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친박(親 박근혜)계와 청와대로부터 역풍을 맞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일 사실상 당무 거부 행보를 보이면서 이번만큼은 청와대를 상대로 뜻을 굽힐 의사가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날 “공천 쿠데타”까지 거론한 청와대의 비판을 “당 대표 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는 공개 경고로 맞받으며 각을 세웠던 김 대표는 이날 “쉬고싶다”는 말을 남긴 채 취임 이래 처음으로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고 충남 계룡대에서 열리는 제67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과 부산 국제영화제에도 등 모든 대외일정을 취소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선 “김 대표가 개인적 사정으로 불참했다”고 원유철 원내대표가 전한 가운데 전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 불참했던 ‘친박계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이 참석, 안심번호 공천에서 “국민공천제라는 말을 빼라”는 등 김 대표와 참모진을 공개 성토하면서 당내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 전날 “공천 쿠데타”까지 거론한 청와대의 비판을 “당 대표 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는 공개 경고로 맞받으며 각을 세웠던 김 대표는 1일 취임 이래 처음으로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고 모든 대외일정을 취소했다./사진=미디어펜

다만 비공개 회의 직후 원 원내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측에 공개제안한 양당 대표·원내대표 ‘2+2 회담’에는 전화통화를 통해 원 원내대표에게 찬성 의사를 밝혔다.

여당은 선거구 획정 관련 논의를 표방했지만 야당에서는 이를 양당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이행을 뒤집으려는 “불순한 의도”라며 거부해 회담 제안의 목적이 안심번호 발(發) 위기 타개가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김 대표의 과거 행보를 반추해 보면 이번 ‘당무 보이콧’이 일종의 ‘시위’로서 청와대와의 정면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 대표는 앞서 지난해 10월 상하이 방문 중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론이 봇물 터질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귀국과 동시에 박 대통령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 제 불찰”이라고 거듭 사과한 바 있다.

올해 5월 국회법 개정안과 공무원연금 개혁안 연계 처리에 여야가 합의한 뒤 박 대통령으로부터 불신임을 받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7월8일 사퇴하기까지 그에게 사퇴를 권하며 청와대의 손을 들어준 적도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유승민 정국’ 속에서 친박·청와대 대 비박 갈등이 한창이던 7월1일 대통령 주재 제17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 회의에 불참했으며 최근 박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한 미국 출국·귀국 환송·영접 행사에 나타나지 않았고 전날 청와대 측의 ‘작심비판’ 직후 두문불출하면서 이같은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처럼 김 대표가 청와대와 잦은 마찰을 빚다가 작심비판에까지 직면한 상황을 두고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앞선 ‘유승민 정국’의 “제2라운드”라고 빗대기도 했다.


청와대는 유 전 원내대표와 '증세 없는 복지' 논쟁,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도입 논란 등을 거치며 엇박자를 냈고, 국회법 합의 이후 유 전 원내대표에게 즉각 위헌론을 제기하며 강력 비판한 바 있다.

김 대표도 앞서 ‘개헌 봇물’ 발언 등으로 마찰을 빚다가 지난달 15일 윤상현 대통령 정무특보로부터 “여론조사 방식 국민공천제를 오픈프라이머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을 받은 이래 줄곧 청와대·친박계와 대립한 끝에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직접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에 김 대표는 전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안심번호제를 비판한) 청와대의 이야기는 다 틀렸다. 이렇게 하면서 당청 간 사이좋게 가자고 하면 되겠나"라며 "당 대표를 모욕하면 여태까지 참았는데 오늘까지만 참겠다"고 반응했다.

아울러 "집권 여당 대표에게 청와대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비판하면서 원활한 당청관계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나"라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라고 격분하기도 했다.

앞서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관계자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민심왜곡 ▲조직선거 ▲세금공천 ▲낮은 응답률 ▲당 내부 논의없는 결정 등 5가지 근거를 들어 비판했다.

김 대표는 청와대가 "1개만 맞았다"면서 "청와대가 '여론조사 응답률이 2% 수준으로 낮다'고 한 부분은 맞지만, 나머지는 맞지 않는 지적이 많다"고 반박했다.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전략공천은 내가 있는 한 없다"고 공언해 전략공천 배제 의지를 재확인했다.

김 대표는 다만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의총을 거치지 않고 문 대표와 (발표) 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겠다"면서도 "그래서 합의문이 아니라 발표문이라고 했다"며 청와대와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