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흥망성쇠, 흥하는 이웃 따라잡기-성공노하우 복제에 달려 있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는 폭넓은 학술활동을 통해 기업정책 및 경제발전 연구에 매진한 ‘기업경제’ 전문가다. 좌 교수는 양극화와 저성장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답,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동반성장 기조를 회복시킬 방안에 대해 기존 주류경제학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좌 교수는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을 통해 “오늘날 세계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고난도의 경제문제와 더불어 한국경제 동반성장의 해법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박정희 시대의 기업부국패러다임, 신상필벌의 차별화원리 속에 있다”고 밝힌다. 미디어펜은 향후 한국경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취지에서 좌승희 석좌교수의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의 일부를 발췌하여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세 번째 연재다. 저서를 펴낸 곳은 출판사 ‘백년동안’이다. [편집자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미디어펜 회장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③] 흥하는 이웃을 배워야 흥한다

2장 위대한 성장의 전야

문명의 흥망성쇠와 그 원인

훌륭한 이웃을 옆에 두고 배우는 것이 성공의 첩경이다. 세계 문명사에 일등문명이 영원한 적은 없다. 시간의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결국 흥망의 길을 갔다. 왜 그럴까? 일등을 오래하면 자만심이 생기고 나태해진다고도 하고 타성으로 혁신에 소홀해진다는 주장도 있다. 흥하는 문명의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인 셈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등문명에 캐치-업 당한다는 말인 셈이다. 전혀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다. 그럼 이등문명은 도대체 왜 일등문명이 겪는 문제에 봉착하지 않고 일등으로 도약하게 되는가? 왜 나태해지지 않고 혁신을 계속하게 되는 걸까? 이등이면 모두가 그렇게 일등과는 다르게 되는 것인가? 그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명쾌하지 못했다.

일등은 이등으로부터 배울 게 많지 않지만 이등은 항상 일등으로부터 반면교사의 교훈까지 포함해 배울 게 많다. 그래서 일등이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흥하는 이웃을 따라 배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문화진화라는 경제의 발전과정 또한 후발자가 선발자를 무임승차하여 배우는 과정이다. 왜 이등문명이 결국 일등문명을 따라잡게 되는가? 이등은 일등을 무임승차하여 더 발전할 수 있지만 일등은 결국 더 무임승차할 대상이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나보다 흥하는 이웃이 많을수록 나에게 성공 가능성은 많아지지만 역으로 내 주위에 모두 나보다 못하는 이웃만 있으면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없어진다. 물론 후발자가 이 원리만 믿고 무임승차만 하고 있으면 일등의 길은 요원하다. 모든 후발자에 캐치-업이라는 상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오직 운과 더불어 노력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법이다.

   
▲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좌승희 著)은 ‘기피의 대상’으로 방치된 한국경제의 핵심적 시기를 경제학적 분석의 화두로 삼은 저작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능적 본질에 입각하여 박정희 시대를 분석함으로써 박정희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성공원리를 밝히고 있다.

국가나 국민경제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훌륭한 이웃을 두고 (비선형적인) 상호교류를 함으로써 시너지를 향유하느냐에 달렸다. 흥하는 이웃을 잘 만나 흥하는 문명의 패러다임을 따라 배우면 더불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역으로 이웃을 잘못 만나 망하는 문명에 줄을 서면 성공의 길은 더 멀어진다.

그럼 흥하는 문명의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경제발전이라는 문화현상은 흥하는 주체의 문화유전자가 복제되어 그 수가 증폭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흥하는 이웃을 우대하지 않고는 발전이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흥하는 이웃을 우대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해 내는 문명은 성공하지만 역으로 흥하는 이웃을 폄하하여 성공 노하우의 복제와 재생산을 막고 그 수의 증폭을 억제하는 문명은 성공하기 어렵다.

조선조의 몰락은 망하는 중국 패러다임을 따른 결과

조선의 몰락은 소중화(小中華)를 외치며 흥하는 문명 패러다임을 배척하고 망하는 중국 문명의 패러다임을 끝까지 맹종한 결과이다. 중국은 중세까지 세계 부의 창출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1500년대 이후 서구 영국과 중국의 운명이 서서히 갈리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고 재산권을 보장해 나갔으며, 자산가와 귀족계층을 중심으로 인구증가가 일어나면서 높은 교육을 받아 인생성공의 노하우를 체화한 상류계층이 평민계층으로 내려가는 일이 일어났다. 물론 인구증가가 없었던 원래의 하층, 평민계층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산업혁명(1800년대 초) 개시 전 영국은 전 인구가 교육을 제대로 받아 높은 지적 능력을 보유한 인구로 대체되었다. 경제발전의 문화적 여건이 성숙되었다.

역으로 중국은 명나라 이후 해금으로 해양진출을 억제하여 외부의 흥하는 이웃들과의 교류를 억제하면서 창발기회를 스스로 차단하였다. 인구는 귀족 등 상층부에서는 증가하지 않고 저소득 농민계층에서만 증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교육기회를 갖지 못한 인구로 뒤덮이게 되었다. 무지한 국민의 나라가 되었다. 흥하는 이웃이 양산되지 않으니 발전을 일으키기는 어려운 것이다. 1)

그럼 왜 영국과 중국 사이에 인구구조의 변화양상이 달랐는가? 한 가지 가설은 다음과 같다. 영국은 상대적으로 경작 가능 토지가 부족한 목축업 중심의 농업국이었다. 그런데 15세기부터 시작되어 19세기 초까지 완성되는, 목축업 등 농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공유지나 미개간지를 대규모 토지로 사유화하는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이 벌어졌다. 그 결과 토지소유가 집중되고 토지무소유 저소득계층의 양산과 소멸이라는 계층 변화를 급격히 겪었다. 이 과정에서 상류층에서의 인구증가가 빈곤 하층계층의 출산율 저하와 궁극적 소멸로 인한 하류층의 공동화를 대체하는 상류층의 계층 하향이동 현상이 일어났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강 유역의 농토를 바탕으로 하는 미작 중심의 농경사회였다. 때문에 저소득계층의 생활이 상대적으로 양호하여 높은 출산율을 지탱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구증가의 대부분이 하층계층에서 일어난 것이다. 2)

   
▲ 좌승희 교수는 "현대적 의미의 기업이야말로 생산요소를 효과적으로 결합·활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 또는 부(富)를 창출하는 핵심장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요체는 ‘시장경제’라기보다는 ‘기업경제’라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좌 교수는 박정희 경제정책이 자본주의 본질적 기능인 ‘기업경제’에 부합하도록 추진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시대 정책패러다임을 ‘기업부국 패러다임’으로 정의한다./사진=미디어펜

그렇다면 닫힌 사회로서 재산권의 보장이나 경제적 자유의 진전도 없이 무지한 대중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에 친화적이지 못했던 중국을 맹종한 조선은 어떠했는가? 중국과 마찬가지로 재산권 제도의 미비, 경제적 자유의 제약, 반실사구시적 유교문화의 전통 속에서 해금정책 등으로 흥하는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였다. 국내적으로 사농공상이라 하여 생산적 활동(상업과 산업, R&D 활동)은 폄하되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비생산적인 활동(예를 들어 공자님 외우기, 한자서예활동 등)이 우대받는 400여 년의 역사를 보냈다. 1840년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패망한 것은 바로 조선 패망의 전조인 것이다. 이웃이 망하니 망하는 패러다임을 따른 조선이 망하는 것은 필연적 결과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서구와의 교류를 확대하면서 유신의 문화적 바탕을 다져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의 흥함은 바로 개항을 통해 흥하는 서구의 패러다임을 신속히 무임승차한 결과이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미디어펜 회장

1) 이상 영국과 중국의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설명은 그레고리 클라크(2009)에서 인용하였음.

2) 가정경제학의 발견에 의하면 아이의 수(number)는 소득 효과가 마이너스인 기펜재(Giffen’s good, 빈자재)인 반면, 아이의 질(quality)은 소득 효과가 1보다 큰 사치재(luxury good)임을 상기하면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반면, 교육투자는 늘어난다고 볼 수 있는데 영국은 다산(多産)인 저소득계층이 소멸한 반면, 중국은 저소득계층이 오히려 증가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