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지 말아야 될 선 넘어…반일 정서 자극 양국에 도움 안돼

   
▲ 한국과 일본은 결국엔 함께 가지 않을 수 없는 사이다. 그렇기에 서로 간에 '말'을 조심하고 선을 넘지 않으려는 에티켓이 필수다. /사진=산케이신문 홈페이지 캡쳐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 맺힌 얼음은 언제쯤 '해빙'될까.

임기 3년이 지나도록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이번엔 양국의 관계를 더 나빠지게 만드는 악재가 터졌다. 일본 산케이 신문에 게재된 칼럼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을 '사대주의'라고 비난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을 '민비'에 비유를 한 것이다.

기사의 충격파는 상당히 크게 번지고 있다. 지난 1일 외교부 측은 "해당 언론사에 대한 기사삭제 및 재발방지 요구는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이 말과 함께 나온 표현들이다.

외교부 노광일 대변인은 "역사 왜곡과 역사 수정주의 과거사에 대해서 후안무치한 주장을 일삼는 일본 내의 특정 인사와 이와 관련된 언론사의 터무니 없는 기사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논평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은 이 코멘트 자체가 정부의 '논평'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의 여야를 하나로 만드는 나비효과(?)를 낳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산케이신문에 대해 "옳지 못한 언론사" "수준 이하 언론사의 테러적 망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 역시 "박 대통령을 '민비'에 비유해 모독한 것은 '악플'과 다름없는 야만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미국에 기대 자위권 확대를 기도하는 자신들의 행태부터 되돌아보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와 같은 한국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내에서 반일(反日) 정서는 지위고하는 물론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를 얻는 기조다. 이런 상황에 일본이 이번 칼럼처럼 비판 받아 마땅한 만한 행보를 보일 경우 한일관계는 속절없이 후퇴될 수밖에 없다.

한일 관계가 경색국면으로 진입한 것은 2012년 여름 무렵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한일 관계를 경색시켰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일본 내부에 독도 방문보다 더 거센 반한(反韓) 기조를 만든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왕 비하' 발언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일왕에 대해 "한국에 오고 싶으면 독립운동 희생자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해 일본 내에 큰 파문을 일게 했다. 한국인들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인간 이상'인 일왕을 비하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의 거의 모든 언론이 이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러더니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선 박근혜 대통령을 '민비'에 비유하는 형국까지 연출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열한 수준이다. 양국 간에 '해선 안될 말'이 있다는 교훈을 그새 잊은 것일까.

이번 사건은 일본 측이 너무도 명백하게 선을 넘은 사건이다. 모든 한국인이 분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말을 아끼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자세가 차라리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산케이의 주장을 '일개 언론사의 망언'으로 간주하고 성숙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은 결국엔 함께 가지 않을 수 없는 사이다. 그렇기에 서로 간에 '말'을 조심하고 선을 넘지 않으려는 에티켓이 필수다. 외교든 정치든 결국엔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미디어펜=이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