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전승절을 맞아 휴장했던 중국 증시가 나흘 만에 다시 개장을 앞두면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게 된다면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처럼 세계 각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7일 국제금융시장 등에 따르면 중국발 경제 위기는 대(對) 중국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와 남미 신흥국에 이미 옮아붙었다.

지난달 11일 중국의 깜짝 위안화 평가절하로 신흥국 환율이 외환위기 수준으로 치솟은데다 원자재 수출이 급감하면서 재정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우선 중국과의 교역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당장 수출과 경제 성장률이 급속히 떨어지는 현상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둔 일본, 한국, 대만의 7월 수출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5%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 수출은 지난달 14.7%나 줄면서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2009년 8월(-20.9%) 이후 6년 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졌다. 중국 수요의 약화로 당장 이 나라로의 수출이 7.6% 줄었다.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기대온 칠레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반 토막 날 것으로 보인다. 칠레의 2010∼2013년 연간 성장률은 4%였지만 중국발 악재가 터진 올해는 성장률이 1.8%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중국 수요 둔화 등에 따른 저유가의 타격을 받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정부가 물가 상승률을 공개를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수출의 60%를 금, 석탄 등 원자재에 의존하는 국가다. 최근 중국의 원자재 수요가 줄면서 올 상반기 경제 성장률은 2008년 이래 가장 낮은 4.7%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출에 타격을 입은 신흥국들은 위안화 평가절하 직후 환율시장이 요동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는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최저치를 기록했고 말레이시아 링깃화 역시 올해 초 대비 15% 이상 하락했다.

브라질,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자원 수출국 역시 통화 가치 급락으로 자본 유출 위험에 놓였다.

여기에 중국이 신흥국에 제공을 약속한 차관 역시 세계 경제를 누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세계 각국을 돌며 막대한 금액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작년 중남미 순방에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에 각각 75억달러, 40억달러의 차관 제공을 약속했고 리커창 중국 총리는 동남아시아를 방문해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 30억 달러 차관을 제의했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아프리카에 약속한 차관도 각각 200억 달러, 30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차관 제공이 지연·취소되거나 최악의 경우 상환 요구가 시작되면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신흥국 경제도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 위기의 여파는 상대적으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세계 경제가 서로 얽혀 있어 한 곳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위기가 번지는데다 생각지 못한 악재가 닥치기도 한다.

미국 농기계 제조업체인 '존디어'가 연쇄 경제 위기의 대표적 사례다. 중국발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존디어는 난데없이 남미지역 매출이 급감했다.

중국이 커피, 대두, 설탕 등 농산물 수입을 줄이자 브라질 등 남미국가 농민의 여건이 나빠졌다.

돈이 없는 농민들은 존디어에서 농기계를 구입하지 않았고 존디어의 올해 남미 매출은 25% 감소할 전망이다.

이처럼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라도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신흥국에서 유출된 자금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으로 몰리고 있지만 이들 국가가 글로벌 위기에서 빗겨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벌어질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중국에서 빠진 자금이 안전자산인 엔화로 몰리면 '엔고'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엔화 약세 정책으로 간신히 경제 숨통을 틔워놓은 일본으로서는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엔화 가치는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조치 이후 상승 흐름을 보여 일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로화 역시 위안화 절하 사태 이후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면서 가치가 올라 유럽국가들의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양적완화 전망이 시장에 퍼지고 있다.

미국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 시기를 가늠하는 상황에서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는 몇 달간 연기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내리면서 전 세계에 값싼 중국산 제품이 유통되면 선진국들로서는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더 어려워진다. 중국과는 교역량이 많지 않더라도 가격 면에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중국이 디플레이션 수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세계 경제가 미국발 금융위기(2008~2009년)와 유럽 재정위기(2011~2012년)에 이어 10년 내 세 번째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델리티의 도미닉 로시 최고투자책임자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최근 발생한 세 번째 디플레 물결은 중국발 쇼크에 따른 신흥국 위기로부터 발생했다고 말했다.

로시는 "신흥시장의 위기가 외환시장의 혼란을 시작으로 원자재, 부채, 주식, 실물 경제의 동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장기간 전 세계 경제를 짓눌렀던 것처럼 세계 실물경제에서 비중이 가장 큰 중국이 무너지면 신흥국은 물론 선진국 경제에도 충격을 줄 여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