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동문회, 학교역사 뻥튀기기…미군정 69년 전 개교 사실 부인

   
▲ 조우석 문화평론가
민중사관에 의한 현대사 왜곡

생각할수록 희한한 일이다. 필자인 내가 아무리 그 대학 출신이 아니라지만, 상식에 비춰 옳지 않다면 남의 학교 문제에도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더구나 그 사안은 이른바 민중사관의 의한 현대사 왜곡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짚어줘야 한다.

스토리는 이렇다. 서울대총동창회는 동문들의 홈커밍 데이를 오는 10월 18일 관악캠퍼스에서 갖는다고 최근 동창회보를 통해 알렸다. 눈여겨볼 건 그 행사가 서울대 개학 120주년 기념이라고 밝힌 점이다. 120주년? 이게 상식에 맞는 소리인지? 용어도 수상쩍다. 왜 널리 쓰이는 개교(開校, 학교설립)가 아닌 개학(開學)이란 용어를 구사한 것일까?

확인해보니 숫자와 용어, 둘 모두 정상이 아니다. 현대사의 상식이지만 미 군정청이 국립서울대학교를 설립한 건 1946년이다. 경성제대 후신인 경성대의 3개 학부와 일제시절 9개 관립 전문학교를 통합해 서울대의 문을 연 것이다. 당시 좌익 학생-교수들은 “친일교수 배격”을 명분으로 대학설립안에 반대하면서 이른바 국대안 파동으로 불거졌다.

미군정에 의한 서울대 설립을 격하하겠다는 뜻

국대안 파동은 해방정국에서 심각한 좌우익 정치갈등의 요인으로 떠올랐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데, 어쨌거나 올해는 엄연히 서울대 개교 69주년이 맞다. 왜 대학 측은 이 사실을 가린 채 엉뚱한 소리인가?

마침 회보에 올린 지난해 홈커밍데이 자료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동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커다란 몽골텐트 위에 붙여놓은 플래카드엔 ‘개학 1895년, 통합개교 1946년’이라고 떡 하니 명기됐다. 그러고 보니 동창회보 맨 위의 제호 옆에도 같은 문구가 올려져 있다. 이제야 서울대의 의도가 가늠된다.

그건 미 군정기의 대학 설립을‘통합개교’란 이름으로 격하하겠다는 뜻이다. 동시에‘개학’란 이름 아래 서울대의 뿌리를 구한말로 왕창 올려 잡음으로써 1946년 대학설립을 정면에서 부인하겠다는 의도다. 이 황당한 기산(起算)의 근거가 뭘까? 서울대 측은 왜 이런 학교역사 바꾸기를 하는 것일까? 파면 팔수록 점입가경이 이 사안이다.

   
▲ 서울대총동창회는 동문들의 홈커밍 데이를 오는 10월 18일 관악캠퍼스에서 갖는다고 최근 동창회보를 통해 알렸다. 눈여겨볼 건 그 행사가 서울대 개학 120주년 기념이라고 밝힌 점이다.
즉 배경에는 대한민국 건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른바 민중사관의 본산인 서울대 국사학과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국사학과를 포함해 이 대학 역사전공 교수 34명이 얼마 전 발표했던 국사교과서 국정국화 반대 성명서를 염두에 둬보라.

그게 더도 덜도 아닌 요즘 서울대의 멘탈이고,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서울대 개교 문제를 국사학과에게 유권해석을 요청한 게 법대 교수들과 서울대 본부 그리고 총동창회 측이다. 서울대 법대는 대한제국 고종이 세운 근대 교육기관인 한성법관양성소(1895년)를 자신들의 뿌리로 보고 꼭 20년 전 근대 법학교육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인 바 있다.

서울대병원이 광헤원(1885년)을 자기의 뿌리라고 주장하듯, 서울법대가 근대학문의 뿌리를 확인하는 작업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걸 말릴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걸 서울대 설립의 기점으로 삼으려는 음험한 별도의 움직임이 7~8년 전부터 본격화됐다는 점이다.

민중사관에 굴복한 전 국편위원장 이태진 교수가 문제

7년 전 이장무 총장 시절 서울대총동창회는 “총장의 요청에 따라 이태진 인문대학장, 김기석(교육학) 교수와 함께 교사(校史) 개정을 위한 자료수집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동아일보 2008년 8월7일) 다분히 반역사적 발상과 움직임이었는데, 결과가 엉뚱했다. 한성법관양성소를 서울대의 효시로 볼 수 있다는 의견 개진을 하는 학자가 이때 등장했다.

그게 당시 국사과 교수 이태진(72)이다. 이후 그는 서울대를 정년퇴임한 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냈는데, 표면적으로 민중사관을 비판하지만, 현행 검인정 국사교과서를 감싸고 있는 NL(민족해방)정서, 그리고 과도한 민족주의적 정념으로부터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결정적으로 그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인물이다. 영토도 국민도 없었던 1919년 상해 임정만으로 이 나라의 건국이 이뤄졌다고 보는, 극히 허황된 사관을 주창해왔고 결과적으로 민중사관에 힘을 실어줬다. 이런 반 학문적이고, 반 대한민국적 태도를 가졌던 그이기에 이태진은 후배들의 근현대사 왜곡을 방치 내지 방조해온 학자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출신의 한 원로 역사학자는 “현재 서울대총창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한성법관양성소가 서울대의 뿌리이며, 그래서 이 양성소 1기생인 이준 열사, 함태영 전 부통령 등을 대선배라고 설명하고 있다. 갖다 붙여도 좀 정도껏 해야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

그의 말이 맞다. 왜 서울대는 근대와 현대 사이의 시대구분 의식조차 없는가? 그렇게 마구잡이로 올라가겠다면, 왜 조선시대-고려시대의 국립최고학부인 성균관을 찾지 않는지가 궁금하다. 뻥튀기가 서울대의 진정한 목적이라면, 고구려 시대 국자감으로 거슬러 올라가길 나는 권유하려 한다.

   
▲ 서울대의 학교 역사 바꾸기의 핵심 의도와 쟁점은 따로 있다. 1946년 미 군정청의 흔적을 지우려는 반미주의의 집단심리,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부인하려는 못된 저항의 태도가 문제다. 동시에 대학을 포함해 근현대의 문물을 심어줬던 일제의 기억을 건너뛰거나 지우려는 허황한 민족주의 정서가 작동하고 있다.
서울대 출신들 학교 역사 바꾸기 좌시 말아야

하지만 서울대의 학교 역사 바꾸기의 핵심 의도와 쟁점은 따로 있다. 1946년 미 군정청의 흔적을 지우려는 반미주의의 집단심리,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부인하려는 못된 저항의 태도가 문제다. 동시에 대학을 포함해 근현대의 문물을 심어줬던 일제의 기억을 건너뛰거나 지우려는 허황한 민족주의 정서가 작동하고 있다. 그게 본질이다.

나는 두렵다. 그리고 가소롭다. 친북 성향의 현행 검인정 국사교과서가 지금 이 상태로 좋으니 정부는 손을 대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서울대 내 역사전공 교수 34명이 전부인 줄만 알았다.‘역사업자들의 배신’을 어떻게 할까 나는 혼자 고심해왔다.

그랬더니 이번엔 자신의 생년월일도 모른 채 허둥대는 총동창회와 대학본부의 모습을 보니 서울대 전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서울대 출신 모두가 그렇진 않겠고 대학 행정과 보직을 맡은 헛똑똑이들의 집단적 착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서울대 동문들이 이 사안에 관심 가져야 옳다. 아니 이 사안은 현대사의 문제이니 사회적 공론에 붙여져야 옳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 대학 역사학자 34명의 배신에 이어 ‘서울대의 배신’에 다시 가슴 철렁하다. 보름 전 등장했던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의 이름으로 나온 성명서를 기억하시는가? 거듭 밝히지만, 그 성명 내용이 딱 맞다.

“서울대 간판에 숨어 학생 선동하고 부정과 비판을 가르치며 역사학자랍시고 검인정 교과서에 침입, 교육과정 짜고 교과서 집필에 편수까지 하니 제대로 된 교과서가 나올 수가 있겠는가? 이런 책을 내 자식이 배운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뿐이다. ”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