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니아 연대기·반지의 제왕 독보적 문화자본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런던을 떠나 템스 강 상류를 거슬러 1시간쯤 올라가면 그 대학을 만날 수 있다. 900년 역사를 넘기며 영국의 화려한 세계경영 전성기를 호령해왔던 대학 교육의 상징 옥스퍼드. 황소가 시내를 건넌다는 지명에서 붙인 소박한 이름이지만 옥스퍼드의 업적과 공헌으로 쌓아 올린 금자탑은 눈부실 정도로 찬연하다.

영화 <해리포터>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대강당에 들어서면 사회계약론으로 영국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존 로크(1632~1704) 동문의 초상화와 표지석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위인들을 만날 수 있다. 영국 수상만 40명 가까이 배출했고 영국 지폐에까지 나오는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국부론』 저자 애덤 스미스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영화배우 휴 그랜트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명사들이 이른바 옥대 출신들이다.

그러다보니 옥스퍼드대가 너무 위압적으로 보일만도 하다. 거대한 첨탑과 겨자 빛깔 나는 노란 돌담으로 높게 쌓아 올린 캠퍼스 건물 하나하나가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별세계만 같다. 그저 관광차 들른 사람들에게는 무슨 천공의 성 바벨탑 같이 우러러 봐야 할 것 같기도 해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슈퍼 엘리트 또는 최고위 귀족 계층 같이 선택받은 자만이 누리는 그들만의 아방궁 밀실 같은 이미지도 스멀스멀 올라올 수 있고.

하지만 다행히도 거의 900년 만에 나온 판타지 콘텐츠 한 편이 근엄과 경직으로 꽁꽁 묶인 옥스퍼드대를 친근하고 재밌는 테마파크로 새 단장 시켜주었다. 해리포터다. 그가 입학한 호그와트 마법학교 식당 장면을 찍었기에 옥스퍼드대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대강당은 전 세계 팬들의 성지 순례 코스로 변신해 있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영화와 소설로 만났던 해리포터 판타지 몽환을 되살려 비좁은 계단을 타고 수백 개 초상화와 기록물들로 가득한 역사의 회랑을 살금살금 발 디디고 다닌다.

   
▲ 영화 해리포터 장면.
그야말로 ‘땡큐 해리포터!’다. 저자 조앤 롤링이 옥스퍼드대 동문도 아니지만 옥스퍼드가 아니면 살릴 수 없는 분위기를 차용해 소설을 지었고 할리우드가 또 어김없이 로케이션을 해주었으니 해리포터 경제의 최대 수혜자중 하나로 등극했다.

해리포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방문객들이 엄청나게 부푼 가슴을 안고 옥스퍼드를 찾으니 카페 식당 기념품 가게와 입장료 수익만 해도 쏠쏠해졌다. 학교와 국가 이미지 홍보 효과까지... 정말 조앤롤링과 해리포터가 옥스퍼드와 영국의 문화창조산업에 큰 기여를 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짜릿하게도 반전과도 같이 극적인 진실이 따로 나타났다. 옥스퍼드는 결코 ‘땡큐 해리포터!’라거나 작가 조앤 롤링에게 빚졌다고 여기지 않더라는 얘기다. 디즈니 미키 마우스나 비틀스에 견줄 만큼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콘텐츠 <해리포터>는 다름 아닌 영국 판타지 문학의 계보에 올라 탄 행운아일 뿐이라는 게 옥스퍼드의 한 치 양보 없는 해석이다.

옥스브리지, 즉 옥스퍼드나 케임브리 명문 출신이 아니었어도 조앤 롤링은 앞 선 선배들의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 이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만들어 준 판타지 문학의 전통과 음덕으로 인하여 마침내 좀 더 통속적인 <해리포터> 시리즈를 창조해날 수 있었다는 견해다.

   
▲ 영화 나니아연대기 장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아이처럼 그렇게 조앤 롤링은 평범한 영국의 시민으로서 자라날 때부터 도취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로부터 이어져온 판타지 세계와 취향을 자신의 느낌으로 재창조해낸 내력이라는 분석이다.

바로 이 부분은 초대박 콘텐츠 <해리포터>를 연구하는 학자와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다. 그녀 조앤 롤링이 과연 어떠한 학습과 노력, 재능을 발휘하여 그렇게 매력적인 <해리포터>를 디자인할 수 있었느냐는 인과관계, 즉 시크릿 부분이다.

어려서 평범했고 싱글 맘이 되어 궁핍했고 여행이나 사회생활 경험도 일천했던 조앤 롤링에게 어떤 상상력 문화 자원들이 입력되고 공급되어 바이블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도 하는 <해리포터>같은 명작 대작을 산출했는가를 묻는 의심 섞인 관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일부 미디어 학자들은 BBC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냥 전형적인 영국 아이, 청소년으로서 BBC 공영방송이 보여준 풍성한 교양물, 드라마, 뉴스 등 미디어 콘텐츠들을 보고 그녀가 기본 소양을 습득할 수 있었다는 추론이다. 상당히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믿어 왔다.

그랬다가 이제야 둘러 본 옥스퍼드대 해리포터 순례길 덕택에 비로소 나머지 더 큰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옥스퍼드대 역사에 길이 남는 3대 판타지 작가 루이스 캐럴, J.R.R. 톨킨, C.S. 루이스를 마주 하니 그저 저절로 자연스럽게 조앤롤링과 해리포터 그리고 영국이 자랑하는 문화창조산업의 뿌리를 만질 수 있었다.

   
▲ 영화 반지의 제왕 장면.
찰스 루트위지 도즈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 본명인 작가 루이스 캐럴은 옥스퍼드대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수학과 교수로 있을 당시 학장의 딸 앨리스를 모델 삼아 불후의 명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865년>를 남겼다. 대인 기피증이 심했던 이 교수는 이상한 나라라는 판타지 세계를 마치 수학 공식 풀 듯 정립해나갔고 옥스퍼드 건축물, 마당, 골목길마다에 얽힌 성서, 그리스 로마 신화 형상들과 스토리들을 소설 속으로 녹여 나갔다.

이어 10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도즈슨 교수의 후배인 톨킨의 걸작 <반지의 제왕, 1954~1955년>이 나오고 톨킨의 벗이자 역시 옥스퍼드대 후배이자 교수였던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1950~1956년>라는 고담준봉이 솟아올랐다.

이렇게 도즈슨(루이스 캐럴) - J.R.R. 톨킨 – C.S. 루이스로 굵직하게 이어진 옥스퍼드의 판타지 계보가 굳건했기에 행운아 조앤 롤링의 출현도 가능했다. 그들 옥스퍼드대 3인방 판타지 작가이자 교수들은 시대 차이도 있었고 각자 스타일도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북방의 아련함, 즉 ‘nothernness’ 라고 하는 피안에 휩싸인 영혼들이었기에 정신은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마치 한국인이 유라시아 알타이 서쪽 저 너머 시원과 조상을 기리듯 이들 옥스퍼드 판타지 거두들도 영국이라는 나라, 영국인이라는 인간의 원형과 정체성을 찾아 나선 탐험가로서 평생을 헌신했나 보다. 더욱 놀랍고 대단한 것은 수학, 영문학, 언어학 교수로서 학문과 교육에 매진하는 동시에 창작과 몽상, 창조와 상상에도 자신의 인생을 과감하게 투신했다는 면모다.

이런 선구자들의 역작이 남아 전해졌기 때문에 정통 서양 판타지 문학의 계보를 잇고 확장한 <해리포터> 같은 콘텐츠계 절대 반지도 나올 수 있었다. 이 같은 뭔가 암묵적 문화 인프라의 사회적 역사적 전승을 우리는 문화자본(culture capital)이라고 부른다.

영국이 국가전략으로서 무릎을 탁 치며 ‘아하 ! 유레카’라고 외쳤던 지점이 바로 이 문화자본이라는 핵심어였고 결과적으로 비틀스와 007 영화를 능가하는 <해리포터> 시리즈도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후배 <해리포터>가 외쳐야 마땅할 터이다. “땡큐. 옥스퍼드 !!” 라고.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