 달린다.

일이라는 공통분모가 빠지고 정치적 투쟁노선이 지배하는 민노총이 한국노동문제의 핵이다. 민노총의 투쟁노선에 동조하거나 이것을 이용하는 환경도 문제아로 이름이 올랐다. 노사공포럼같은 관변전문가단체도'자본의 일방적 지배가 한국노사관계 위기’라고 공언하며(노사공포럼30호,2014), 민노총의 표에 눈독들이는 정치인들은 주변을 감싸고 돈다.

해법을 찾아

가. 노동개혁은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며,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하여 노사관계에 일이 살아나야 한다. 먼저 민노총이 투쟁노선을 접고 일하는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민노총의 길잡이 역할을 한 일본 총평은 자진해산하고 현장으로 복귀했다(1950-1989). 자본과의 투쟁으로 일관하던 영국노동당도 T. 블레어 당수의 결단으로 정강을 수정하고(1995) 친기업 신노동당으로 변신하여 장기집권에 성공했다(1997-2007).

나. 일하는 문제를 경영과 종업원이 협의하여 해결하도록 설계된 워크스카운슬제도는 EU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노사의 적대관계를 전제로 출발한 미국형 단체교섭제도는 GM 파산으로(2009) 사실상 한계점이 들어났다. 일하는 문제를 경영과 종업원이 협의하여 해결하도록 설계된 한국노사협의제도는 EU의 워크스카운슬과 동행하는 것이므로 그 활용이 노동개혁의 중요한 방향이다.

다. 민노총의 투쟁노선에 눈감고 입다무는 전문가, 민노총의 표에 연연하여 주변을 맴도는 정치인이 노동개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환경이 되면 이번에도 개칠만 하고 얼버무리게 될 것이다. /김영환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이 글은 자유경원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