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균형과 평등, 재분배 시도가 오히려 저성장 양극화 불러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폭넓은 학술활동을 통해 기업정책 및 경제발전 연구에 매진한 ‘기업경제’ 전문가다. 좌 교수는 양극화와 저성장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답,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동반성장 기조를 회복시킬 방안에 대해 기존 주류경제학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좌 교수는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을 통해 “오늘날 세계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고난도의 경제문제와 더불어 한국경제 동반성장의 해법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박정희 시대의 기업부국패러다임, 신상필벌의 차별화원리 속에 있다”고 밝힌다. 미디어펜은 향후 한국경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취지에서 좌승희 석좌교수의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의 일부를 발췌하여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저서를 펴낸 곳은 출판사 ‘백년동안’이다. [편집자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미디어펜 회장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①] 경제학, 박정희에 길을 묻다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개발연대,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과 아주 양호한 동반성장, 즉 최고의 동반성장을 실현하였다(World Bank, 1993). 이를 일컬어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1) 그러나 한국은 개발연대 이후 지난 30여 년간을 개발연대 경제정책의 잘못을 시정하여 선진국으로 도약한다고 애써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전혀 원치도 않았고, 더구나 목적하지도 않았던 결과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 전체가 장기 저성장과 소위 경제양극화라 불리는 소득 불평등의 심화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세계 경제학계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이제 이런 현상이 새로운 정상상태라는 궤변으로 대응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이상 공산사회주의 진영은 칼 마르크스의 이념을 따라 경제 불평등의 원천이 자본주의라면서 그 체제를 타도하자며 경제 불평등 해소를 국가의 이념 및 정책 목표로 추구했다.

자본주의 진영도 이에 대응한다고 소위 수정자본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내걸고 소득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흥미롭게도 전후의 신생독립국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 식민선진국들을 따라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여 경제평등을 위해 노력해 왔다. 물론 그 사이 공산사회주의 국가들은 이제 북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몰락하여 시장경제 시스템에 통합되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아직도 사회주의 이념에서 못 벗어난 사민주의 체제를 지탱하고 있다.

   
▲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좌승희 著)은 ‘기피의 대상’으로 방치된 한국경제의 핵심적 시기를 경제학적 분석의 화두로 삼은 저작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능적 본질에 입각하여 박정희 시대를 분석함으로써 박정희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성공원리를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류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지난 반세기 이상을 사회주의 이상인 경제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소득의 균형과 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소득재분배 정책을 정치경제 체제의 제일 우선순위로 삼고 여기에 각종 복지 및 사회보장정책이 강화되어 소위 복지국가 모형이라 불리는 패러다임을 정착시킨 것이다. 이런 체제 속에서 일부 선진국들은 한때 고성장 속에서 소득 불균형의 완화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제 오늘날 세계경제는 어떠한가?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아주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모두 저성장 국면을 못 벗어나고 있으며 분배 측면에서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상황의 악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계가 지난 반세기 이상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더니 사태는 오히려 성장의 침체와 불평등의 심화로 나타나 심지어 양극화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는 정반대의 상항에 직면한 셈이다. 이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는 것도 이해가 갈 만한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이 “지금까지 해 온 재분배 복지정책이 미흡해서 그러니 이제 더 강력한 재분배정책을 펼쳐야 이 난국을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분배정책을 더 강화하면 지속가능한 평등한 경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논거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사회과학 중에서 최고의 정치성을 자랑하며 노벨상 반열에까지 오른 ‘경제과학’이 안타깝게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정책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개발연대라 불리는 박정희 시대 이후, 특히 1980년대 중후반부터 우리도 박정희 시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수정자본주의 이념에 따라 균형발전과 보다 균등한 소득분배를 지향해 왔다. 물론 오늘날 온 나라를 달구고 있는 유사사회주의 이념인 경제민주화 이념도 이미 30년 전에 우리 헌법에 도입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현실은 세계경제의 보편적 현상과 다르지 않게 저성장과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개발연대라 불리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성장과 분배 양면에서 세계 최고의 양호한 성과를 냈음이 세계은행 등에 의해 공인받고 있는데 오히려 균형과 평등의 깃발을 내건 그 이후 30년의 성과는 전혀 기대 이하라는 점이다.

   
▲ 좌승희 교수는 "현대적 의미의 기업이야말로 생산요소를 효과적으로 결합·활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 또는 부(富)를 창출하는 핵심장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요체는 ‘시장경제’라기보다는 ‘기업경제’라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좌 교수는 박정희 경제정책이 자본주의 본질적 기능인 ‘기업경제’에 부합하도록 추진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시대 정책패러다임을 ‘기업부국 패러다임’으로 정의한다./사진=미디어펜

이제 경제학이 풀어내야 할 역설은 다음과 같다. 지난 반세기 이상 경제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오히려 오늘날 저성장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자본주의 모순’이라는 경제 불평등을 척결 내지는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정치경제 체제인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수정자본주의, 복지국가’라는 패러다임들은 결과적으로 모두 저성장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고성장과 빈곤퇴치, 심지어 동반성장을 경험했던 몇 안 되는 동시대의 예외적 경험들도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 경우는 대부분 세계 전체의 흐름과는 다른 길을 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1960~80년대, 타이완의 1960~80년대와 싱가포르의 지난 반세기, 중국의 덩샤오핑 집권 이후 30여 년이 그러했다. 이들은 모두 사회주의나 사민주의, 수정자본주의 혹은 복지국가와는 거리가 있고,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와도 거리가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이들 국가들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까지 닮았다. 이렇게 보면 세계의 보편적 가치라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치경제 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이단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 체제 속에서 이들 국가들은 초고속 성장과 빈곤퇴치를 (특히 한국의 경우는 최고의 양호한 동반성장까지) 이루어 낸 것이다. 최근 인도와 같이 일부 고속성장과 빈곤퇴치에 성공하는 후발경제들의 경우도 공통적으로 오랜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벗어나면서 경제의 역동성을 살려내고 있음도 흥미롭다. 2)

그럼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평등을 추구한 경제는 불평등해지고 역으로 불평등을 허용한 경제는 오히려 평등해지는 이 역설”, 소위 “‘자본주의의 불평등 모순’을 적극 수용하는 나라는 오히려 그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를 적극 청산하려는 나라는 하나같이 오히려 그 불평등의 질곡에 더 깊이 빠지고 있다는 역설”을 말이다.

   
▲ 박정희식 개발연대라 불리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성장과 분배 양면에서 세계 최고의 양호한 성과를 냈음이 세계은행 등에 의해 공인받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균형과 평등의 깃발을 내건 이후 지난 30년의 성과는 저성장, 양극화 등 기대 이하이다.

이 책은 박정희 시대,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경제적 업적을, 이념의 옷을 벗겨 내고 객관적 시각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기능적 본질에 입각하여 분석·평가함으로써 그동안의 이 시대에 대한 오해와 논란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이를 통해 오늘날 경제학이 부딪치고 있는 고난도의 문제에 대한 답이 바로 박정희의 정책 패러다임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박정희를 지금처럼 역사 속에 사장시킬 것이 아니라 그 성공의 진수를 오늘에 살려내는 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 그리고 대한민국이 부딪치고 있는 경제 난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박정희는 죽은 경제학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 있는 유용한 경제학임을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

이와 관련해서 미리 결론을 피력하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를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박정희의 산업화전략은 18세기 서구 선진국과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등이 산업화 과정에서 추구했던 부국강병을 뛰어넘는 “기업부국 패러다임”이라 본다. 제국주의를 초래한 부국강병의 ‘강병’ 대신 ‘강한 기업’을 대입시키고 현대 서구의 시장경제 패러다임에서 정부의 역할을 보다 강화해, 정부가 시장과 공동보조 하에 강한 기업을 육성, 지원하여 세계시장 개척에 나서도록 독려한 “자본주의 기업부국 패러다임”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기업을 부국건설의 첨병으로 육성, 활용한 셈이다.

이런 패러다임을 실천하기 위해 박정희는 ‘정치의 경제화’를 통해 사회민주주의적 포퓰리즘, 혹은 유사사회주의적 평등지원 정책을 차단하고 ‘시장의 신상필벌의 차별화 기능’을 강화해 항상 나쁜 성과보다 좋은 성과를 우대하는 관치차별화 정책을 실천함으로써 강한 세계적 기업들을 육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런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일자리 창출이 급속도로 신장되어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형성되었다. 수출기업을 육성하면 수출수익이 제약없이 국내투자로 들어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소기업의 수요기반을 늘려 내·외수가 동반성장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개발연대 세계 최고의 동방성장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이 책은 이런 경제운영전략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가 봉착한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경제학이라고 주장한다.

 

1) 개발연대의 시대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이 시기를 대체로 1961년 5·16혁명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18년의 기간을 포함하여 정치민주화가 되기 전의 1980년대 후반까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5공 정부(1981~1987)는 정책체제 측면에서는 반개발연대적 정책체제를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 박정희시대 성장정책의 과실(果實)의 가장 큰 수혜자로서 경제적 성과 측면에서는 개발연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은행(World Bank, 1993)이 1965~1989년 간 주요국가의 성장률과 소득분배를 비교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의 평균성장률은 표본국가 중 가장 높으면서 소득불평등지수(상위 20% 소득/하위 20% 소득)는 아주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기간 평균으로 볼 때 한국이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을 이룬 국가라는 것이다(같은 책, p.31. 참조). 필자는 대체로 이러한 약 30년의 개발연대 동안 한국이 이룬 경제적 성과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이상 논의한 20세기 후반 세계경제발전사에 대한 국가별 설명에 대해서는 졸저(200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