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보다는 자유시장경제 원칙 따라 비정상 시장부터 바로잡아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뜨겁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연이어 국정화를 언급하고 국정감사에서까지 핵심잼점이 됐다. 한쪽에서는 소위 진보교육감들과 전교조 역사 모임 등이 들고일어나 국정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등 우파 진영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국정화가 답’이라며 포럼을 열었다.

보고 있자니 전면 무상급식 논의가 불붙던 5년 전이 생각난다.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진영이 가난한 아이들 교육비를 빼앗아 부자 아이들 밥값으로 써야 한다는 진보와는 정반대의 정책을 목숨 걸고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자가당착이 일어난 것은 전면무상급식 지지자들이 예산배분이 달라지는 정책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권의 구호에만 매몰된 탓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눈칫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과는 다른 구호가 진보 진영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했다. 더불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진보의 일반적 프레임이니 전면 무상복지, 보편 복지라고 하면 더욱 보편적이고 전면적인 진보라고 착각할만한 의제 명칭까지 더해졌다.

지금의 상황은 당시와 유사한 의문이 들게 한다. 물론 진영은 바뀌었다. 이번에는 우파를 자처하는 진영이 시장 개입 정도가 아니라 역사교과서 시장을 국가가 완전히 통제하는 독점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삼자는 우파의 이념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우파를 자처하는 진영이 열렬히 지지하는 것이다.

물론 무상급식 당시 그랬듯이 이번에도 단순히 정치권발 프레임의 흐름에서만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공산주의와 민중사관에 근거해 기술된 역사교과서, 사실까지 왜곡시키며 반대한민국 정서를 내면화시키는 역사교과서를 막기 위해 국정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파 진영에서 당연히 환영할 일인 것 같다.

   
▲ 자유민주수호연합, 나라사랑실천운동, 바른사회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한 교육정상화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공산주의 만연을 막는 방법이 큰 정부를 만들고 시장에 국가통제 독점 체제를 들여야 한다는 것이라면 적어도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우파 진영에서는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지 한 번 더 고민해야 할 일이다.

그간의 국정화 주장의 배경과 이번 포럼의 내용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역사교과서가 사관부터 편향돼 있고, 내용도 왜곡됐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김일성을 마치 무장 독립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독립투사인 것처럼 미화하고 6·25가 남침이 아닌 것처럼 기술한 교과서, 유관순 열사까지 빼면서 6·25를 일으킨 북한의 핵심인사를 독립투사로 실은 교과서, 실력양성·외교에 애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술은 줄이고 소련의 지원을 받은 좌익 무장투쟁단체들에 대한 기술은 늘린 교과서, 건국대통령과 한강의 기적을 깎아내리는 교과서를 보고 내 아이가 우리 역사를 배운다고 생각하면 충격적인 일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라면 이를 자유주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올바른 역사적 사실과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사관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를 시장에 내놓고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파가 내놔야 하는 정답이다.

그건 교과서 속에서나 나올 이상적인 정답이고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좌익 역사교과서가 득세한 작금의 현실에서 이를 바로잡아보려고 만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결국 거의 채택되지 못한 상황에서 국정화가 비록 최선은 아닐지라도 최악을 막기 위한 현실적 방안이라는 반론을 펼칠 수도 있다.

과연 그런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채택되지 못한 것은 정치 세력의 비정상적인 시장 개입 때문이다. 전교조를 위시한 반대한민국 세력이 끊임없는 음해로 이미지를 실추시켰고, 학교현장에서까지 단체들을 동원한 시위와 협박이 이어져 채택이 불발된 것이다. 이는 명백한 시장교란행위다. 그것도 야당 국회의원들까지 동원했으니 권력까지 유착된 정경유착이다. 시위단체들의 불법적 시위와 협박까지 개입됐다.

그렇다면 우파는 국가 통제를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런 악의적인 시장교란과 불법적인 개입을 처벌하고 반드시 차단해 정당한 시장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올바른 사관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경쟁력까지 갖춘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고, 이 교과서가 시장에 정상적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온갖 음해를 비롯한 시장교란 행위는 차단해 그 교과서 선택을 늘린다. 이것이 우파다운 해결책이다. 기형적인 시장 왜곡을 뿌리 뽑아야 할 일이지 국가통제를 하자고 우파가 외칠 일은 아니다.

누가 그걸 모르느냐고, 지금은 저들이 업계를 이미 장악하고 있어서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그게 어려우니 국정화 얘기까지 하는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진짜 냉정한 현실을 얘기해 주겠다. 만약에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한다고 하면 지금 당장 잘못된 기술들을 바로잡고 다시 우리나라를 긍정하는 역사교과서 제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반가운 얘기다.
그런데 만에 하나 2017년 말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면 애써 제작한 대한민국의 교과서는 없어지고 당장에 지금보다 더 심한 친북 교과서를 모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다행히 당장 정권 교체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영원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사실과 건전한 사관에 근거한 질 좋은 역사교과서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면 좌파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국정화 주장을 내놓거나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기 전까지는 그 흐름을 역행하기는 힘들게 된다.

그래도 일부 있을 나머지 왜곡된 교과서의 유통이 걱정된다면 검정체제를 유지한 상황에서 집필기준을 강화하고 이를 엄정하게 확인하면 될 일이다. 자유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이 범법행위마저 자유롭게 방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교과서의 유통을 차단하는 일은 우파도 지지할 수 있는 정당한 범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현재 발행체제와 검정과정의 허점과 기형적 시장교란을 바로잡을 생각을 안 하고 일거에 문제 해결이 쉬워 보인다고 정권이 바뀌면 부메랑으로 돌아갈 국정화를 지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 번에 모든 게 해결되는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용자의 희망에 기댄 허구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지난한 투쟁을 거쳐 병을 이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거기에 약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투쟁의 힘을 보태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가르치겠다면서 자유를 포기한 방식을 내세우는 자가당착을 한다면 우리 후세들이 그 모습을 보고 과연 자유의 가치를 배울 수 있을까? 원래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힘겨운 투쟁 끝에 얻는 것이요, 끊임없이 강대한 자유의 적들과 싸워서 지키는 것이다. /박남규 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