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논란 박근형 역공세…'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군 부정적 묘사
   
▲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누가 보더라도 국가기금의 지원을 받아 마지막까지 제작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다. 박근형 연출가가 자신의 작품에 확신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계속 하는 것은 그만의 자유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창작산실이라는 국가 프로젝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진=JTBC 화면 캡쳐

[미디어펜=이서영 기자] 문화예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념갈등이 첨예한 분야다. 한동안 잠잠하던 연극계에 다시 정치편향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창작산실' 프로그램은 연극 작품에 최대 2억 6000만 원까지 지원하는 커다란 프로젝트다. 5명의 심사위원들은 지난 4월 8개의 작품을 선정해 제작 절차에 돌입했다.

문제는 제작이 결정된 작품 리스트에 ‘논쟁적인 연출가’의 작품이 포함되면서부터였다. 2010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2013년 ‘개구리’라는 연극의 정치편향성으로 큰 논란을 야기한 박근형 연출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돌연 제작을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의 하차가 외압에 의한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박근형 연출가는 문예위원회 쪽에서 먼저 “자진해서 그만 두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문예위가 박근형 연출가를 불편해 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문예위는 어떤 점을 불편해 했을까.

우선 그가 2013년 연출한 ‘개구리’라는 작품은 당시에 이미 '노무현 미화·박정희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좌우 이념 대결을 부추길 뿐 아니라 현 시대의 문제를 죽은 정치인(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결할 것이라는 발상 때문에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근형 연출가는 “노무현 대통령 잘못은 별로 안 떠올랐다. 어느 정도 정치적 편향성을 띤 게 맞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작품이 ‘국립극단’이 제작한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정치적일 뿐 아니라 한쪽으로 편향적인 작품이 혈세로 운영되는 국립극단에 의해 제작된다는 점은 당시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논란은 2015년 박근형 연출가의 새로운 작품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극단 골목길)가 ‘창작산실’ 프로젝트와 연계되면서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다. 탈영군인, 일본의 자살 특공대, 잠수함 피해 군인들, 이라크 무장단체 군인 등, 다양한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작품의 대본은 정치적 논란이 될 수 있는 장면이 다수 존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인물에 대한 부정적 묘사, 이라크 참전 미군에 대한 부정적 묘사(민간인 학살 장면), 한국군 이라크 파병 반대, 탈영군인을 묘사하는 과정의 우리군인에 대한 부정적 묘사, 천안함으로 인식될 수 있는 잠수함 침몰 직전 우리 군인들에 대한 부정적 묘사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극중엔 “마사끼”라는 이름의 군인이 일본 천황에 충성하는 조선인으로 나온다. 이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이름인 “다까끼 마사오”를 조합한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라크 파병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보이지 않는다. 한쪽으로 편향돼 있는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미국이여! 네가 한국한테 한 짓을 보아라.
한국, 미국과 같은 편을 서게 된 너희 벌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닌 너희의 선택이다.
너희는 우리 이라크 사람들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너희는 미국을 위해 온 것이다."

- 이라크 파병에 반대할 뿐더러 미군을 '민간인 학살집단'으로 묘사, 국군은 미군에 종속된 집단으로 묘사함.

헌병: 탄약고 경계근무 중 환기구 파손, 무기 절취 이탈했습니다.
장교: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통째로 맡기셨구먼. 나머지 경계병은 걔가 그 짓 할 때 뭐 했고?
헌병: 변비 때문에 화장실에 있었답니다.
장교: 아주 영화를 찍는구나, 이 새끼들 군기들 빠져 가지고!

- 탈영군인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국군을 부정적으로 묘사함.

"갑자기 비상벨 소리 들렸고. 그런데 눈을 딱 떴는데 제 앞에 그, 보이더라구요. 물이. 보이는데... 너무 무서워서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울고만 있었어요. (...) 기억이 안납니다.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구요. 아무런 기억이 안 난다구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당신은 뭐했는데? 그 날 당신은 거기서 뭐했는데?"

- 천안함을 비유한 것으로 보이는 잠수함 침몰 직전의 국군에 대해 상황을 회피하는 캐릭터로 부정적 묘사함.

박근형 연출가가 문예위와 갈등을 빚은 사실이 알려지자 JTBC를 비롯한 각종 언론은 이 문제를 ‘유신시대 정치검열’로 묘사하면서 문예위를 질타하고 있다.

만약 문예위가 박근형 연출가의 창작활동 그 자체를 막았다면 이러한 논란은 그나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 상황은 그런 것은 아니다.

수억 원 대의 세금을 지원받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가 지나친 정치편향성, 그것도 군인을 비하하는 반(反) 국가적 내용과 이전 정권들을 부정하는 반(反) 정부적 내용으로 채워진다면 이건 명백한 모순이다. 문예위는 그런 모순을 막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 것일 뿐 이 문제를 ‘검열’로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역(逆) 정치공세인 것이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누가 보더라도 국가기금의 지원을 받아 마지막까지 제작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다. 박근형 연출가가 자신의 작품에 확신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계속 하는 것은 그만의 자유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창작산실이라는 국가 프로젝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소모적인 정치논란 없이 연극만의 미학을 담아낼 수 있는 훌륭한 작품들은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