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원리 거스를 수는 없어…소비자의 선택 중시해야

대형마트 의무휴업 3년, 성장을 위한 상생은 없다

유학생활로 오랜 시간을 외국에서 보낸 나에게 한국 전통시장은 낯선 존재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전통시장은 10여 년 전 부산에서 들렀던 자갈치 시장뿐이다. 먹거리가 많았던 곳, 딱 그 기억만이 남아있다. 얼마 전 집 근처에 전통시장이 있다고 하여 딱히 약속도 없던 터라 퇴근길에 발길을 돌렸다. 으리으리한 건물과 화려한 디스플레이 저편에, 전통시장만의 구수한 분위기가 반가웠다. 하지만 30분도 안돼서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때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전통시장의 현주소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도입 된지 3년이 지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편의점은 4.0%, 대형마트는 3.8%, 슈퍼마켓은 2.3%, 백화점은 1.3% 순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에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에도 불구하고 -5.0% 성장률로 2014년 에 이어 2015년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기사에서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도입이 전통시장의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막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의무휴업일 매출은 늘었지만 전체 매출액은 감소하는 사례들이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자들이 의무휴업일 외에는 전통시장을 잘 찾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원인으로는 1) 온라인 시장의 대폭 성장, 2) 주차장, 키즈존 등의 편의시설 부족, 3) 대형마트의 서비스 품질 개선 그리고 4) 전통시장의 한정된 상품과 현금 결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정부는 전통시장 살리기를 위해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형마트에서의 대소비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인다.

대형마트는 왜 죽어야 하나?

‘전통시장 상인들은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이니까, 대형마트는 대기업이니까 약자를 도와야 한다’라는 게 2030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낭만주의적인 생각이다. 언뜻 보면 굉장히 정의로워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정의로운지 살펴보자. 우선 대형마트가 먹여 살리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까 전통시장이 먹여 살리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까? 대형마트에서 파는 모든 농산품들은 대기업에서 생산한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시장 상인들과 다를 바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 생산해낸 물품들이다. 각 대형마트 별로 납품 계약을 맺은 소상인들의 수만 따져도 전통시장 상인들보다 훨씬 많다. 더 편리하고 쾌적하고 저렴한 대형마트가 소비자에게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엄청나지 않은가? 오히려 대형마트가 의무적으로 휴업하게 되면, 직원들의 노동시간과 일자리가 강제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또 다른 형태의 혼란과 실업을 유발할 수도 있다.

   
▲ ‘전통시장 상인들은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이니까, 대형마트는 대기업이니까 약자를 도와야 한다’라는 게 2030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낭만주의적인 생각이다. 언뜻 보면 굉장히 정의로워 보인다.


그렇다면 전통시장은 죽어야 하는가? 그렇다. 시장이 선택하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 선택받지 못한 시장은 결국 다른 산업으로 흡수된다. 선택받기 위해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 시장의 순리이고, 그 순리가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사라진 시장이 한둘이 아니다. MP3, 피처폰, 인력거, 버스 안내양 등이 그렇다. 그들이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해 사라졌다고 해서 일자리가 줄어들었나? 우린 더 풍요로워지지 못했나? 아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새롭게 생겨났고, 인력거가 사라진 이유는 자동차 산업이 커졌기 때문이다. 인력거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워졌다. 버스 안내양이 사라지면서 버스 카드가 생겨났고 우린 더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우린 결국 이렇게 시장의 진화에 의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거다. 이 자연스러운 순리를 거부하면 성장은 멈추고 진화는 멈추게 된다.

런던의 버로우 마켓 (Borough Market)

버로우 마켓은 내가 자주 찾던 전통시장이다. 1276년부터 영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며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다양한 상품들과 먹거리들이 즐비해 있다. 특히 평일 점심시간에는 ‘화이트컬러’들이 맛있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어 늘 북새통을 이룬다. 입맛을 사로잡는 먹거리와 눈요깃거리들이 많아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마켓의 꾸준한 인기 뒤에는 소상인들의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버로우 마켓에서 새로운 장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어필하고 공개경쟁을 통해야만 자리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자체적으로 전문가들을 구성하여 상인들의 식재료를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평가한다. 직접 재료 보관법과 조리법을 시연하면서 ‘먹는 맛’뿐만 아니라 ‘보는 맛’도 선사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많은 사람들이 이 마켓을 즐겨찾는 이유다. 시장은 이렇게 늘 발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재에 안주한다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고작 정부 관료 몇 명이 머리 맞대서 시장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침체된 시장을 살리려면 그 시장이 변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공존에 대한 방식은 항상 치열하게 논의돼야 한다. 하지만 인기영합주의에 물들어 제도를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건 ‘나 죽고, 너 죽자’식의 논리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은 스스로의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폴란드의 크라쿠프 중앙시장, 스페인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 일본의 니시키 시장 등은 치열한 경쟁과 혁신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세계적인 시장으로 우뚝 섰다.

끝맺음

오랜만에 향수에 젖은 참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예전의 추억을 사는 것도 어쩌다 한번일 거라는 무거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시장이란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러 가는 곳이지 추억을 사러 가는 곳이 아니다. 경제는 그렇게 감성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전통시장이 혁신을 통해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간다면 저렴하고 쾌적하고 편리한 대형마트를 뒤로하고 기꺼이 ‘검은 봉지’를 들겠다. 전통시장 활성화에 도움은커녕 소비자들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는 비효율적인 규제는 폐기되어야 한다.

   
▲ 품목별로 살펴보면 사라진 시장이 한둘이 아니다. MP3, 피처폰, 인력거, 버스 안내양 등이 그렇다. 그들이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해 사라졌다고 해서 일자리가 줄어들었나? 우린 더 풍요로워지지 못했나? 아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새롭게 생겨났고, 인력거가 사라진 이유는 자동차 산업이 커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콩기름 등을 섞은 가짜 참기름을 부산·울산지역 전통시장에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또한, 유통기한이 표시되지 않은 식혜를 시중에 유통한 제조업체가 불구속 입건 됐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다가오는 추석을 맞아 전통시장 위생관리 실태와 원산지 표시 위반행위를 집중 점검한다고 한다. 그저 보여주기 식의 점검이 아닌 소비자들을 위한, 그리고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점검이 잘 이루어지는지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안정과 유지는 곧 퇴보를 의미하며, 혁신하려는 자세만이 성장의 원동력이다. 변하지 않으면 고독한 전통시장에 봄날은 오지 않는다. /이희망 자유경제원 인턴(브리스톨대 경제학과)

(이 글은 이희망 자유경제원 인턴이 자유경제원 홈페이지 ‘젊은함성’ 게시판에 기고한 글입니다.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