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경제적 대가 치르는 이산가족상봉행사 북 돈벌이 이용 우려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36계 줄행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중국고대병법 『秘本兵法三十六計(비본병법삼십육계)』에 ‘聲東擊西(성동격서)’라는 계책(計策)이 있다. 이 병법은 ‘제1부 勝戰計(승전계)’에서 ‘제6부 敗戰計(패전계)’까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는 6개의 계(計)로 구성되어 있다. ‘성동격서’는 아군의 형세가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 적을 압도하는 작전으로 ‘제1부’의 마지막 계책인 ‘제6계’이다. 문자 그대로 “동쪽에서 소리 지르고 서쪽으로 공격한다”는 양동작전(陽動作戰)이다.

지난 8월 4일 우리 군 부사관(副仕官) 2명이 부상한 목함지뢰폭발사건 이후 우리의 대북심리전방송 재개, 북한의 포격, 우리측 응사(應射), 북한의 대북방송중지 요구와 조준사격 위협 등의 과정을 거쳐 남북고위급회담이 성사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병법 ‘삼십육계’의 ‘성동격서’란 단어가 떠올랐다.

사건 이후 대북심리전방송 중지가 지상과제였던 북한이 우리에게 포격을 가하고 “48시간 내에 대북 심리전방송을 중지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은 것이 ‘성동(聲東)’이었다면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북한의 제의는 그들의 ‘격서(擊西)’ 계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때리는 ‘대북심리전방송’

김정은으로부터 “대북방송중지”를 지상과제로 명령 받고 회담에 나섰을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에게 “대북방송중지”는 목숨을 내걸고 반드시 탈환해야 할 ‘격서(擊西)’ 전투의 고지였을 것이다. 만일 이들이 대북방송 중지에 실패하고 북으로 돌아간다면 숙청까지는 몰라도 엄청난 곤욕을 치를 것이 뻔한 것이 김정은 체제의 현실 아닌가? 결국 이들에게는 사생결단의 목표가 있었지만, 이들의 긴박한 처지에 비해 우리 회담대표의 목표는 기껏 지뢰매설과 포격에 대한 ‘사과’를 받는 것이 고작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북측 대표가 도발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를 거부한다면 계속 협상을 끌 일이 아니었지 않은가?

지뢰폭발사건 후 우리가 11년 만에 대북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는 우리에게 선전을 포고하는 직접적인 전쟁 도발 행위…… 48시간 내에 대북 심리전 방송 중지 않으면 군사 행동 개시할 것"이라는 등 극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측 대표가 도발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를 거부한 상황에서 우리 대표가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와 대북방송을 계속했다면 그들이 그대로 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처지였을까? 결국 시간과 장소가 모두 우리 편이었고, 때마침 한미군사훈련으로 미군의 무력도 우리 뒤를 지척에서 받치고 있었던 상황 아닌가?

북한을 몰아세울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다

그 때문에 당시 많은 국민들은 정치판의 어정쩡한 자세와는 달리 이번에야말로 북한의 끊임없는 만행에 대해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무력으로 본때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기대했다. 물론, 미군의 지원을 업은 우리의 군사력이 북한의 무력공격을 압도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와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겠지만, 북한이 ‘사과’를 거부하면 북측 대표를 회담장에 남겨두고 단호하게 철수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회담이 결렬되고 북한이 포격을 가한다면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 북한의 기세를 꺾을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측 대표가 노회(老獪)한 북측 대표들을 대적하기에는 미덥지 않다는 우려를 보였고, 결국 “유감”이라는 어정쩡한 명분만 얻어내고 자위하다 또다시 뒤통수를 맞는 꼴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국회의 모습은 역시나 가관이었다. 여당은 ‘단호한 응징’만을 외칠 뿐이었고 야당은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촉구했다. 문재인 새민연 대표는 “김양건 노동당 비서 명의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서한을 보내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 시도를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한 점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조건 없는 고위급 접촉을 북한에 제안할 것을 (정부에) 제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를 해치고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도발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며 “군과 국민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평시(平時)라면 몰라도 우리 땅에 지뢰를 매설하고 포격까지 가한 상황에서 조건 없이 북한측과 협상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 통일이 ‘대박’일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국민이 몇이나 될까? 우리 뜻대로 ‘대박’의 평화통일을 이뤄낼 수 있을 지가 의문이고, 만일 평화통일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김일성 일가의 독재 하에서 평생을 살아온 북한주민들과의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의 동거(同居)가 ‘대박’이 아니라 ‘대란(大亂)’을 초래하는 ‘대변(大變)’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통일이 ‘대박’이 아니라 ‘대란(大亂)’의 ‘대변(大變)’이 될 수도

나폴레옹은 “하나의 적과 너무 자주 싸우면 결국 적에게 싸우는 비법을 가르쳐주는 꼴이 된다(You must not fight too often with one enemy, or you will teach him all your art of war.)”라고 말했다. 이번 남북고위급회담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면 북한의 ‘성동격서’ 전략은 그들의 완승으로 끝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은 우리측의 대응을 꿰뚫어보고 결국 ‘사과’의 뜻이 담기지 않은 ‘유감’ 표명 한마디로 ‘대북방송중단’이라는 수확 외에 경제적 이득까지 챙길 수 있는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까지 보너스로 얻어낸 셈이다.

북측 대표는 회담 후 북으로 돌아가서는 ‘유감’은 그저 유감일 뿐 자신들이 지뢰를 매설했음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고 말을 바꾸더니 최근에는 추가 핵실험과 장거리로켓발사 계획 등을 공언하고 있다.

남북한 문제는 동서진영의 냉전종식과는 무관하게 북한의 핵개발 등 무력 대결 양상이 증폭되기만 해왔다.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12월에 미소(美蘇)간 몰타선언으로 냉전이 종식되었고, 1991년 12월 소연방(蘇聯邦) 해체, 1992년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도입 등의 개방의 바람 속에서도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세습체제를 굳히고 더욱 호전적인 독재체제를 굳혀나갔다.

2000년 이래 이루어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각각 분단 반세기만에 최초로 남북정상이 만났다는 의의와 남북간 경제협력 확대 및 한반도 공동번영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되고 있지만, 우리의 일방적 대북경제지원이 결국 핵개발이나 장거리미사일 개발 등 북한의 무력강화에 일조하여 한반도 갈등 증진과 북한의 세습체제의 번영만을 초래한 결과가 된 것 아닌가?

이런 현실에서 전쟁 없이 남한이 북한을 평화적으로 흡수통일을 할 수만 있다면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력도발 사건을 벌인 자들과 회담을 하면서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사정하듯 겨우 ‘유감’ 표시만을 얻어내고 그 대가로 대북방송을 즉각 중단하는 정도의 대응자세로 과연 북한을 포용하는 평화통일을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런 통일이 ‘대박’일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국민이 몇이나 될까? 우리 뜻대로 ‘대박’의 평화통일을 이뤄낼 수 있을 지가 의문이고, 만일 평화통일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김일성 일가의 독재 하에서 평생을 살아온 북한주민들과의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의 동거(同居)가 ‘대박’이 아니라 ‘대란(大亂)’을 초래하는 ‘대변(大變)’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평화통일’이라는 허구(虛構)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전쟁의 폐허 속에서의 통일이 아니라 전쟁 없는 ‘평화통일’이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에서 ‘평화통일’이라는 단어는 상대적 약자가 부르짖는 그럴싸한 구호이거나 정치판에서 국민을 현혹시키는 미사여구(美辭麗句) 이상의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개인숭배 독재국가의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듯이, ‘평화통일’이라는 말 자체가 이 땅에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허구(虛構)인지도 모른다.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는 한쪽에 의한 흡수통일이 아니라 평화적 공존을 보장하는 “상호불가침”이 답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워 더 큰소리를 치기 전에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거나 북한을 압도하는 무력으로 그들의 무력도발 꿈을 잠재우거나, 아니면 김정은 체제가 자멸하기를 기다리는 외에 무슨 대책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이번 북한의 무력도발사건이야말로 북한이 핵무기를 코앞에 들이대고 더 큰소리를 치기 전에 그들에게 무력시위를 벌일 절호의 기회라는 기대를 했던 것 아닐까?

남북한이 다음 달 이산가족상봉에 합의한 가운데 우리 대학생 한 청년이 “이번 이산가족 행사에는 생존이 확인된 국군포로가 있을 경우 이들을 상봉단에 포함시킬 예정이라 하는데, 국군포로는 상봉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 송환해야 할 북(北)에 억류된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광화문광장과 국방부청사 앞에서 ‘국군포로’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남북교류와 관련한 일들을 계속 벌여야 존립할 수 있는 통일부의 입장도 있겠지만, ‘이산가족상봉행사’가 결렬될까 봐 북한의 눈치를 살피며 조바심하고 있을 정부에 일침을 가하는 뼈있는 소리다. 북한은 실제로 이산가족상봉 논의를 하면서도 “언제든지 핵뢰성(核雷聲)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되어 있다”며 핵 위협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치르는 ‘이산가족상봉행사’

그 동안의 ‘남북이산가족상봉’은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면서 이루어졌다. 2009년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정부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대북 쌀·비료 지원, 금강산 면회소 건설, 행사 경비 등으로 총 1조7489억 원을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지출했다"며 "상봉 신청자 1명이 북측의 가족을 만나는데 10억4000만원이 든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단 한 번의 상봉 후 또 다시 생이별의 고통을 안겨주는 행사를 벌이기 위해 이런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남북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왕래가 아닌 일회성 상봉은 이들의 아픈 상처를 다시 파내는 정치 쇼에 불과하다. 이런 비인도적 난센스에 대해 일부 이산가족들이 '이런 식의 상봉을 거부한다'고 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북한은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 ‘이산가족상봉’에 응해 왔으며, 이번에도 역시 ‘이산가족상봉’에 응해준 대가를 챙기려 할 것이 뻔하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무력도발을 벌인 후 ‘성동격서’의 계략(計略)으로 ‘유감’이라는 빈말 한마디로 ‘대북방송중단’에다가 ‘이산가족상봉’이라는 돈 되는 장사까지 챙기는 일거양득의 대승을 거둔 것 아닌가? 그야말로 북한의 불법 무력도발로 우리 군 부사관 두 명이 부상당한 상황에서 대북방송 중단에 이어 오히려 북한에 경제적 도움을 주는 ‘이산가족상봉행사’까지 베풀어 주는 꼴 아닌가? 그러려면 최소한 불법억류 국군포로에 대한 생사확인과 생존자 송환요구 등의 조건이라도 내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