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 쫓겨 하나마나한 개혁…공무원연금개혁 재탕 우려

한국의 고용시장 동향이 심상치 않다. 대내외 요인으로 인한 수출부진과 내수위축으로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됐고 정년60세 연장 시행을 앞두고 신규채용 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년연장으로 인해 향후 3년간 노동시장에 잔류하게 되는 인원이 30만 명에 이르다보니 채용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른바 ‘에코 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들이 올해부터 4년간 추가로 10만 명 정도가 노동시장에 유입될 예정이기 때문에 청년실업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정치권은 여전히 정쟁만 일삼고 있다. 게다가 여야는 노동시장 개혁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방법에 대한 입장 차가 워낙 뚜렷해 앞으로도 논의가 진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사정위도 첫날부터 파행을 겪는 등 노동시장 개혁은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는 노동시장 개혁과제 연속토론회를 통해서 고용시장의 동향을 분석하여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환기시키고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요건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이슈에 대한 바람직한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른사회는 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노동시장 개혁과제' 연속 토론회 1차 <한국 고용시장 동향과 임금피크제 도입 방안>을 개최했다. 손정식 한양대 명예교수의 사회와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제로 시작한 토론회는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오정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가 패널로 참석하여 열띤 토론의 장을 펼쳤다. 아래 글은 오정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오정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

시간에 쫒긴 용두사미 노동개혁으로는 한국경제 미래 없다

노동개혁의 쟁점과 해법

지난 8월 6일 노동개혁 없이는 경제재도약도 없다는 요지의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발표됐다. 25분간의 담화 중 1/3을 노동개혁에 할애하면서 노동개혁에 대한 간곡한 당부가 있었다. 이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관련 법안을 조속히 국회에 상정해 정권을 잃는 한이 있더라고 연말까지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대통령 담화가 나온 후 지난 4월 이후 중단됐던 노사정위원회가 다시 소집됐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은 암울하다. 한국노총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동개혁 의 핵심사안인 일반해고지침과 취업규칙의 변경은 중장기 과제로 돌리고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2년->4년)도 다루지 않고 임금피크제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만 따로 떼어서 논의 하겠다는 소식이다. 이 소식이 사실이라면 시한에 쫓겨서 하나마나한 개혁이 되고 만 공무원연금개혁 재탕이 될 우려가 크다.

   
▲ 금호타이어 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한 지난달 17일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한 노조원이 대체인력이 투입돼 일부 가동 중인 공장을 떠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동개혁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급증하는 청년실업 해소와 고령화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공식 청년 실업자가 45만 명, 청년 실업률이 10%다. 여기에 구직단념자 18만 명, 취업준비생 37만 명, 쉬는 청년 11만 명을 합하면 사실상 청년실업자는 112만 명, 체감 청년 실업률은 22%에 달한다. 청년경제활동인구 435만 명의 4명 중 1명은 일자리가 없는 실정이다.

장년들 문제도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성장둔화로 경제활동이 위축돼 조기에 퇴직하고 자영업을 하는 약 700만 명의 자영업자 중 혼자서 하는 영세자영업자가 400만 명에 달하고 이들은 과당경쟁으로 월수입이 100~200만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 2015년 4월 기준, 청년경제활동. /자료=통계청

둘째는 해마다 급등하는 임금부담으로 국제경쟁력을 상실해 종래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해외로 탈출했던 노동집약적 중소기업은 물론 이제는 대기업조차도 해외로 나가면서 일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문제를 조금이라고 완화해 국내 일자리 창출 기회를 늘리고자 함이다. 한국의 인건비는 한국보다 소득수준이 두 배 정도나 되는 일본보다 높은 분야가 많은 현상은 벌써 오래되었고 심지어 근년에는 미국이나 독일보다도 높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4년 기준 현대자동차의 연평균 임금은 9700만원인데 비해 일본 도요타는 8184만원, 독일 BMW는 6000만원에서 7000만원 사이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여기에 생산성까지 고려하면 한국의 인건비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에서는 자동차 한 대 생산하는데 26.8 시간이 소요되는 데 비해 중국은 17.7 시간, 미국은 14.7에 불과하다. 미국 컨퍼런스보드라는 권위 있는 연구기관은 미국의 노동생산성을 100으로 할 때 일본은 66, 대만은 59인데 비해 한국은 48로 조사대상국 중 30위로 최하위 수준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심지어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49보다도 낮아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나마 한국은 야간작업을 싫어해 8시간씩 2교대만 하고 5조원 이상이 투입된 대형공장을 야간에는 아예 쉬고 있어 투입비용 당 노동생산성은 더욱 심각하다. 그 결과 현대차는 자꾸만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겨 한국생산비중이 40%를 하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양질의 일자리가 자꾸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빈국 한국에서 오직 땀 흘려 일하는 근면 성실 하나 만으로 세계 최빈곤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온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근로윤리가 어쩌다 그리스보다도 못한 수준까지 추락했단 말인가.

   
▲ 미국 일본 대만 그리스 한국 등 각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자료=컨퍼런스보드(2014)

설상가상 근년 들어 경제민주화 광풍을 타고 기업 임금부담을 급등시키는 요인들이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다. 우선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문제가 오랜 한국 임금체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재계는 통상임금 문제가 반영될 경우 임금상승률이 15~25% 수준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근로시간단축으로 연 12조원의 임금부담이 발생하고 임금피크제 없이 내년부터 정년연장이 시행될 경우 인건비 추가부담이 5년간 115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반영될 경우 임금상승률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될 것은 자명하고 그런 속에서 과연 한국에서 공장을 돌릴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는 임금상승욕구는 이른바 87년체제라고 불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부터 6년간 연평균 임금이 20%씩 올랐던 때를 연상케 한다. 그로 인해 1988년부터 한국기업의 해외탈출러시가 시작되었고 성장동력이 약화되면서 10년 뒤 1997년 위기의 싹이 되었었다. 다시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성장동력은 급속히 약화되어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그 결과 일자리는 더욱 없어져 청년실업과 장년 과당경쟁 자영업 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의 미래가 암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해 8월부터 대통령 직속 노사정위원회를 가동하고 노동개혁을 추진해 왔다. 주요 의제는 임금피크제 도입,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파견대상업종 확대와 저성과자 해고요건 완화, 성과중심 임금체계 개편, 근로시간단축이다. 이 중 임금피크제는 내년부터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되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기업의 임금부담은 덜어주고 줄어든 임금으로 청년 고용을 늘리자는 정책이다. 정년연장은 임금피크제와 불가분의 관계다. 내년부터 300인 이상의 기업에서 시작하고 내후년부터는 모든 기업으로 확대 시행되는 정년연장은 이미 입법화된 상태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은 연공서열식의 임금체계가 대부분인 한국기업들의 임금부담을 급등시킬 것은 명약관화하다.

   
▲ 지난 8월 6일 노동개혁 없이는 경제재도약도 없다는 요지의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발표됐다. 25분간의 담화 중 1/3을 노동개혁에 할애하면서 노동개혁에 대한 간곡한 당부가 있었다./사진=청와대홈페이지

임금피크제를 원활하게 도입하기 위해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에 대해 장년고용유지+청년신규고용 1쌍 당 1080만원의 지원책도 내놓고 있다. 2015년 세법개정안에는 청년정규직 신규고용 1인당 500만원씩 세액공제로 돌려준다는 안도 제시해 놓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 없는 정년연장은 5년간 115조원의 기업부담이 발생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경우 5년간 30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분석결과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도입기업은 10%에 불과하고 316개 공기업 가운데서도 24곳만 도입하고 있다. 이미 정년연장은 담보된 상태에서 연공서열식 임금체계 덕분에 고임금을 받고 있는 고령상위직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반발 때문임은 물론이다. 지난 4월 노사정위가 결렬된 후 6월말 정부는 노사합의가 없는 경우에도 노조가 대안 없이 반대만 할 경우 기업의 취업규칙 변경만으로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어서 대통령담화 후 정부는 전 공공기관의 연내 임금피크제 도입을 발표했다.

정부는 해고 유연성 제고에 맞추어 실업급여기간을 한 달 연장하고 급여액을 10%포인트 인상하는 안까지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현상전략상 미리 양보안을 제시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임금피크제를 먼저 합의하고 정년연장을 협상해야 하는데 정년연장을 먼저 법제화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니 이미 기득권을 확보한 노조가 임금피크제에 합의할 리 없는 실수가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성공한 노동개혁으로 평가받고 있는 독일의 하르츠개혁에서는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줄이고 수령액을 하향조정하고 구직훈련 참여의무와 제공 일자리 수용의무를 부과했었다. 심지어 실업자의 경제활동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적은 금액이지만 수입기록이 있어야 나머지 실업 급여를 지급해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사회보장비의 지출을 최소화했다.

재개된 노사정위는 한노총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임금피크제는 공공기관만 따로 떼어 원포인트로 논의할 수도 있다고 해 민간부문 임금피크제가 유야무야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 한노총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변경은 의제에도 올릴 수도 없고 심지어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마저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다 저생산성 근로자의 해고유연성을 높여 세계 최하위 수준의 노동생산성을 올리고 청년신규고용을 늘리고자 하는 일반해고요건 완화도 중장기 과제로 돌리고 비정규직 고용 기간연장도 다루지 않으면 무엇을 노사정위에서 다루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되 면 노동개혁은 용두사미식 하나마나식 개혁이 될 우려가 크다. 설상가상 지금 아예 대화의 장에 나오지도 않고 있는 민노총은 어찌할 것인가.

이번 노동개혁마저 시간 맞추기에 급급해 지난 공무원연금개혁처럼 유야무야 끝나면 한국경제 미래는 정말로 어둡다. 한국수출의 25%를 내보내고 있는 중국경제의 추락이라는 리스크가 목전에 다가오고 있어 투자환경개선을 통한 투자활성화로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도 늘려 내수를 제고해야 하는 절박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실효성 있는 노동 개혁을 연내에 달성해야 한다. 내년 4월 총선이 있고 이어 내후년에는 대선이 있기 때문에 내년 들어서면 개혁의 고삐를 당길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좌우 할 노동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관련 법안을 조속히 국회에 상정해 정권을 잃는 한이 있더라고 연말까지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대통령 담화가 나온 후 지난 4월 이후 중단됐던 노사정위원회가 다시 소집됐다./사진=미디어펜

노사 양보와 합의에 의한 개혁이 아름답지만 양보와 합의가 안 되면 노조가 논의의 장에 들어오는 시한을 정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1980년대 영국의 대처나 1990년대 독일의 슈뢰더 식으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대안이다. 영국 대처수상은 정부 단독으로 노동개혁안을 추진했고 독일 슈뢰더 수상도 1998년 집권 후 처음에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후 2002년 전 폭스바겐 인사담당 이사였던 하르츠(Peter Hartz)를 위원장으로 하는 전문가개혁위원회인 하르츠위원회를 구성해 개혁안을 만들어 강행했다.

이 경우 극복해야 할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 일부 입법이 필요한 사안은 어떻게 국회 야당 벽을 넘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환경노동위원회가 야당이 과반수를 넘고 본회의에서는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야당의 협조 없이는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둘째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기업의 취업규칙변경이나 노동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저성과자 해고요건 완화 등 기업이 결정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들은 반대하는 노조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만약 노사 간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공공의 질서가 크게 훼손될 경우 공권력이 질서 유지를 강력하게 뒷받침해 줘야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 정도의 강성노조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기업이 알아서 추진하라고 하는 것은 정부로서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1980년대 초 필자가 마침 영국유학 중 1년을 끈 유명한 광산파업을 지켜 볼 기회가 있었다. 파업현장에는 언제나 정복을 입은 경찰이 출동해 사업장 파업, 일하는 동료들을 위해하는 행위, 기타 폭력적인 행위는 일제 못하게 하고 대처수상 등 정부 관료들도 직접 현장을 방문해 대화하고 설득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정도로 정권의 명운을 건 결단과 추진력이 없이는 노동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그러나 그처럼 힘겨운 노동개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경제위기시에도 경제활동참가율의 급격한 하락이나 실업과 재정부담의 급격한 증가 없이 위기를 상대적으로 잘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을 오늘날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는 영국과 독일은 보여주고 있다.

야당 일각에서는 노동개혁을 전담할 국회대통합기구를 만들자거나 노동개혁보다 재벌개혁이 먼저라는 등 구태의연한 정치적 공세를 하고 있기도 하다. 노동개혁이 노사정위원회를 떠나 국회로 넘어 가는 순간 정쟁화되어 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재개된 노사정위원회에서 최소한 달성해야 할 노동개혁의 목표와 시한을 정해 놓고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없거나 시한을 넘기게 될 경우 1980년대 영국의 대처나 1990년대 독일의 슈뢰더 식으로 정부와 여당이 주도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개혁 을 추진해야 한다. 이 경우 국회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도록 국민적 공론을 형성해 압박을 가하는 전략전술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