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레 벗어나지 못해…시청률 하락 '엑소더스' 현상 재현

   
▲ 황근 선문대 교수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말이다. 청소년 시절 정말 재미없던 소설로 기억되는. 물론 2006년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도 돈 주고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마치 ‘오토 리버스’되어 돌아가는 카세트테이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보여주는 케이블TV 영화채널을 통해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그야말로 채널 돌리다 낚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중에 나오는 대사 하나가 정말 가슴을 팍 찌르는 것이다. 순간이었지만 살아 온 삶을 다시 반추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노는 물이 그래서인지 이 말이 지금 우리 방송판을 너무도 적확하게 묘사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오만과 편견은 권력이든 재력이든 아니면 명예든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심리 상태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권세를 누리고 있을 때 오만과 편견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가 몰락한 사람들의 오만과 편견은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유발한다.

지금 우리 방송판이 그렇다. 대한민국 방송판에서 ‘영원한 갑’은 당근 지상파방송사다. 지난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왔고, 아직도 그 위세가 대단하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지상파방송 소리만 나오면 그야말로 벌벌 떤다. 그들에게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는 흘러간 옛 노래가 아니라 아직도 살아있는 현실이자 로망이다. 그래서 지상파방송사들은 민원들을 여의도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700메가 주파수가 그랬고, KBS 수신료 인상도 그런 식이다. 대한민국의 방송이 정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치보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영원하기만 할 것 같던 지상파방송의 아성도 정작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력이라는 위만 바라보고 바벨탑처럼 끝 모르게 올라갔던 지상파방송이 밑에서 받쳐주어야 할 시청자와 시장이라는 주춧돌부터 부식되고 있는 것이다. 30%는 기본이고 50%를 가볍게 넘나들던 시청률도 어느덧 한 단위 수준으로 떨어지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일부 조사결과들은 출범 3년밖에 안된 종편채널들과 평균 시청률에서 그야말로 ‘도끼니 개끼니’라고 보여주기도 한다. 낮 시간대 실시간 시청률을 보면, 일부 종편이나 오락전문 채널들이 맨 위에 위치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 지난 6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주파수정책소위원회에서 조해진 소위원장 등이 '700MHZ 대역 용도 결정 등 주파수 정책에 관한 사항'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뿐만 아니다. 1990년대 초반 SBS 출범이후 사라졌던 신규 방송사로의 엑소더스도 다시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지금의 엑소더스는 무작정 탈출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실제 종편이나 오락채널로 이동하는 인력들 중에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 경우가 적지 않고 또 그 이름값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그동안 두려워(?) 지상파방송을 떠나지 못했던 연예인들도 이동하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쯤 되면 이제 지상파방송은 여전히 높지만 도전할 수 없는 절대 지존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지난 반세기 달콤했던 시절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미몽을 넘어 오만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이야기 하다 보면, 지상파방송사들은 우리는 여전히 ‘1등 방송’이고 다른 방송매체들은 하급 방송이라는 마치 무슨 ‘카스트’ 같은 낡은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유료방송 플랫폼들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지상파방송 재전송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여전히 ‘너희들이 지상파방송 없이 먹고 살 수 있겠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TV 없이 사는 이른바 ZERO-TV 가구가 10%를 넘어섰고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지상파방송 안 나온다고 불편해 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실제로 2012년 있었던 KBS, MBC 장기파업 때 불만을 제기한 시청자들은 거의 없었다.

1990년 파업 때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느꼈던 ‘세상과 담쌓고 사는 것’ 같은 고립감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국민들의 불편함을 볼모로 하는 정치투쟁은 이제 ‘그들만의 외로운 투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조금 성급해 보이지만 케이블TV를 비롯한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서 ‘이 참에 아예 지상파방송을 끊어버릴까?’하는 만용 섞인 말도 더러 나온다. 분명 머지않아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은 바로 편견을 낳게 마련이다. 턱밑까지 올라와있는 경쟁 채널들과 우리는 질적으로 다르고, 돈만 쫓는 상업적 매체들과는 근본이 다르다는 편견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상파방송사들은 그렇게 저급하다고 생각하는 매체들과 시장에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저급한 상업 매체들과 다른 방송이 되려는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금 우리 방송시장은 공생의 미학이 사라져버렸다. 요즘 유행하는 eco-system도 없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만이 있을 뿐이다. 그 투쟁심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편견과 오만이다. 진정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