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힘든 시대가 안철수에 감염!!

취재수첩




안철수 힘은 대단했다. 실업률, 집값 하락으로 늘어나는 금융권 부채(집담보 대출 이자), 무상급식, 약속하고 약속 안지키는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이 뭉쳐서 나경원 대신 박원순을 뽑게하는 이변이 나온 듯 하다. 조선일보는 10월 28일 1면 기사에서 “미래 불안하다”는 통계와 “박원순 득표율”이 비슷하다는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번 선거 결과를 ‘불안’으로 해석했다. 불안한 시대에 안철수가 나타난 것이다. 불안에 힘든 시대에 안철수 바이러스에 시대가 병들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왜 서울만 한나라당이 당선되지 못했을까 박원순 신임 시장의 말처럼 서울은 시민의 승리이고, 한나라당이 당선된 곳은 시민의 패배일까 박근혜가 서울에서 마지막을 보냈는데, 왜 서울에서 투표율이 박원순 후보쪽으로 크게 기울었을까 정치와 경제에 염증난 세대가 보내는 경고장일지도 모른다. 염증난 곳에 안철수 바이러스가 감염된 것이 아닐까

막연한 희망으로 안철수에 감염된 시대에 새로운 백신이 필요하다.
▲막연한 희망으로 안철수에 감염된 시대에 새로운 백신이 필요하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천안함 북침설’을 내걸고, 대대적인 선거전략을 펼쳤지만, 어떠했는가 한나라당이 천암함처럼 침몰하고 말았다. 북한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내세운 ‘천암함 북침설’이 한나라당을 그렇게 만들었다. 시의원, 구청장, 구의원 대부분이 민주당에 넘어갔다.

당시 한나라당의 네거티브는 여름 한복판에 몰아친 시베리아 바람이었다. 겨우 오세훈 시장만 살아남았고, 그는 패잔병들에게 고개를 떨군 채, 패잔투수처럼 ‘낮아지겠다’고 약속했다. 정치 전쟁에서 오세훈 시장은 적의 포로로 잡힌 꼴이 됐다.

포로로서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시어머니 잔소리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사건별로 꼬박꼬박 대들고, 따지고, 시위하는 합법적 서울시 의회의 주장에 대해서 서울시장으로서 권위는 이미 추락한 상태였다. 새롭게 당선된 민주당측 곽노현 교육감 후보와 마찰이 결국 빌미가 됐다.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논쟁. 지금도 시민들은 포퓰리즘이 뭐고, 왜 오세훈 시장이 그만 뒀고, 무상급식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무상급식과 복지정책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잘 모른다. 민주당이 “아이들 밥값 안냅니다. 부자든, 가난하든, 모두 밥값 안냅니다”라는 주장에는 시민들은 쉽게 인식하고 있다.

어려운 정치, 복잡한 문구, 네거티브 유언비어, 정치적 수작은 더 이상 유통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유통기한 지난 선거 전략으로는 새시대의 정치에서 권력을 점유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한다는 성경 잠언처럼, 새로운 시대가 되었는데 여전히 구시대의 구태의연한 말로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 전략으로는 시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판결났다.

안철수의 승리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은 한나라당에 경고장을 날랐다. 백성을 무시하지 말라는 경고장이었다. 권력에 대한 엄중한 ‘심판’의 화살이었다. 화살을 맞았지만, 약간 비켜 맞은 오세훈 시장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투표’에서 어떠했는가 민주당은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자축했지만, 민주당이 내세운 선거 문구가 쉽고 편했고, 오세훈 시장의 자충수는 너무 어렵고 복잡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박근혜 전대표가 돕지 않는 것도 영향이 컸다.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었다는 것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민주당의 박영선 후보와 박원순 후보가 붙었을 때 결과가 어떠했는가 시민들은 그동안 정치세력들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은 것이다. 그러한 불신에 대해서 경고장으로 ‘박원순’을 선택하고, 엄중히 경고했던 것이라 나는 판단한다.

산같은 난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혹시나 하고 선택한 것이 안철수다. 안철수가 정답인 것이 아니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싫어서 민주당을 선택하고, 무상급식 투표에서 밥그릇놓고 싸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꼴보기 싫어서 투표장에 안 간 것이고,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닌 ‘시민의 후보’인 박원순의 그 이미지가 좋아서 그를 택한 것이라고 본다.

박원순이 정당정치가 해결못한 실업률과 집값하락, 금융권 위기에 대해 뚜렷한 답안지를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박원순은 ‘당태종처럼 수나라의 법제도를 그대로 계승하고, 수나라 신하들을 등용해서 문화의 꽃을 찬란히 피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당태종은 수나라의 인재등용방식인 과거제도를 그대로 수용해서, 가장 찬란한 중국의 문화시대를 열었다. 박원순은 뉴타운 정책 재검토, 양화대교는 80% 시공했으므로 진행, 한강수변사업 재검토 정책을 말하고 있다. 전임자의 정책을 수용하는 사람은 그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펼치기 때문에 임기기간에 새로운 일을 할 여유가 있지만, 전임자의 정책을 무조건 깔아뭉갠다면, 없애고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데 임기가 대부분 소요되기 때문에 그 만큼 업적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당나라 태종의 위대함은 바로 수나라 법제도를 그대로 계승한 데 있다.

또한 현실의 문제는 서울시에 국한 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적 문제이고, 세계적 금융위기와 맛물려 있다. 우주법칙에 의해 발생하는 조류현상처럼 어쩔수 없는 금융불안에 대해서 그가 내세울 방책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의 50% 양보, 희생적인 기부활동만을 믿고서, 안철수 연구소의 주식이 급등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경제영웅을 여전히 희망하는 시민들의 열망은 순수함일까 순수함은 미련함의 표현일까 진시황제의 불노초처럼 허황됨일까 ‘이 시대는 불노초도 없고, 진시황제도 없고, 이순신같은 정치적 영웅은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백성의 우매함일까

한자로 백성 민民은 눈目에 칼을 꽂은 형태다. 눈을 못 보게 만든 것은 백성을 노예로 만들어 왕이 군림하던 시대를 뜻하는 것이다. 이 백성 민民, 이 한자가 눈에 어른거린다. 안철수든, 박원순이든,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백성들이 이제는 눈을 떠서 모든 것을 정책적으로 판단하고, 볼 수 있는 ‘정치문화’의 새 시대가 열리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