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2015년이 한국 예능역사의 중요한 한 기점으로 기록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건 2개의 프로그램 때문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신서유기’다.

MBC에서 방영 중인 ‘마리텔’에는 총 5명의 출연자가 나오지만 이들은 한 세트장에 모이지 않는다. 각자의 방에서 가장 자신 있는 콘텐츠를 각자의 시청자들에게 송출한다. 그 결과를 가지고 경쟁하는 방식. 인기가 없으면 도태된다.

출연자들이 오디션을 치르며 경쟁하는 시스템이야 현재의 예능풍토에서 일반적인 것이다. ‘마리텔’의 독특한 점은 그 오디션을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아프리카TV 등에서 오래 전에 시작된 인터넷의 방식이다. 즉, ‘마리텔’은 인터넷 1인칭 방송의 논법을 지상파에 끌어와 성공을 거뒀다.

더 이상 미디어의 제왕이 TV가 아니라는 사실이 가설에서 정설로 확인된 셈이다. 오히려 TV는 인터넷의 방식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됐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핀치에 몰린 김재연 전 국회의원이 아프리카TV 방송을 시작한 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연예인들이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는 걸 더 이상 꺼리지 않게 되었다는 점은 2015년부터 관찰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 tvN와 네이버, 스타PD인 나영석과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이승기 등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신서유기’는 오로지 인터넷으로만 공개되며 TV방송 예정은 없다. /사진='신서유기' 홈페이지 캡쳐

‘신서유기’는 이 여세를 몰아 활동영역을 아예 인터넷으로만 한정했다. tvN와 네이버, 스타PD인 나영석과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이승기 등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신서유기’는 오로지 인터넷으로만 공개되며 TV방송 예정은 없다.

그렇다 보니 방송 분위기가 TV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 자막에는 ‘빡세다’ 같은 속어가 튀어나올 뿐 아니라 유니클로나 서브웨이 같은 상표명도 자유롭게 등장한다. ‘신서유기’를 유통하는 역할을 맡은 네이버는 방송사업자가 아니므로 방송법 심의를 받지 않는다. ‘신서유기’ 멤버들이 5년 전 ‘1박 2일’로 큰 성공을 거뒀던 곳이 공영방송 KBS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5년 만에 강산이 바뀐 셈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도박과 이혼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출연자들에게도 절묘한 복귀의 계기가 돼줬다. ‘신서유기’는 이수근이 도박 문제로 물의를 빚었다는 점을 대놓고 거론한다. 마침 서유기(西遊記)는 죄를 지은 중생들의 여정을 담은 이야기였기도 하다. 이수근에게 손오공이라는 캐릭터를 부여해 등짝에 저주파 치료기를 부착시킨다는 설정은 예능과 현실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가며 재미를 선사한다.

   
▲ 타이틀마저 사자성어 같은 ‘신서유기’의 무대는 중국이다. ‘신서유기’ 제작사인 tvN은 중국 진출에 연일 박차를 가하고 있는 CJ 계열의 채널이다. /사진='신서유기' 방송화면 캡쳐현재 10화까지 공개된 ‘신서유기’는 중국의 명소, 중국의 음식, 그리고 중국의 언어를 이용해 웃음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타이틀마저 사자성어 같은 ‘신서유기’는 중국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신서유기’ 제작사인 tvN은 중국 진출에 연일 박차를 가하고 있는 CJ 계열의 채널이다.

현재 10화까지 공개된 ‘신서유기’는 중국의 명소, 중국의 음식, 그리고 중국의 언어를 이용해 웃음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방송분만 챙겨 봐도 “칭원”(저기요) “쭈빠찌에(저팔계)” 같은 단어가 익숙하게 다가온다. 일본과는 선을 긋고 중국과는 거리를 좁히는 경향은 비단 정치권에서만이 아니라 예능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때는 마침 한-중FTA 발효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CJ는 중국을 사로잡기 위한 갖가지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일 첫 방송분(5회 분량)이 공개된 ‘신서유기’는 1주일 만에 전체 재생수 2천만을 돌파했다. 네이버에서 공개된 인터넷 콘텐츠 중 단연 독보적인 성적. 시청자들은 주로 모바일을 이용했다.

결국 ‘신서유기’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미디어인 모바일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 중국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것이 새로운 예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