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81)-불우한 지식인 공자의 살아있는 가르침
리링(李零)의 논어 주석서 『집 잃은 개(喪家狗, 我讀論語)』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공자(孔子)’하면 떠오르는 『논어(論語)』는 동양고전 가운데 첫손에 꼽힌다. 동양의 교양인 치고 『논어』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듯싶다. 특히 『논어』를 완독하지 않았더라도 학교 교과서의 여러 글에서 명언 한 두 구절이라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하지만 사대부의 필독서였던 과거와 달리, ‘공자 왈’이 현대인에게 끝까지 읽어 봐야 할 치명적 매력을 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저 『논어』 몇 구절을 기억하여 때때로 인용하면서 인문적 교양을 과시하는 정도로 그 쓰임이 떨어진 듯하다. 물론 이런 상황은 시대 변화의 탓도 있지만 공자의 지나친 성인화(聖人化)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공자가 위대하게 부각될수록 일상의 보통사람들의 삶과 거리를 넓히고, 본받아 실천하기엔 도무지 어려운 고리타분한 말씀으로 치부되기 때문은 아닐까.

공자가 ‘상갓집 개’라고?

『논어』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공자의 진면목을 알아야 한다. 신격화된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를 마주할 때, 그의 생각과 말, 행동에 담긴 교훈과 가치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현대인의 ‘공자 읽기’는 이런 바탕 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시작의 끝에서 발견하는 공자의 모습이 설사 ‘위대한 성인’으로 환원되어도 그 때 만나는 공자는 참다운 공자의 모습일 터다.

리링(李零)의 『집 잃은 개(喪家狗, 我讀論語)』는 『논어(論語)』의 주석서다. ‘논어’를 완역하면서 풍부한 해설을 담았다. 무려 139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특히 ‘논어’읽기에 필요한 지식과 공자의 인성과 핵심적 가르침을 평론한 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말미는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리링은 공자의 여러 말씀의 일반적 교훈은 물론, 공자의 언행 뒤에 숨은 공자의 내면까지 살피며 『논어』를 읽어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이 책이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발간된 수많은 『논어』 주석서들 가운데, 주희의 『논어집주(論語集註)』와 이탁오의『논어평(論語評)』이래 최고의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저자 리링은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로 『논어』과목의 강좌를 통해 공자의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공자의 삶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해왔다. 이 책은 그 강좌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진지한 주석과 달리 ‘상가구(喪家拘)’ 라는 사뭇 도발적인 책 제목 때문에 부차적인 주목을 받았다.

사실 ‘상갓집 개’라는 표현은 ‘공자’ 스스로 인정한 “집 잃은 개처럼 풀 죽은” 공자의 모습에 대한 ‘틀리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마천(司馬遷)이 쓴 『공자세가(孔子世家)』, 왕숙(王塾)이 쓴 『공자가어(孔子家語』 등에도 이미 기술되어 있는 공자의 모습이다.

‘상가구(喪家拘)’는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아 발탁되지 못해 여러 나라를 떠돌며 조바심에 입이 마르던 당시의 공자의 모습을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따라서 전혀 ‘도발적’이지 않은 제목이다. 하지만 큰 논란거리가 된 이유는 외람된 표현을 한 치도 용납할 수 없는 공자숭배론자들의 과민반응 때문이다. 이들에겐 당시 공자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진지한 이해보다, 공자의 이미지에 더 마음이 쓰였기 때문인 듯하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격이다.

공자는 주공(周公)처럼 전권을 위임받아 정치적 포부를 펼쳐 예악과 도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희구했다. 하지만 어떤 제후도 그의 원대한 포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라고 한탄한다. 또“하늘을 원망할 수도 사람을 탓할 수도 없다. 평상적인 것을 배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갈 뿐이다. 나를 알아줄 이는 아마도 하늘뿐인가 보다!”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공자의 염원과 포부, 그의 굴욕과 좌절을 함께 이해해야 『논어』 속에 담긴 그의 고뇌와 지혜를 마음으로 배울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논어』 속에 담긴 공자의 철학을 제대로 음미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 리링의 눈을 통한 논어 읽기는 진지하고 흥미롭다. 그는 중국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 특히 『곽점 초죽간(郭店 楚竹簡』등 1990년대 발굴된 논어의 새로운 판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에 얽매이지 않고 행간에 숨은 공자의 진심을 읽어 낸다.

특히 저자는 그동안 『논어』 읽기에서 지나친 공자 존숭의 폐단이 만들어낸 일체의 정치화, 도덕화, 종교화의 관점을 거부한다. 독자들을 있는 그대로의 공자의 모습, 진실한 공자를 만나도록 안내해 준다는 점에서 『논어』 읽기에서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첫 번째 책이다.

호학(好學)의 종결자 공자

자, 이제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핵심 사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자. 공자만큼 배움을 좋아한 사람도 없을 듯하다. 공자는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한다. “배우면서 때로 그것을 익히는 것도 기쁘지 않은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도 즐겁지 않은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1-1: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특히 부단한 시습(時習)이 그 열락의 원천이요 군자의 제일 덕목이다.

공자는 가히 호학(好學)의 종결자다. “발분하면 음식 먹는 것도 잊고(發憤忘食) 즐거움으로 근심도 잊고 곧 늙음이 다가 온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열 가구가 사는 마을에 성실함과 신뢰에 대해서는 나정도 되는 사람이 분명이 있겠지만, 나처럼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5-28 子曰: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며 스스로 자부했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호학의 으뜸은 안회였다. 공자가 안회를 지극히 사랑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순히 학문하기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호학이라 이를 수는 없다. 가르침의 실행이 뒤따라야 진정한 호학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는 학습에서의 자발적 노력을 강조한다. “마음속에 배움의 열정이 가득하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표출하도록 해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예를 들어줄 때 세 귀퉁이로써 대답하지 않으면 더 이상 계속하지 않는다.(7-8: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리링이 주목한 공자의 교육방법은 바로 스스로 발분(發憤)할 때 계발(啓發)시켜 주는 방식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불가(佛家)의 공안(公案)인 ‘줄탁동시(啐啄同時)’ 의 맥락과 같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곤경에 처해서도 배움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困而不學)은 최하급의 인간이 되고 만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상등급이다.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이다. 곤란을 겪고 나서 배우는 사람은 또 그다음이다. 곤란을 겪고 나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백성으로서 하등급이다.(16-9 :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공자는 학인(學人)의 자세로 한 발 나아간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爲政-11 :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공자는 항상 배워나가는 사람(學而知之者)으로써 온고지신(溫故而知新)하는 자세를 요구했던 것이다.

공자는 학습[學]과 성찰[思]의 상호 보완성도 강조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에 빠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의혹에 빠진다(2-15: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하였다. 배운 것에 대해 사색의 보완을 통해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야 하고, 사색과 성찰에만 머물며 체계적인 학습을 게을리 할 경우 “머리가 헛돌고 스스로를 자신 속에 가둬”두어 멍청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자는 문(文)과 질(質)의 조화도 중요시했다. 형식과 본질의 어울림이 있어야 학문의 완성, 인간의 완성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보았다. “바탕이 형식을 압도하면 거칠고, 형식이 바탕을 압도하면 우아하다. 형식과 바탕이 조화를 이루어야(文質彬彬) 군자다.”(6-18: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교언영색(巧言令色)을 하는 사람 중에 어진 이가 드물다고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 공자 초상

예(禮)는 불평등한 사회의 질서 규범?

공자는 예(禮)를 중시했지만, ‘문질빈빈(文質彬彬)’의 관점에서 형식보다 진심을 중시했다. “예라는 것은 사치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좋고, 상을 치를 때는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더 낫다(3-4:禮, 與其奢也, 寧儉; 喪, 與其易也, 寧戚.).”고 한 이유다.

공자의 예의 핵심 개념은 공자의 제자인 유자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의 운용에서는 조화를 귀하게 여긴다. 선왕의 도에서는 이것을 보배로 여겼다.”(1-12: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리링은 이 대목의 해석에서 탁월한 통찰로 예의 숨은 개념을 발굴한다.

“조화는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된다.… 예는 차별을 처리하는 것으로 차별을 통하여 질서를 수립한다. 질서가 바로 조화이다. 조화는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불평등으로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평등은 그저 이상일 뿐이고, 예전엔 그것을 대동(大同)이라 불렀다.… 조화의 사회는 소강(小康)이지 대동은 아니다.”

리링은 왕과 신민, 지위가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빈자 사이의 불평등을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불평등을 통제함으로써 혼란이 폭발하는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예이며, “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적당하게 타협하고 조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예는 차등을 가진 사랑이지 결코 평등이나 박애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의 의미가 갖는 이런 측면 때문에 문화대혁명 때 공자가 그토록 박해받았던 것은 아닐까.

이런 해석은 주희, 정약용, 미야자키 이치사다 등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 해석이다. 공자의 행간을 읽어내는 리링의 안목에 탄복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예가 무너져 사회의 혼란이 극심했던 춘추시대에 예로써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공자의 간절한 염원이 이제야 피부로 와 닿는 듯하다.

최근 중국 공산당이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 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조화사회(和諧社會)’와 ‘소강사회(小康社會)’를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것은 결국 현실에서 구현될 수 없는 이상적 ‘대동사회’를 대신하여 사회의 각 기능과 주체들의 욕구를 조정하고 타협시키는 효과적인 기제로서 예를 핵심개념으로 하는 유교를 부활시키고 있음을 간파하게 해준다.

효(孝)는 가족윤리, 충(忠)은 사회윤리

효(孝)야말로 공자의 핵심사상이다. 효란 무엇인가? “군자는 근본에 힘쓰는데 근본이 서 있으면 도가 생겨난다. 효도와 우애야말로 인의 근본이다.”(1-2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오늘날의 효라는 것은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말한다. 개나 말도 모두 먹여준다.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2-7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공자는 효를 군자가 도(道)를 추구하는데 기본이 된다고 보았고, 물질적 봉양보다 부모의 마음을 살피고, 공경하며 편안하게 해드리는 효경(孝敬)이 진정한 효도라고 생각했다.

효(孝)가 가족윤리라면 충(忠)은 사회윤리다. 충(忠)의 관념은 여기서 살필 수 있다. 정공 임금이 공자에게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것과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임금은 예를 갖추어 신하를 부려야 하고, 신하는 충성으로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3-19: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이때의 충성은 신하가 임금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신하를 예로써 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한 충의 개념은 일상의 인간관계까지 확장될 수 있다. 공자는 대인관계에서 “충신(忠信)을 위주로 하되 자기만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9-25 子曰:“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고 말한다. 또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애쓰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충성한다면 그를 위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14-7 子曰: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라며, 충(忠)의 개념을 사귐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때의 ‘충(忠)’은 ‘진심을 다한다’는 의미가 된다.

공자의 정치관은 어떤가?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季康子)가 정치에 대해 자문하자, 공자는, “정치란 것은 바로잡는 것입니다. 대부께서 올바르게 이끈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습니까(12-17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대목에서 공자는, “만약 자신의 몸을 올바르게 한다면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제 몸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로잡을까(13-13 子曰:“苟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라고 말하며, 세상사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으로서 정치가 자신의 수신(修身)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정치와 관련한 담론에서 공자의 정명론(正名論)도 꼭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이상적인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12-11 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답한다. 공자에게 정명(正名)은 ‘다움’이다. 이름에 걸맞은 본질을 갖추고 있을 때 그 이름[名]이 진정한 의미[政]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쉬운 듯 보이지만 제각각의 다움을 실천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참다운 지식인 군자의 길

공자는 『논어』 전편에 걸쳐 군자에 대해 수없이 언급했다. 그는 스스로 군자가 되길 희구했고, 제자들에게 소인과 군자를 대비하면서 군자의 도리를 설파했다. 공자가 정의하는 군자의 특징은 이렇다. “군자는 은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 군자는 형벌을 생각하고, 소인은 혜택을 생각한다.”(4-11 子曰: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

또한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지만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동화되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13-23 子曰:“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소인과 구별되는 군자는 오늘날 올바른 지식인, 교양인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화이부동(和而不同)’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이 또 있다. “군자는 능력이 없는 것을 근심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않는다.”(15-19 子曰: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정말 쉽지 않은 경지다. “군자는 죽고 나서 이름이 기려지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15-20 子曰: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는 대목 역시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며 옷깃을 다시 여미게 한다.

『논어』의 마지막 대목 역시 참다운 지식인이 가져야 할 세 가지 덕목으로 새겨두어야 할 말이다. 지명(知命), 지예(知禮), 지언(知言)의 철학이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다.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20-3 孔子曰: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자신의 한계와 천명(天命)을 알고, 예로써 사회 규범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타자의 사랑이 인(仁)

인(仁) 또한 공자의 핵심 사상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의 중심이다. “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일단 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하면, 세상 사람이 모두 인에 귀의할 것이다. 인의 실천이 자기로 말미암은 것이지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겠느냐?” “세부적인 항목은 무엇입니까?”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라.”(12-1 顔淵問仁. 子曰: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請問其目. 子曰: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回雖不敏,請事斯語矣.)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극단적 경계다. 그만큼 인을 구현하기 위해 예를 삶의 엄중한 잣대로 삼으라는 얘기다.

특히 공자는 인을 타자와의 관계에서 실천적 덕목으로 요구한다.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해라. 자기가 원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 그러면 나라에서 원망할 사람이 없고, 집안에서 원망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12-2 仲弓問仁. 子曰: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특히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의 철학은 대인관계의 황금률(黃金律)로 ‘서(恕)’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한마디 말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에 공자는 “아마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15-24 子貢問曰: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했던 것이다. 서(恕)는 곧 남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인(仁)의 실천인 셈이다.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을 헤아려라”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정신이다.

위에서 소개한 공자의 핵심 사상들은 동양철학자들에게 비슷한 관점으로 이해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날카롭게 대립하거나 다양한 이론(異論)이 무성한 대목도 많다. 이런 곳에서 리링의 탁월한 해석이 돋보인다.

‘죽은 공자’에서 ‘인간 공자’로

그는 『논어』의 여러 대목에서 ‘성인화된 공자’, ‘죽은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 ‘살아있는 공자’를 조명하는 관점으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아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중국내 동양철학자들 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는 여러 권의 『논어』 주석서를 비교하면서 리링이 독창적으로 해석한 대목을 여러 곳에서 확인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리링은 공자의 말 뒤에 숨은 고뇌를 읽어내는 세심함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 사람의 일을 배우고 위로 천명에 통달했는데, 나를 알아주는 자는 하늘일 것이다(14-35 : 不怨天, 不尤仁, 下學以上達, 知我者其天乎)” 라는 대목에서 리링은 공자의 인간다움을 발견한다. 공자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마음 쓰지 말라고 자주 말했지만, 실상 공자 역시 인간인지라 스스로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 쓰고 있으며, 쓰린 심정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14년 동안 여러 나라를 전전하면서도 제후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관직에 나가지 못했던 공자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스며드는 자조와 위로의 기미를 공자인들 어찌 비껴갈 수 있었겠는가. 리링이 공자를 ‘불우한 지식인’으로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해석이 바로 인간 공자에게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그의 비원(悲願)을 이해할 때,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가르침의 절실함에 더욱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공자의 인간적 측면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곳에서도 읽힌다. 노나라의 권신인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초청했을 때, 제자 자로는 공산불요에게 가려고 하는 공자의 기미를 알아채고 이를 불쾌해하면서 만류했다. 그런데 공자는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까닭이 없겠느냐? 만약 나를 쓰려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곳을 동주(東周)로 만들어놓겠다(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며, 쿠데타에 가담하려 했다는 점이다. 당혹스럽다. 척실 계씨(季氏)나 그의 가신 공산불요나 똑같이 무도한 자들이 아닌가. 리링은 이 지점에서 공자의 마음이 흔들렸다는 점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필자도 리링의 견해에 동의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본다. 왜 그랬을까? 공자는 노나라의 왕실이 무력화되고, ‘삼환(三桓)’으로 일컬어지는 세 척실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무도(無道)한 상황으로 보았다. 왕실을 보호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척실 계씨의 가신인 공산불요의 하극상에 가담해서라도 척실을 쫒아내고, 그가 늘 이상향으로 그리던 주나라의 영광을 자신이 직접 나서서 노나라에 구현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열망과 비원(悲願)이, 역시 무도한 하극상의 반란에 동조하려던 마음을 잠시라도 갖게 했던 게 아닐까. 만약 공자가 반란에 가담하여 성공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공자의 희구대로 노나라에서 도를 구현할 수 있었을까? 공자는 최종적으로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공자의 언행을 통해 공자의 열망과 고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공자의 여성관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자와 소인이야말로 돌보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17-25 : 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이 대목은 공자의 여성차별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비판받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주희는 “신첩(臣妾)에 대하여 장엄함으로써 임하고, 자애로움으로써 기르면 이 두 가지 병폐가 없을 것이다”며 얼버무리며 피해갔다. 후대의 주석가들 역시 주희의 입장을 답습하면서 두루뭉술하게 기술했다. ‘성인 공자’가 여성을 비하했다는 비난을 받게 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링은 기원전 6세기 당시의 상황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는다. 당시 공자가 “여자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했고, 차별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 여자들을 차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차별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몹시도 이상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통찰이다.

당시 공자의 발언을 두고 현대의 관점에서 공자가 여성을 비하했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리링은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보지 않고, 이 발언이 ‘사실에 대한 묘사’이지 ‘가치판단’이 아니라며 공자를 애써 변호하는 학자들을 비판한다. 모든 것을 공자 존숭의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공자 역시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현대적 시각으로 비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리링은 중문학 전공자로서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 등 소위 삼고(三古)의 대가다. 죽간과 백서, 금석문 등의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학자다. 리링의 풍부한 고전문헌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로 포착하는 ‘살아있는 공자’의 모습은 『논어』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수많은 『논어』 주석서 중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수백 종이 넘는 시중의 『논어』 주석서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지 곤란을 겪는 독자들에게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다.

물론 두 권으로 나뉜 1392페이지의 분량이 부담스럽긴 하다. 하지만 2권 말미를 장식한 260여 페이지의 제2부 ‘『논어』읽기의 네 가지 필독 지식’은 『논어』 못지않은 책 속의 책이다. 공자와 논어에 대한 다채롭고 심층적 분석 연구의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리링이 탁월하게 업그레이드한 현대판 『공자세가(孔子世家)』,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이 펼쳐진다.

특히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기술된 공자의 일대기와 제자들에 대한 개관, 『논어』의 내용과 다양한 주석서들에 대한 분류 및 특징이 기술되어 공자와 『논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특히 결론부분에서 『논어』의 사상의 핵심 개념들을 분류 정리하고 있어, 공자의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울러 공자가 성인화되고 유학이 종교화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한마디로 공자와 『논어』 연구에 있어서의 리링의 학문적 깊이와 내공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리링의 『집 잃은 개(喪家狗, 我讀論語)』는 문화보수주의자 혹은 대륙 신유가라 불리는 일단의 사람들에게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중견 사학자 우쓰(吳思)가 “주희의 『논어집주(論語集註)』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평가했듯, 수많은 비판적 지식인들로부터 높이 평가받고 있다.

리링이 독창적으로 해석한 대목들을 다른 주석서들과 비교해 보라. 이 책은 『논어』의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인식의 차이, 그리고 그 속에 숨은 공자에 덧씌워진 이미지의 영향 등을 읽어내는데 더 없이 좋은 새로운 관점의 『논어』 주석서다. 독자들은 리링의 통찰로 맛보는 『논어』를 통해 새로운 지적 긴장감과 희열, 공자 철학의 행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공자’를 만나는 새로운 시선의 발견이야말로 시습(時習)이 주는 진정한 열락(悅樂)이 아닐까.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집 잃은 개(喪家狗, 我讀論語)』 리링(李零) 지음, 김갑수 옮김, 글항아리(2012). 13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