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방민준의 골프탐험(75)-그린의 맹수 리디아 고 심층 분석

아마추어 시절부터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고 프로로 전향한 뒤에도 ‘신기록 제조기’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온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8․한국이름 고보경)가 LPGA투어 시즌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경쟁자들이 감탄해마지 않는 월등한 기량으로 우승하며 새로운 메이저대회 최연소 우승기록을 세웠다.

지난 13일(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 르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투어 에비앙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펼쳐 보인 리디아 고의 플레이는 동반자는 물론 갤러리를 포함한 전 세계 골프팬들의 숨을 멎게 했다.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3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맞은 리디아 고는 다른 경쟁자들이 스코어 유지도 못하고 타수를 까먹는 사이 추격의 고삐를 바짝 죄어 전반 3타, 후반에 5타 등 보기 없이 무려 8타를 줄이며 합계 16언더파 268타로 2위 렉시 톰슨(미국)을 무려 6타 차이로 제치고 첫 메이저대회 우승 테이프 커팅을 했다. 그것도 최연소 우승이라는 위대한 기록으로.

우승 순간 리디아 고의 정확한 나이는 18세4개월20일. 종전 메이저대회 우승 최연소 기록은 2007년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모건 프레슬(미국)의 18세10개월9일인데 리디아 고는 이 기록을 5개월가량 단축시킨 것이다.

마지막 라운드에서의 리디아 고의 플레이가 동반 경쟁자들을 허탈하게 할 정도로 탁월했던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만 리디아 고의 위대함은 마지막 라운드만이 아니라 네 라운드 전체를 관통하는 자신만의 리듬을 철저하게 유지하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리디아 고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중장거리 경기에 나선 케냐나 이디오피아의 육상선수들을 연상케 된다.
첫 라운드부터 허겁지겁 스코어를 줄이려고 서둘며 덤벼들지 않는다. 뜻대로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도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릴 줄 안다. 경쟁자들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간다고 덩달아 흥분해서 덤비지 않는다.

자신의 생체 리듬과 정신력이 상승기류를 탈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고성능 자동차가 쾌속 주행을 위해 엔진을 워밍업 시키듯 정신적 신체적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데 집중한다.

   
▲ 2014년 LPGA 투어 역대 최연소 신인왕의 영예를 차지한 리디아 고는 데뷔 첫해 2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최초의 선수로 등극했다. 올 초에는 세계 골프랭킹에서 남녀를 통틀어 역대 최연소 1위에 등극하기도 했고 이번에 드디어 메이저대회 최연소 우승기록을 보탰다. 이처럼 새로운 골프역사를 써 온 리디아 고는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 대회에서 골프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삽화=방민준
예기치 않은 상황의 변화에도 결코 부화뇌동해 휘둘리지 않고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리듬에서 벗어나려는 충동을 억누를 줄 안다.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하고 기회도 왔다고 판단될 때 그는 아무런 주저함이나 머뭇거림 없이 제 갈 길을 내닫는다.

그동안 그가 세워온 신기록 행진은 바로 부단한 연습 위에 이 같은 그만의 리듬 지키기, 평정심 유지하기, 무거운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기 등 수행자를 방불케 하는 정신력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리디아 고는 11세의 나이에 뉴질랜드 여자 아마추어 메이저대회 최연소 우승을 시작으로, 2012년 1월 14세9개월의 나이로 호주여자골프 뉴사우스 웨일스 오픈 정상에 올라 세계 남녀 프로골프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데 이어 그 해 8월에는 LPGA투어 캐나다여자오픈에서 15세 4개월2일의 나이의 아마추어 신분으로 우승하며 LPGA투어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2013년 2월에는 ISPS 한다 뉴질랜드 여자오픈에서 15세 9개월 17일의 나이로 우승해 유럽여자프로골프(LET)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캐나다여자오픈에서 2년 연속 우승, 챔피언 타이틀을 지켜 눈길을 끌었다.

2013년 10월 프로로 전향한 리디아 고는 2014시즌 본격적으로 LPGA 투어에 뛰어들어 LPGA투어 마라톤 클래식 정상에 오르며 LPGA 투어 사상 최연소 상금 100만달러 돌파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2014년 시즌 3승으로 LPGA투어 사상 최연소 통산 5승 기록까지 세웠다.

2014년 LPGA 투어 역대 최연소 신인왕의 영예도 그의 차지였고 데뷔 첫해 2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최초의 선수로 등극했다. 올 초에는 세계 골프랭킹에서 남녀를 통틀어 역대 최연소 1위에 등극하기도 했고 이번에 드디어 메이저대회 최연소 우승기록을 보탰다.

이처럼 새로운 골프역사를 써 온 리디아 고는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 대회에서 그만이 펼치는 골프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날과 둘째 날 라운드에서 각각 버디 5개에 보기 3개로 네 타를 줄이는 평범한 플레이를 펼쳤던 그는 셋째 날 라운드에서 버디 5개에 보기 1개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무려 8개의 버디를 만들며 생애 최저타를 기록했다.

너무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 같다는 해설이 나올 정도로 3라운드까지는 상승기류의 기회를 기다리는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라운드에서 선두에 나섰던 선수들이 제풀에 흔들리기 시작하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엔진을 풀가동, 단숨에 경쟁자들을 뒤로 밀어냈다.

이 과정을 육상경기에 빗대면 아프리카 선수들이 초반에 중간에 끼어 리듬을 지키는 레이스를 벌이다 워밍업이 됐다 싶을 때 앞으로 치고 나가 단번에 선두로 질주하는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리디아 고야말로 진정한 맹수인 셈이다. /방민준 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