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끈 주식회사 기업제도…‘기업이라는 보이는 손’이 경제를 이끈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는 폭넓은 학술활동을 통해 기업정책 및 경제발전 연구에 매진한 ‘기업경제’ 전문가다. 좌 교수는 양극화와 저성장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답,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동반성장 기조를 회복시킬 방안에 대해 기존 주류경제학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좌 교수는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을 통해 “오늘날 세계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고난도의 경제문제와 더불어 한국경제 동반성장의 해법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박정희 시대의 기업부국패러다임, 신상필벌의 차별화원리 속에 있다”고 밝힌다. 미디어펜은 향후 한국경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취지에서 좌승희 석좌교수의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의 일부를 발췌하여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2번째 연재다. 저서를 펴낸 곳은 출판사 ‘백년동안’이다. [편집자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미디어펜 회장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②] 시장경제가 아니라 기업경제다

1장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속성

무임승차를 통한 산업혁명의 전파과정

세계 경제발전사를 보면 경제발전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인류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적어도 250만 년의 경제 역사를 갖게 됐다. 짧게는 분업과 교환을 하면서 1만 5,000년 이전부터 수렵과 채집의 시장경제를 했다. 즉 수렵을 잘하는 사람은 사냥을 많이 하고 채집을 잘하는 사람은 채집을 많이 해서 서로 교환하는 것, 이것이 시장교환경제이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면 경제발전이라고 부를 만큼 소득이 증가한 시대는 지난 200년밖에 안 된다. 그전의 교환경제생활이나 더 이전의 경제생활은 전부 맬서스적 함정이라는 빈곤상태에서 못 벗어났다.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왜 지난 200년 동안만 인류가 부를 쌓고 축적할 수 있었는지 설명을 잘 못하고 있다.

200년 동안의 부의 축적은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놀라운 것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전 세계 부의 가장 많은 부분은 중국이 창출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영국이 중국을 뛰어넘어 세계 부의 성장을 주도하였으나 20세기 들어서는 점차 일등국가를 미국에게 빼앗겼다. 아직도 미국이 일등국가라고 하지만 전체 흐름을 보면 일본을 거치고 다시 한국과 중국을 거치면서 동북아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0년이라는 짧은 경제발전의 역사에서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흥망성쇠의 운명이 또 갈라지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일까?

   
▲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좌승희 著)은 ‘기피의 대상’으로 방치된 한국경제의 핵심적 시기를 경제학적 분석의 화두로 삼은 저작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능적 본질에 입각하여 박정희 시대를 분석함으로써 박정희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성공원리를 밝히고 있다.

경제성장과 발전의 과정은 앞선 흥하는 이웃의 경제성공 노하우를 따라 배우고 궁극적으로는 선발자를 뛰어넘는 과정이다. 선발자가 추월당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성공노하우를 따라 배우는 과정이 대부분 무임승차과정이기 때문이다. 서구가 산업혁명 이후 독일이 영국의 산업화 노하우에 무임승차하고 미국 또한 영국에 무임승차를 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영국이 궁극적으로 추월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산업혁명의 노하우가 서구로 퍼지면서 서구시대가 열렸는데, 당시 서구 역사를 보면 모든 성공한 나라들이 흥하는 이웃을 키우는 일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경제적 자유가 확대되고 재산권 제도가 정착된 것이다. 이를 통해 흥하는 개인과 기업들이 양산되면서 부국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을 이끈 현대식 주식회사 제도

산업혁명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주식회사 기업제도의 탄생이다. 기업은 산업혁명을 촉발시키고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온 기관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개인들의 지혜와 물적 자본을 모아 시너지 창출을 극대화해 내는 중요한 사회적 기술이다. 오늘날 현대식 기업제도가 제일 먼저 시작된 곳도 영국이다. 100년 넘게 불법화했던 주식회사 제도가 1820년대 초 허용되고, 1840년대에 최초의 주식회사법이 시도됐으며, 1864년에 오늘날과 똑같은 유한책임 주식회사 기업법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영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 미국 경제가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이후 미국 경제의 세계주도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자본주의 주식회사 기업제도는 19세기 초 영국의 발명품이다. 영국은 주식회사 제도를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섬나라 영국은 문화적으로 대기업보다도 개인·가족기업이나 소규모기업을 선호했을 뿐만 아니라 (물론 애덤 스미스마저도 대기업보다 소규모 개인기업의 우수성을 강조했듯이) 영국의 우수인재들도 지식인의 삶은 대기업의 종사자가 되어 기업경제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관직 등 공적·학문적 분야 등 ‘고상한 일’에 종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마저도 마치 동양의 사·농·공·상처럼 ‘귀족이념’이 상대적으로 강하였던 것이다.

   
▲ 좌승희 교수는 "현대적 의미의 기업이야말로 생산요소를 효과적으로 결합·활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 또는 부(富)를 창출하는 핵심장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요체는 ‘시장경제’라기보다는 ‘기업경제’라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좌 교수는 박정희 경제정책이 자본주의 본질적 기능인 ‘기업경제’에 부합하도록 추진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시대 정책패러다임을 ‘기업부국 패러다임’으로 정의한다./사진=미디어펜

그러나 영국을 복제한 미국은 광활한 신대륙에서 새로운 개척정신을 창출해 냈다. 창의적인 노력으로 기업을 일으키는 기업가로서 혹은 대기업의 일원으로 기업의 성장에 기여하고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민경제에 기여하고 개인적으로도 부를 쌓아 인생의 풍족함을 누리는 것을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기는 지식인 문화를 창출하였다. 주식회사 제도는 이를 발명한 영국이 아니라 이를 복제하고 무임승차한 미국에서 더 꽃을 피워 세계 최강의 대기업들을 창출하고 결국 영국 경제를 추월하게 된 것이다. 지난 100여 년 간 미국은 세계 최다수의 강력한 대기업들을 앞장세워 오늘날까지도 세계경제를 좌우하고 있다. 그래서 알프레드 챈들러(Alfred Chandler)의 지적처럼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보이는 손’이 미국 경제를 일으키고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세계경제 주도권은 바로 영국을 통해 배운 기업제도를 적극 활용한 덕분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자본주의 경제를 시장경제가 아니라 “기업경제”라 불러야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성공 노하우는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로 퍼졌고 일본은 독일과 영국에 무임승차했다. 이렇게 해서 G7이 등장하고 서구시대가 열렸다. 일본과 한국, 중국, 싱가포르의 도약도 바로 기업제도를 활용한 덕분이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미디어펜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