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의 성장 가능성, 확실한 투자처, 2차산업의 활력 생기다
   
▲ 현바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 공학박사

노르웨이 전기차 성공 스토리

약 12년 전 필자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같이 살던 노르웨이 친구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자동차를 타고 다녔는데, 자그마치 30년이나 된 골동품 폭스바겐 폴로였다. 그래도 그 친구는 행복해했다. 주변에 아무도 차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물론 다들 학생이었기 때문에 돈도 없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살인 물가인 노르웨이에서 차량 구매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다.

십 여년이 지난 지금 노르웨이는 인구당 전기차 비율이 전 세계 1위인 전기차 대국으로 성장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필자는 현재 자동차 회사에서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다.) 2014년에 노르웨이에서 팔린 차 8대 중 한대는 전기차였다. 그런데 전기차는 아직까지도 일반 가솔린, 디젤 차량에 비해 주행거리가 짧으며, 추운 겨울에는 그 주행거리마저도 현저히 떨어진다. 아니, 물가 비싸고 땅 덩어리 넓고 혹독한 겨울이 긴 북구 노르웨이에서 어떻게 전기차 시장이 커질 수 있었단 말인가. 정답은 적절하고 지속적인 정부 개입에 있었다.

다음은 노르웨이 정부가 90년대부터 약 20년에 걸쳐 제공한 혜택들이다. 자동차 취득세 폐지 (일반 차량은 굉장히 높다), 25% 부가세 폐지, 무료 고속도로 통행 및 페리 이용 (피요르드가 많은 노르웨이는 페리 이용이 잦다), 공용 주차장 무료 주차, 버스전용차선 사용허가, 법인차량으로 구매시 50% 할인, 공용 충전시설 무료. 소비자가 전기차 한대를 구매할 때 얻는 혜택들이다.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테슬라 모델 S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지역 중에 하나가 노르웨이이다. 실제로 약 13.5만불의 세재 혜택이 적용되기 때문에, 중상위층 가계에서도 흔히 구입한다고 한다!

   
▲ 국가적 차원의 전기차 시장 형성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많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유행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에까지 깊숙이 들어와 형성된 생태계는 일단 제조사 입장에서는 존재의 이유가 되고, 성장 가능성이 된다. 사진은 국내 브랜드 기아자동차의 순수전기차 쏘울EV.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하지만 노르웨이 전기차 시장도 여느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시작은 미미했다. 보닛 안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정부의 공격적인 혜택 정책에도 불구하고 장정 15년 동안은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고, 변변한 전기차 시장은 형성되지 못했다.

바람직한 정부개입 예, 노르웨이 전기차 시장

실제로 노르웨이 최초의 자동차 제조 회사가 될 뻔 했던 전기차 스타트업 싱크(Th!nk)는 약간의 희망을 보여주었지만 결국은 대중화 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변화는 싱크가 망한 2011년에 찾아왔다. 일본 완성차 업계의 미쯔비시와 닛산이 만든 전기차 i-MiEV와 Leaf를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전기차를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닌 자가용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런 인식의 전환이 있기까지는 정부가 단계적으로 제공한 혜택들이 밑거름이 되었고, 나중에는 전기차를 소유한 지인의 네트워크 파생효과까지 더해져 (소유주 1명이 지인 3명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오늘날에 왔다. 지금도 노르웨이 전기차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전기차 시장 형성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많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유행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에까지 깊숙이 들어와 형성된 생태계는 일단 신흥 제조사 입장에서는 존재의 이유가 되고, 성장 가능성이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확실한 투자처가 생기게 되고 충전소 제작, 설치와 같은 2차 산업도 덩달아 활력을 받게 된다. 시장이 작아 기존에는 관심 주지 않던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성능,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하여 전기차 경쟁에 참여하게 되고 그 혜택은 전적으로 소비자가 받게 된다. 전기차를 타며 자라는 아이들은 자동차는 자연히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세대가 되풀이 되면서 결국 전기차는 주류가 되고 지구는 내연기관 차량이 주류를 이루던 몇 세대 전보다 좀 더 깨끗한 곳으로 정화된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노르웨이의 이야기다. 근 20년 만에 맺은 달콤한 열매를 노르웨이는 맛보고 있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 전기차 시장 형성. 투자자 입장에서는 확실한 투자처가 생기게 되고 충전소 제작, 설치와 같은 2차 산업도 덩달아 활력을 받게 된다. 현재 삼성SDI는 BMW, 클라이슬러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 협력을 확대하고 있기도 하다.

정권마다 정부 지원이 현격히 변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먼 얘기처럼 들린다. 지난 정권 때 시작된 환경차 정부 지원금 정책과 현 정권의 창조경제 캠페인도 모두 좋은 취지로 시작하였으나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다음 정권 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르웨이처럼 작은 시장도 신시장을 형성하는 데 오랜 시간과 관심이 필요했다. 중앙정부 주도하에 건강한 신시장이 형성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정부뿐만 아니라 여야 모두가 합심하여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현바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