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여야 대표간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 합의가 내년 20대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 친박-비박 계파갈등의 기폭제가 된 모양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혁신안 통과로 여야 동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 안심번호제도를 도입한 여론조사 방식 국민공천제에 잠정 합의하자 원내지도부와 친박계는 일제히 반발했다.

친박(친박근혜)계 일각은 앞서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한 김 대표의 책임론을 들어 대표직에서 끌어내리겠다는 움직임마저 보이는 반면 김 대표를 위시한 일부 비박계 측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양측은 30일 의원총회에서의 일전을 예고했다.

   
▲ 30일 오후 3시께 시작된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떨어져 앉아 있다./사진=미디어펜

국회에서 이날 오전 9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최고위원·중진의원연석회의는 별도의 방에서 열린 사전 회의 때문에 30여분 지연됐다.

이보다 앞서 각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여론조사 방식은 편법’이며 ‘당내 공천 룰은 여야가 각자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인제·이정현 최고위원 등은 이 자리에서도 김 대표에게 항의, 김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다들 이해가 부족하다”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30여분 늦게 열린 공개 회의에서는 김 대표가 모두발언을 통해 안심번호제도는 야당에서 새로이 만든 안을 일방 수용한 것이 아니며 당에서 지난 전당대회와 재보궐선거 등에 이용해온 바 있다며 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처음부터 회의에 불참했으며 이인제 최고위원,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등은 회의 중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관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이어진 비공개 회의에서는 다수 참석자들이 여론조사 방식의 적합성, 절차상 문제 등을 들어 질문공세를 펴면 김 대표는 이를 맞받는 등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김 대표를 정면 비판했던 조 원내수석은 회의 도중 나와 “중앙선관위에서 안심번호제는 여론조사 방식의 일환이지 국민경선의 방식이 아니라고 못박았다”면서 “야당이 생각하는 안심번호 활용방안과 여야 안심번호 합의내용이 (다른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야당이 동의할 경우 법을 바꿔서 완전국민경선을 하라는 게 당론이다. 이게 안 됐으면 포기선언을 하고 새 경선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굳이 그걸 여야가 같이 해야하는가”라며 변형된 국민공천제를 야당과 협상하려면 먼저 당내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적으로 ‘오픈프라이머리 불가론’을 주장해온 원유철 원내대표는 “오후 의총까지 이대로 가야 할 것 같다”며 의견 조율의 어려움을 시사했다.

결국 이날 의총은 모두발언을 맡은 원 원내대표와 이학재 정개특위 간사가 늦어도 내달 2일 전까지 결론을 내야 하는 선거구 획정 논의에 중점을 두길 촉구했지만 공천제를 둘러싸고 친박계와 비박계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 빚어질 전망이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김 대표가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면서 “김 대표가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지 영원히 묻힐지는 김 대표 스스로에게 달렸다”고 밝혔다. 다른 친박계 의원도 “자기 형제(청와대와 친박계)를 죽이기 위해 오랑캐(새정치연합 내 친노(친노무현)계)와 야합하는 것”이라며 가세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측근인 김성태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 친박계 반발 기류에 대해 “차라리 전략공천 하자고 솔직히 이야기하라”고 쏘아붙였고 다른 측근 의원도 “의총에서 잘근잘근 씹어주겠다”고 반응한 것으로 알려져 당내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야 대표가 지난 28일 잠정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국민 선거인단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이동통신사업자가 미리 임의의 휴대전화번호를 제공하고 총선 후보자를 직접 선출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통해 “안심번호 공천제는 우려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도입할 때 결과적으로 민심 왜곡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는 조직선거가 될 우려도 있다”고 강조하며 “국민공천 명분보다 세금공천의 비난 화살이 커질 것”이라며 “내부절차 없이 졸속적으로 합의된 게 바람직한가”라고 반문했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김문수 전 보수혁신위원장도 이날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한마디로 여론조사 공천”이라면서 “일반 투표장에서 투표하는 것에 비해 검증이 안 된다”며 “무효가 나고 검증 불가능한 불공정 경선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 시작된 새누리당 의총에서는 친박계의 반발 속에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수용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