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범죄 빈번한데 집행유예 그치는 경우 대부분
산업 기술 보호 위한 법 빈약…간첩죄 수준으로 처벌해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최근 국내 첨단 기술 유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칼을 빼들었다.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전직 연구원을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이 인용됐다. 

다만 여전히 국내 법 규정은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 내 지적이다. 이에 따라 주요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산업 기술 보호를 위해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와 같은 수위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 여전히 국내 법 규정은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이에 따라 주요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산업 기술 보호를 위해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와 같은 수위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진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제공


7일 법원과 업계에 따르면 법원은 최근 고대역폭 메모리(HBM) 후발주자인 마이크론 임원으로 이직한 SK하이닉스 전 연구원에 대한 전직금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현재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A씨가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며 얻은 정보를 경쟁사인 마이크론으로 유출하게 될 경우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HBM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으로 꼽히는 기술이다.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성능 메모리로, AI 시장 확대로 향후에도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다.

HBM의 폭발적인 성장성으로 인해 메모리 반도체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기술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된 상태다. 

최근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보다 앞서 5세대 HBM3E 양산 소식을 전했고, 다음 날 삼성전자가 바로 업계 최초로 12단 36기가바이트(GB) HBM3E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히는 등 기술 선점을 위해 분투 중인 것이다.

업계에서는 법원의 이번 판단이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이에 더해 국내 기술 유출 범죄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기술 유출 시도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국정원이 적발한 국내 산업기술의 해외유출 사건은 총 93건으로, 그 중 33건은 국가 핵심기술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유출 피해 산업으로는 반도체가 26%로 가장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정보원의 ‘산업기밀보호센터’와 경찰청 ‘방첩경제안보수사계’ 등에서 기술 유출 범죄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여전히 집행유예나 1~2년 실형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2월 포스코 핵심설비 도면을 빼돌린 업체 대표와 반도체 핵심 기술을 국외 경쟁사에 유출한 전직 삼성전자 엔지니어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또 전 삼전 엔지니어의 경우 2심에서 실형으로 가중됐지만, 형량은 1년 6개월에 그쳤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총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전체의 87.8%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22년 선고된 영업비밀 해외 유출 범죄의 형량은 평균 14.9개월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 대만, 영국 등 해외 주요국들의 경우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 수준으로 판단해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국내 역시 이와 관련된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여전히 계류 상태에 놓여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에 한국경제인협회 전신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는 개별기업의 피해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훼손을 가져오는 중범죄”라며 “기술 유출 시 적용되는 양형기준을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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