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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사법시험 존폐논쟁과 신림동 고시촌 이야기
인생역전 보장 안돼…기회균등·사회정의 잣대는 시대착오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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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5-09-08 16: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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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태영 언론인
사법시험 폐지를 앞두고 우리 사회에 찬반논란이 뜨겁다. 폐지를 찬성하는 측은 기존의 사법시험(사시)이 특권층 형성, 사법부에 대한 불신, 다수의 고시낭인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사시를 폐지하지 말자는 사람들은 로스쿨이 부유층들의 전유물이라며 사시 폐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하나의 제도를 말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시는 국가고시의 일종이다. 원래 고시에는 검사 판사를 뽑는 사법시험, 정부의 5급 사무관을 뽑는 행정고시, 외교관을 선발하는 외무고시 등이 있었다. 이거 말고도 7급, 9급 행정직을 선발하는 고시들이 있다.


지금은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고 취업난이어서 명문대 졸업생들도 처음부터 7급이나 9급 고시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원래 7급은 전문대 졸업생, 9급은 고교 졸업자를 주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었다.

대학생들이 고시를 본다면 사시(사법시험), 행시(행정고시), 외시(외무고시)였다.


외무고시는 외국 나가기 어려웠을 때에는 청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종이었다. 그런데 외교관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서인지 주로 서울 출신자들이 지원하였다. 최근에는 외무고시는 사라지고 정부에서 별도로 외교관양성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나 중요도로 본다면 행정고시가 으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고위 관료가 되어 국가의 정책이나 예산을 좌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시 하면 사시로 통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시를 합격해서 검사나 판사가 되면 대우가 3급인 부이사관부터 시작한다. 행시가 5급 사무관부터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무려 두 계급이나 높다. 요즘에는 사시합격자가 워낙 많아져서 사법연수원 수료하고도 6급 주사직에 시험보고 가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사시는 자격증 시험이다. 시험에 붙어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 변호사 자격증을 갖게 된다. 변호사는 명예와 적지 않은 특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요즘에는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존경받으며 잘 사는 사람들로 통한다.

   
▲ 신림동 고시촌의 거리 풍경.
사시를 합격해서 검사나 판사가 되면 사람들 구속하거나 방면할 수 있는 권세를 얻게 되고, 변호사가 되면 인권의 수호자라는 명예와 함께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보다 자랑스러운 직업이 또 있었을까?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에도 경력란에 자랑스럽게 채워넣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검사, 판사, 변호사라는 직업이었다. 현직에서는 부와 권세를 누리고, 나중에라도 정치에 접근하기 쉬운 자격증을 선사하는 시험이 사시였다.

그리고 사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시험이었다. 합격자 가운데에는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지방대학 출신이나 심지어는 국졸이나 상고만 나왔던 사람들도 시험에 합격만 하면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어 인생역전을 연출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적게 뽑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용한 산사(山寺)를 찾아 공부했다. 법전을 한무더기나 싸가지고 산 속의 절을 찾아 고시공부를 하는 고시생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는 속세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눈썹을 밀고 공부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옛 법조인들 중에 불교 신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아예 스님이 된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절친이다. 이 스님은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사법연수원 성적도 3등이었다. 변호인 명부에도 사진과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연수원을 졸업하자 바로 탈속해서 스님이 되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살아 간다. 지금도 가끔은 출가 이전의 친구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오직 불교 관련 서적을 번역출판하는 일에만 종사한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시의 문호가 갑자기 넓어졌다. 1년에 20명 뽑다가 점차 늘어나더니 1천명 이상 뽑게 된 것. 로또 대박 당첨자가 크게 늘어나게 된 셈. 당연히 지원자수도 급증했으며 수험 방법에 있어서도 급격한 '변혁'이 이루어졌다.

20명 선발할 때 수험생들이 산사에 기거하거나 대학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법전과 씨름하였다면, 1천명 합격자 시대의 사시공부는 학원에서 족집게 강사들의 요점정리 강의를 들으며 출제 경향을 그룹스터디를 통해 연구하는 방향으로 변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신림동 고시촌이다.

사시 합격자가 20~30명일 때에는 시끌벅적한 도심과 캠퍼스를 떠나 적막하고 고요한 산사나 산골의 고시원을 찾아가던 수험생들은 이제는 ‘수험 정보’를 찾아 서울 신림동으로 몰려들어 이른바 신림동 고시촌을 형성했다. 이곳의 수험생 숫자는 1990년대에 한창 많을 때는 2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수험생들이 몰린 것은 여러 가지 수험 과목 강의들이 매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대개는 사시를 합격한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대학교수가 된 사람도 있다. 인기 강사들은 수강료만으로도 거액을 벌어들였다. 민법 강의로 인기를 얻은 박 모씨처럼 고시공부만 한 사람도 명강사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이들의 강의에는 수강생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강의영상을 담은 테이프는 전국 각 대학에 전파되었다. 어느 대학에 재학중이든 수험생들이라면 이들의 강의 테이프를 열심히 보며 사시 공부를 하였다.

386세대의 사시 합격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특히 재학중 시위나 조직 사건 등으로 전과자가 된 386 운동권 출신 학생들 중에는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가 사시 공부를 해서 합격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현재 여야 정치인들 가운데에서도 386 출신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남녀 불문하고, 십중팔구는 신림동 고시촌 출신이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수험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운동권 출신이든 아니든 친밀한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다. 당시 권위주의적인 통치에 저항한다는 청년 학생들 특유의 동지의식과 신림동 달동네에서 함께 뒹굴었다는 고통스럽지만 나름대로 보람있는 추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곳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 중의 하나가 고시생들인 주로 찾던 서점들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의원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동 주최로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시험, 폐지할 것인가-사법시험 존치와 그 방법론' 토론회장 앞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회원들이 손팻말을 놓고 서 있다. 이들은 국회 내에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지 못하게 되자 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로스쿨 폐지와 사법시험 존치 필요성을 주장하는 메시지가 담긴 팻말 앞에 서서 자신들의 주장을 알렸다. /사진=연합뉴스
가장 유명했던 서점은 이해찬 전 총리 형제가 운영했던 ‘광장서적’. 이해찬은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김근태 전 의원 밑에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이라는 재야 조직에서 일했다. 이해찬은 나중에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급기야 국무총리가 되었다. 당시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공부하던 수험생들 가운데 광장서적에서 이해찬이 고시 수험서를 팔며 이런 저런 이야기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야당의 지도급 인사인 김부겸 전 의원도 신림동에서 ‘백두서점’을 운영했다. 김부겸은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학생운동을 벌이다 도피하기 일쑤였으며, 서점은 그의 부인이 주로 맡아 꾸려나갔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도 이 지역에서 ‘대학서점’을 운영했다. 이들이 운영하던 서점에서는 고시 수험서들과 학생들을 상대로 운동권 서적들을 주로 팔았다.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로 필명을 떨쳤던 노동자 시인 박노해 씨는 이화여대 약대 출신의 부인 김진주 씨와 이 부근에서 ‘대학약국’을 운영했다. 지금 박 씨는 노동운동이나 정치에서는 거리를 두고 팔레스타인 여행사진 전시회 등을 열고 있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그는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 출신의 백태웅이나 역시 서울대 법대생인 조국(현 서울대 법대 교수) 등을 조직원으로 거느린 서노련 등을 만들어 노동운동을 벌였다.

신림동 고시촌 출신들이 최고의 준재로 꼽는 인물은 원희룡 현 제주도지사. 제주도 출신인 그는 1982년도 학력고사에 수석하고, 서울대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그런데 재학중 시위 등으로 처벌을 받아 순조롭게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단 2년만에 사시에 수석합격하여 20만 고시생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그는 나중에는 역시 신림동 고시촌에서 명강사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다.

고시촌에서 공부한다고 모두가 합격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합격자는 소수이며 절대 다수는 불합격하는 게 현실. 수십 년 동안 사시공부를 하는 이른바 ‘장수생’들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흔하다. 아침에 산책을 하다 보면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고시 수험생들이 함께 운동을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장수생들 가운데에는 기행으로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명문 K고와 명문대 법대 출신의 J씨. 부유한 집안 출신인 그는 대학재학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의 가정교사를 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현재 60이 넘은 나이에도 독신으로 여전히 사시 공부 중이라고. 틈틈이 고교 동창인 재벌그룹 회장들과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때 민법 강사로 명성을 떨쳤던 P씨는 2000년이 다가오자 갑자기 휴거를 주장하며 일부 고시생들을 이끌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나가 구파발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집단기거하는 기행을 펼치기도 하였다.

일반인들은 그 시험 한두번 하다가 안되면 얼른 취직하지 왜 ‘고시낭인’ 소리 들으며 힘들게 사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고시생들과 일반인들과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듯 하다. 고시생들의 시간은 철저하게 시험일자를 기준으로 흘러간다.

사시는 1차 시험이 2월에 실시되며 합격자 발표는 3월에 나온다. 2차 시험은 7월에 실시되며 합격자 발표는 9월 초. 최종합격자 발표는 11월. 1차 시험에 한번 붙으면 2차 시험을 두 차례 치를 수 있다.

그런데 3월에 1차 시험에 합격하고 바로 7월에 시행되는 몹시 어려운 2차 시험을 제대로 준비하기가 어렵다. 자연히 2차는 다음 해 7월에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그런데 다음 해 2차에 함격하면 다행이지만 불합격하면, 또 그 다음 해 2월에 실시되는 1차 시험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그 다음 해 2월에 실시되는 1차 시험을 목표로 시험준비를 하게 된다.

자...이렇게 보면 2차 시험 한번 보는데 드는 시간이 보통 3~4년이다. 누구나 빨리 합격하고 싶지만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입 재수 하듯, 1차든 2차든 재수, 삼수 하면 10년이 훌딱 지나가게 된다. 응시원서 몇 번 쓰다 보니 30대, 40대, 50대 심지어는 60대도 된다, 고시생들에게 시간은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1961년에 김승호와 신영균이 주연한 ‘마부’라는 영화가 인기를 누렸다. 마부 김승호의 착한 아들 신영균이 고등고시(당시라면 고등고시 사법과일 듯)에 합격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마부 일가의 인생역전을 예감케 하는 것이 줄거리. 가난하고 비좁은 땅덩이에 살던 청년들에게 사시합격은 만인이 우러러보게 하는 로망이었다.

다음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면서 사시 합격생들도 매년 1천명 대로 급증하였다. 이전 세대들보다 손쉽게 꿈을 이룬 사람들도 많아졌다. 세상도 많이 변했다. 고학과 독학으로 ‘사시 합격의 영광’을 얻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자수성가한 영웅대접을 받기 어렵게 되었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 자수성가한 영웅은 네이버를 창업한 이해진, 카카오톡의 김범수, 엔시소프트의 김택진 등이 아닐까?

합격자들 가운데에는 검사, 판사로의 진출보다 로펌에 취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로펌 취직도 최상위권 성적을 얻지 않으면 잘 안된다. 법조인은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에서 서비스업종 종사자로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 머지 않아 외국 로펌들도 국내로 진출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서비스만 좋다면 국내 변호사뿐만 아니라 외국 로펌에의 의뢰도 마다 않는 세상이다. 변호사는 그냥 법률 서비스업의 한 분야이다. 국가든 대학이든 소비자들에게 유용하고 국제적으로 경쟁력있는 법조인을 양성해 내면 된다.

사법시험이 인생역전을 보장하는 기회가 되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 무슨 기회균등이니 사회정의니 하는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는 또 하나의 시대착오가 아닐까? /우태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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