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기원 서슬퍼런 영혼 울리는 분단국가 문화 콘텐츠…통일 물꼬 기원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경기 파주와 고양 일산에 분단으로 가슴 저미는 예술이 펼쳐졌다. 먼저 분단을 탈피한 독일이 보여준 분단의 추억은 80년대 영국, 미국은 물론 한국 팬들까지 사로잡았던 네나 밴드. 이번 DMZ국제다큐영화제 (9.17~24)에 추천작으로도 꼽힌 음악 다큐 <B-무비, 서베를린의 환희와 사운드>에서 분단 너머 통일을 가리키는 강력한 파트로 다가왔다. 다큐가 증언했듯 네나밴드의 불후의 명곡 <99 Luftballons : 99개 빨간 풍선>은 독일어와 영어 가사로 불러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된 비참한 비극을 끝내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노래가 나왔던 1983년 서베를린 문화 풍경은 마약과 알코올, 펑크와 히피에 절은 레미제라블 II와도 같았다. 1840년대 빅토르 위고가 그린 파리 풍경화가 비참하고 가련한 사람들이라는 레미제라블 I이었다면 1970~80년대 베를린 장벽 언저리 팝 아티스티를 비롯한 주민들의 자화상 또한 엇비슷한 패배주의와 허무주의 스모그 속이었다.

전위 예술가 아방가르드들은 독일인이 미국 음식을 먹고 미국 영화와 음악에 묻힌 식민지와 같다며 내뱉곤 했다. 거기 베를린 하늘은 “1980년대 초반에 핵무기에 대한 편집증적 망상이 만연했고 이러한 분위기에 독일은 그 누구보다도 민감해져 있었다. 동과 서로 나뉜 베를린이 제3차 세계대전의 최전방이라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네이버 지식백과,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 1001’에서 발췌)”는 묘사도 아주 적절하다.

우주 군사력까지 내세운 레이건 대통령의 미국과 반격하는 소련이 냉전의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을 매일 만나는 동서독 시민들은 속절없이 세상의 끝 종말론 묵시록의 절벽 앞에서 분단이 몰고 온 최대치 절망과 불행과 울분을 삼켰을 테고.

이런 불행의 혼란 속으로 네나의 <99 Luftballons>가 뛰어들었다. “시대를 정의내리는 이 그룹이 탄생시킨, 언뜻 들으면 쾌활하게 느껴질 이 곡은 핵무기에 의한 전멸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그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99개의 풍선을 독일의 창공에 날려보내자, 이것을 UFO라고 오해한 겁먹은 장군들이 버튼을 눌러 지구의 종말을 불러일으킨다는 훗날 비평(네이버 지식백과,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 1001’에서)”이 아찔할 정도다.

   
▲ DMZ국제다큐영화제 (9.17~24) 포스터.
이 노래 이전에는 서베를린 음악인들은 독일어 가사로 하는 독일 팝송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탄식했었다. 그냥 자기들끼리 끙끙 앓으며 읊조리는 우물 안 외침으로 끝날 운명이라는 니힐리즘만이 득세했다. 그러다 어느 날 버버리 차림에 담배 물고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 괴짜 제작자가 캐낸 네나 밴드의 <99 Luftballons>가 귀신 들린 듯 독일어 버전만으로 영국, 미국을 강타했다.

뭔가 다르면서 특별한 베를린 공포와 절망의 시학이 풍요에 넘치는 서구 사회에 짜릿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곧 이어 영어 버전 <99 Red Balloons>까지 나와 지구촌을 매혹시켰다. 유투브가 뽑은 ‘1984년 월드 베스트 30 팝송’을 보면 마이클 잭슨, 신디 로퍼, 마돈나, 휘트니 휴스턴, 스티비 원더, 라이오넬 리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10위에 당당히 올라 있다.

너무 불안하고 무섭다는 분단의 괴로움을 터치한 팝송 하나는 결국 아무도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일으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게 된다. <99 Red Balloons>이 촉발한 팝과 문화콘텐츠 창조 에너지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누출 사고라는 지옥을 거치면서 분단을 부여잡은 악의적인 비관과 비판의 늪을 박차고 일어서게 부추겼다. 컴퓨팅 기술을 채택한 테크노 음악, 펑크 록등 새 장르로 에너지를 모으더니 이내 큰 문화의 바람을 형성했다. 네나가 부른 <99 Red Balloons>에 화답하는 메아리가 미국, 영국, 프랑스로부터 모아졌고 베를린 필하모닉 같은 클래식 예술계도 분단의 굴레를 밀쳐내기 시작했다.

연일 베를린 장벽에 물감을 뿌리고 불을 지르고 낙서하고 오줌까지 누는 퍼포먼스가 확산되었다. 마침내 1989년 냉전 종결이 선언되고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에게 “서기장님. 저 장벽을 뜯어 버리시오(tear down the wall)”라고 연설했다.

이후 26년이 지난 한국, 추석 앞둔 초가을. 탈북 화가 선무의 활동과 베이징 전시회를 다룬 다큐 영화 <나는 선무다>가 공개된다. 미국인 감독 아담 숀베르그는 이 영화를 통해 선무의 99개 빨간 풍선을 모조리 하늘 높이 띄우는데 성공했다. 얼굴 없는 작가 선무를 정확하게 보여줬고 ‘정치 팝아트’라는 주변 관계자들의 평가와 증언들을 충실하게 채록했다. 강제 철회한 베이징 전시회 그림들을 밀실 갤러리가 아닌 영화 스크린 속으로 옮겨와 영구히 대안 공간 안에 두는 효과도 획득했다.

   
▲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탈북 화가 선무의 활동과 베이징 전시회를 다룬 다큐 영화 '나는 선무다'.
선무 또한 가수 네나 밴드와 같이 단절과 잘림, 억압과 속박, 공포와 절망을 보여주고 있는 분단 투병 문화콘텐츠다. 네나의 팝송처럼 선무의 정치 팝 아트들도 뉴욕 노르웨이 등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위험한 캔버스라고 부를 정도로 적나라한 이미지 표출이 언제 무엇이 터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북한이 말하는 최고 존엄까지 건드리는 선무의 그림들은 이제 대북확성기마냥 크게 부각되고 있다.

선무는 분명 프로파간다 예술로서 되받아치고 있다. 사회주의식 선전 예술을 체득한 그가 좀 더 부드럽고 보편적인 문화의 힘으로 가까운 한국과 중국의 대중에게 다가가고 전 세계 시민들에게 호소할 메시지 전략을 단박에 보여주기는 무리일 듯싶다. 에둘러 감추지 않는 직설화법이 선전 미술의 요체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선무가 그려낸 <6자 회담> 같은 작품은 멀지 않은 한반도 통일의 나비효과를 꿈꾸어볼만한 문제작이다. “지켜보건대 한 번도 제대로 된 회담 성과가 나오질 않더라고요..”라고 해설하는 답답한 마음은 남북한 사람 모두의 정서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6자 회담 국가 소년 소녀 아이들이 저마가 가슴에 반쯤 흐려진 국기를 달고 서로 서로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질주하는 그림이 생겨 나왔다. 한국 아이 북한 아이 중국 아이 일본 아이 미국 아이 러시아 아이들 해맑은 얼굴 환한 사실화가 자꾸 눈에 밟힌다.

비관과 비판의 진흙탕 속에서 분단 독일 아픔이 가장 깊었던 새벽녘 그 때 네나 밴드의 춤사위와 불후의 명곡 <99 Red Balloons>은 통일이라는 나비 날갯짓을 시작했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화가 선무가 미약하고 부족하고 불편한 제약 속에서 위험한 캔버스를 찢고 있다.

반드시 그 캔버스가 분단의 캔버스가 되길 바란다. 새로 교체하여 들여올 하얀 백지, 통일 한국의 그림판이 들어와야 하니까. 80년대 베를린이 그랬듯 한국 서울에서도 수많은 분단의 캔버스를 찢어버리는 위대한 창작자 아티스트들이 이제 많이 나올 것만 같다.

더 많은 작가, 뮤지션, 감독, 배우 들이 <99 Red Balloons> 같은 부드럽고 아름답고 경쾌하면서도 서슬 퍼런 영혼의 울림을 들려주길 소망한다. 그렇게 분단 시대 문화콘텐츠는 개성 다양하면서도 절실하게 99개 빨간 풍선처럼 날아올라 장벽을 넘고 철조망을 넘어 높이 솟구쳐야 한다. 독일이 그랬듯 우리에게도 이제 때가 왔다고 어서 말하고 싶다.
마침 가수 전인권이 DMZ 안에 들어와 <사노라면>을 절창하고 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