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악' 중소기업은 '선' 잘못…협력 자체로 경쟁 무기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당신네 회사는 삼성, LG, 현대차에 납품하는가

삼성전자, LG전자는 국내 기업이 아니다. 글로벌 톱기업이다. 그것도 전자업계의 글로벌 스탠다드로서 기능하는 최고의 기업이다. 필자가 2007, 2008년 비즈니스를 위해 전자부품 국제박람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을 때 필자의 회사 부스에 방문했던 모든 바이어의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네 회사는 삼성이나 LG에 납품하는가?”

당시 회사는 삼성에 납품하지 못했지만 LG 백색가전 제품 중 회사 부품이 들어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바이어들의 질문에 “그렇다. 삼성은 아니고 LG에 납품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바이어들의 표정은 이내 밝아지곤 했다.

현실은 이렇다. 내수용 중소기업을 제외하고 해외시장에 발을 담근 모든 중소기업에게 있어서 해당 업계 톱기업에 납품한다는 것은 큰 자산이다. 전자업계라면 삼성이나 LG에 납품해야 해외·국내의 다른 구매처로부터 좋은 점수를 딴다. 자동차업계라면 현대기아차에 납품해야 한다.

삼성·현대·LG? 대기업에 납품하면 더 큰 시장이 열린다

삼성전자든 현대기아차든 제품 품질관리는 녹록치 않다. 철저하다. 어느 회사든 대기업에 납품하려면 혹독한 품질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이는 중소기업 중견기업 가리지 않는다.

2010년 해외공장 및 국내·홍콩 사무실을 포함하여 근로자 80여명이 일하는 ‘전자부품’ 제조·무역 중소기업에서 필자가 겪은 일이다. 회사는 사활이 걸린 인증 심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삼성전자 중국법인 납품을 위한 품질테스트였다. 결과는 아쉽게도 탈락이었다. 삼성전자 담당직원의 공장 방문 심사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우리가 만드는 부품뿐만 아니라 해당 공정을 샅샅이 확인했다. 어디에서든 삼성전자 기준 보다 미달이면 통과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 소비자는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 질과 가격을 보고 선택한다. 선택을 받지 못한 기업은 도태된다. 이것이 시장의 진리다. 소비자에게 기업의 국적이나 크기는 중요치 않다. 제품에 대한 신뢰와 개인마다 다른 효용을 두고 판단할 따름이다./사진=미디어펜

삼성전자에 납품했다면 당시 회사에게는 더 큰 시장이 열렸을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대차든 LG전자든 SK든 대기업에 납품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소기업·중견기업에게는 크나큰 무기가 된다. 전세계 수많은 기업들로부터 주문 받기 수월해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은 대부분 글로벌 톱기업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하면 더 많은 시장에 접근가능하고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당신의 선택은

당신이 직원, 혹은 회사의 오너라면 어떤 선택을 내릴지 궁금하다.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중 어느 기업과 거래할 것인가. 거래는 일방적이지 않다. 쌍방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다. 어느 한 쪽이 지속적인 적자를 보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설사 어떤 기업이 삼성과의 거래로 소폭의 적자가 일어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기업들과의 거래로 흑자 내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계약한다면, 그 또한 기업의 합리적인 선택이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특질은 수출주도하의 수출제조대기업과 이에 부품 및 자본재를 공급하는 중소중견기업간의 연계에 있다. 대기업으로부터의 수요 없이 대다수 중소기업의 독자 생존은 어렵다. 이러한 비즈니스 관계, 여기서 피어나는 ‘보이지 않는 효과’를 적대시하는 일각의 시선이 문제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착하지만 대기업은 악하다는 주장은, “약자가 언제나 선하다”는 언더도그마다. 세간에 팽배한 반기업정서에 부응하여 대기업 규제 법안을 쏟아내는 국회, 반대로 중소기업 및 사회적기업에는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제도는 현실을 역행하고 기업의 유인구조를 왜곡한다.

중소기업 보호, 똑같이 나눠먹는 지원은 답이 아냐

솔직해지자. 지금처럼 중소기업을 보호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독일이나 일본 같은 히든챔피언 중소기업들로 커나갈지 의문이다. 중소기업진흥법이 제정된 지 37년이다. 수십 년간 잘하는 중소기업에게 차별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기로 모든 중소기업이 똑같이 나눠먹는 ‘n분의 1’ 방식으로 온갖 지원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진작에 퇴출되었어야 하는,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좀비기업만 양산됐다.

   
▲ 현대차든 LG전자든 SK든 대기업에 납품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소기업·중견기업에게는 크나큰 무기가 된다. 전세계 수많은 기업들로부터 주문 받기 수월해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은 대부분 글로벌 톱기업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하면 더 많은 시장에 접근가능하고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사진=미디어펜

한국시장만 염두에 두는 시각은 근시안적이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지금처럼 대기업이 중소기업 업종에 뛰어들지 못하게 규제하면, 대기업 발목만 잡을 뿐이며 외국기업이 국내시장을 점유하게 된다. 이미 우리나라 내수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 유수의 기업들을 보면 자명하다.

소비자는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 질과 가격을 보고 선택한다. 선택을 받지 못한 기업은 도태된다. 이것이 시장의 진리다. 소비자에게 기업의 국적이나 크기는 중요치 않다. 제품에 대한 신뢰 및 개인마다 다른 효용을 두고 판단할 따름이다. 시장에서 누가 물건을 어떻게 팔든 이에 대해 규제하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퇴출과 진입에 대하여 정부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모든 것은 기업 및 소비자의 자유에 달렸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