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의 홈쇼핑화…지속가능한 콘텐츠 개발 절실

   
▲ 황근 선문대 교수
2015년 대한민국 최고 히트 상품은 무엇일까? 가전 업체들은 제대로 된 전용채널은 물론이고 변변한 UHD 콘텐츠조차 별로 없는 UHD TV 팔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줄기차게 업그레이드 된 스마트폰을 내놓고 있지만 보통사람들 눈에는 모양만 달라졌을 뿐 이전 것들과 큰 차이 없어 보인다. 또 한때 벼락부자들을 만들어냈던 ‘스팀청소기’ 같은 TV홈쇼핑 대박상품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올해 최고 히트 상품은 단연 ‘백종원’이라는 인물 아닌가 싶다. 그가 출연하는 ‘집밥 백선생’에서 만든 요리재료들이 대형마트에서 품절되는 일이 연일 벌어지고 있고, 다른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맛 집이나 그가 만들었다는 음식점들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아우성이다. 뿐만 아니다. 10여 년전에 시작했지만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빽다방’ 앞은 항상 긴 줄이 쭉 늘어서있다. 이쯤대면 아무리 대중매체가 만든 인기가 비누거품 같다 해도 ‘신드롬’ 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미래 방송이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전통적인 방송사들의 수익모델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 높은 시청률을 담보로 광고수익을 구가해왔던 시절이 막을 내리고 버린 것이다. 광고총량제, 중간광고를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협찬, 간접광고들을 끌어다 붙여도 10%도 안 되는 시청률 가지고는 결국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마치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 떼처럼 인터넷/모바일 매체들이 광고시장을 급속히 먹어치우고 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제값 받고 방송콘텐츠를 수없이 돌릴 수 있는 풍요한 미디어시장을 가진 나라도 아니다. 또 ‘한류 콘텐츠’라는 이름을 내걸고 해외시장을 노리고 있는데, 솔직히 우리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거대 헐리우드 영화사나 글로벌 미디어그룹들의 눈에는 소소한 ‘찻잔 속에 태풍’ 정도로 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들에 한국미디어시장은 자신들의 콘텐츠를 팔아먹는 하류시장이지 콘텐츠를 공급받는 상류시장이 절대 아니다.

   
▲ MBC '마이리틀 텔레비전' 백종원. /사진=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캡처
백종원 열풍은 이처럼 말라가는 우리 방송사들이 앞으로 무얼 먹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상품에 대한 구매 욕구를 창출해서 직접 수익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를 창출하고 이 시청자를 시청률이라는 상품으로 포장해 광고주에게 팔았다면, 이제는 방송사들이 자기 프로그램 시청자들의 구매행위를 직접 창출하는 것이다. 새로운 의미의 ‘수용자 상품’인 것이다.

이런 방식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PPL이나 간접광고도 있었고, 일부 방송에서는 프로그램과 연계된 ‘여행상품’이나 ‘체험상품’들을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 내용과 광고를 엄격히 금지하는 방송 규제체계 아래서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규제를 거의 받지 않은 온라인 사업자들은 이미 사물인터넷(IOT)이라는 이름으로 오프라인과 연계된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Amazon은 이 수익모델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사업자이고, Google이나 Facebook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한마디로 방송프로그램이 홈쇼핑 프로그램화 되는 것이다. 노골적인 상품판매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포장된 홈쇼핑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방송은 시장과 떨어져 지고지순한 정신적 내용물을 만들어내는 거룩한 기구로 더 이상 남아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냥 상품을 잘 팔기위한 폼 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보니 TV홈쇼핑 채널의 진행자들을 ‘shopping host’라고도 하지만 ‘show host’라고도 하는 것 같다. 그렇다. 이제 TV프로그램은 상품을 팔기위한 show가 되는 셈이다. 이제 방송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야말로 ‘쇼를 해라. 쇼를 해!’야 할 판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