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국방위 대변인 성명을 내고 지난 8.25 남북합의 내용 일부를 부인, “아전인수격 해석”이라며 우리 측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고 나서면서 그 의도가 주목된다.

남북합의 직후부터 북한 측 대표단이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차례로 비무장지대 지뢰도발 사건에 대한 책임을 부인한 사실도 있는 만큼 본격적으로 열릴 남북대화를 앞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상황이다.

지난 남북 고위급접촉으로 대북 확성기방송 중단이라는 중대한 성과를 얻어낸 북한이 앞으로 있을 남북대화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려는 상투적인 수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오는 7일 열릴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 개최를 위한 남북 실무접촉에서 금강산관광 재개 등 협상카드를 제시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남북합의 이후 북한이 연일 “합의안 실천”을 강조해온 만큼 남 측에 5.24 해제 등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기 위한 정지작업일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남북합의 이후 간부들을 상대로 결과를 설명하며 ‘김정은 장군의 승리’라고 선전해온 것으로 2일 전해졌다.

   
▲ 일촉즉발의 최고조 위기 상황에서 진행되던 남북 최고위접촉이 25일 새벽 '무박 4일' 마라톤 협상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끝이 났다. 북한의 유감 표명을 포함한 남북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뚝심'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브레인'이 환상의 콤비를 이룬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사진=통일부 제공

정통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그동안 북한 당국은 간부들을 모아 강연을 열고 “김정은 장군이 무비의 담력으로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의 전쟁도발책동을 단매에 짓부셔버렸다”고 주장했다. 이때 ‘무비’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황병서도 회담 종결 당일인 25일 조선중앙TV를 통해 기자회견을 열고 “남조선 당국의 근거없는 사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황병서는 “이번 긴급 접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가지고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일방적인 행동으로 상대 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정세만 긴장시키고 있어서는 안 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양건도 조선중앙통신에서 남북 고위접촉 결과를 설명하며 “북과 남이 원인 모를 사건으로 요동치는 사태에 말려들어 정세를 악화시키고 극단으로 몰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며 책임을 피해갔다.

준전시상태까지 선포한 북한으로서 남북회담에 참여했던 황병서와 김양건을 내세워 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남한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에서 공동보도문에 포함된 북 측의 유감 표명 발언에 대해 우리 정부와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놓으면서 진실공방까지 벌일 기세이다.

북한은 2일 조선중앙통신에서 발표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로 공동보도문 2항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담화는 “한마디로 ‘유감’이란 ‘그렇게 당해서 안됐습니다’하는 식의 표현에 불과하다”면서 “남조선의 한 어학전문가는 ‘유감표명’은 사실상 ‘문병을 한셈’이라고 그 문구가 내포하고 있는 뜻을 명백히 찍어 밝혔다”고 강조했다.

이를 볼 때 당초 남북 합의문 2항에 명시된 ‘북측은...유감을 표명했다’는 대목과 관련해 남한 내부에서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어온 것이 사실이고, 북한은 합의 이후 남한 내 여론 추이를 지켜보다가 약한 고리를 노려 일격을 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 측의 남북 간 접촉에 나섰던 대표단의 입지를 세우기 위한 변명이거나 앞서 언급한 대로 추후 협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의지 표명일 수 있다. 이와 함께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을 기점으로 장거리미사일 실험발사 등 추후 도발을 위한 명분 확보 등 다목적 의도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북 공동보도문이 나온 이후 북한 매체들은 연일 남북 고위급 합의 이행을 강조하며 선전전에 나섰고, 정부는 이런 북한의 행태에 대해 내부용 선전으로 평가해왔다.

남북합의 이후 북한의 ‘유감 표명은 사죄가 아니다’라는 첫 발언이 나왔지만 정부는 이에 맞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국방위의 담화에 대해 “지금은 합의문에 대해서 일희일비 왈가왈부할 상황이 아니고, 남북이 함께 합의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준수할 때”라고만 밝혔다.

한편, 황병서와 김양건의 기자회견 등 북한의 행태를 볼 때 앞으로 남북 간 회담이 열려도 더 이상 ‘통-통 라인’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남북합의로 통일부와 통일전선부를 지칭하는 통-통 라인이 부활했다는 평가도 많았지만 당분간 남북회담이 열려도 김양건과 황병서가 대표단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