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8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 종합감사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관한 교육부의 입장 표명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파행을 거듭했다. 아울러 자료제출 문제로 여당 의원들이 국감을 보이콧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야당 측 의원들은 이날 교육부가 이달 12일 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방침을 발표할 예정이며, 방침 결정에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언론보도를 들어 국감 시작과 함께 ‘국정화 여부 관련 입장을 명확히 하라’며 업무보고 실시 전부터 의사진행발언을 연달아 요청하며 교육부를 질타했다.

다만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교육부에서 실질적으로 국정화 방침을 정했다’는 언론보도와 달리 모호한 태도를 보이자 야당 의원들은 ‘국정화 추진은 친일·독재 미화 목적’이라는 주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아버지는 군사 쿠데타, 딸은 역사 쿠데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여당 측은 “표현을 함부로 하지 말라”며 반발하는 등 오전 국감 내내 여야간 일촉즉발의 상황이 빚어졌고 이날 오전 10시10분께 열린 국감은 약 30차례에 걸친 여야 의원들의 의사진행발언만 이어지다가 오후 12시8분께 정회됐다.

   
▲ 교문위 야당 위원 13명은 8일 오후 3시50분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교과서 추진에 관한 교육부의 명확한 입장 표명과 교육부가 작성한 것으로 이날 확인된 ‘고교 한국사교과서 분석 보고서’ 자료제출 요구를 담은 요구서를 교문위원장 명의로 발부했다./사진=미디어펜

파행 전까지 황 부총리는 야당 의원들의 집중 공세에 “행정절차에 따르고 있다”는 답변을 반복하며 “교육부가 구분고시한 뒤 절차를 거쳐 확정한다”면서 “사전에 교육부 장관이 예단을 갖도록 여러 얘기를 하면 절차적 문제가 있어 상세한 말씀을 못 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답했다. 그는 “교육부가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3시50분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교과서 추진에 관한 교육부의 명확한 입장 표명과 함께 교육부가 작성한 것으로 이날 확인된 ‘고교 한국사교과서 분석 보고서’도 “여당 맞춤형 자료”라며 이에 관한 자료제출 요구서를 교문위원장 명의로 발부했다. 이 요구서에는 교문위 야당 위원 13명이 참여, 공동 서명했다.

해당 보고서는 강은희 여당 의원이 지난달 추석 전후로 교육부 측에 요청해 제출받은 것으로, 그동안 당내 여의도연구소, 당 지도부등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국사교과서 집필진 128명중 83명이 좌경화됐다’는 자료 역시 이에 포함된 것으로 야당 측은 의심하고 있다.

앞서 파행한 교문위 국감은 이날 오후 4시16분께 박주선 교문위원장과 야당 의원들만 참석, 위원장 직권으로 재개됐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인 ‘소모전’ 양상을 보였다. 오전국감과 마찬가지로 야당 의원들의 의사진행발언 요구사항을 받아 위원장이 질의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황 부총리는 강 의원이 개인 정치 활동 차원에서 요청한 자료이며 강 의원의 재가가 없어 요구받은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거나, 여야 간사간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박 위원장은 교육부 측에 발부한 자료제출 요구서에 응하라며 “기재된 내용의 서류는 국회관계법상 군사기밀 안보사항 아니면 어떠한 이유로도 거부할 수 없다”고 압박했지만 황 부총리는 같은 답변을 되풀이했다. 야당 측이 교육부의 집필진 사상검증 의혹을 제기한 자료에 대해선 “교육부 자료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국감을 보이콧한 여당 측에서는 신성범 여당 간사만이 출석해 ‘반쪽 국감’이 속개된 것에 불만을 표하며 강 의원이 요청한 자료에 대해선 “국회 활동이 아니라 정당활동이었고 지금까지 관행으로 이뤄져 온 당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일방적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하는건 과도하다”며 교육부 측을 옹호했다.

또한 야당 의원들이 업무용 노트북에 ‘국정교과서는 친일·독재교과서’라는 문구를 부착시켜둔 것을 두고 “일방적인 정치공세를 가하고 있다”며 정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김태년 야당 간사는 “퍼포먼스를 여당 허락받고 해야하느냐”며 맞받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여야 간사 합의에 의해 속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의사정족수, 의결정족수 규정이 필요없기 때문에 위원장 직권으로 속개했다고 반박한 뒤 신 간사와 황 부총리의 여야 간사 합의 요구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 국회 교문위 종합감사는 이날 오후 5시15분께 또 한차례 정회됐다. 정회와 동시에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오른쪽)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을 찾아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사진=미디어펜

하지만 신 간사와 황 부총리는 같은 주장을 되풀이해 국감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이날 오후 5시15분께 또 한차례 정회됐다. 정회와 동시에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황 부총리를 찾아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오후 6시께 속개된 국감에 여당 의원들은 또 불참했다.

2차 정회 전 박 위원장은 황 부총리에게 국회법에 근거해 자료제출을 명령했지만 황 부총리는 응하지 않았고 국감 중에는 “자료 내용을 보지 못했다”며 어떤 내부 부서에서 작성한 문서인지도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야당 측은 연신 답답함을 토로하며 여당의 국감 참여를 촉구했다. 김 간사는 “(회의장) 옆 방에 여당 의원들도 신 간사도 와 계신걸로 안다”고 지적, 이를 전해들은 야당 의원들은 여당 측에 들으라는 듯 잇달아 국정화 정책과 교육부를 규탄했다.

   
▲ 신성범 여당 간사는 야당 의원들이 업무용 노트북에 ‘국정교과서는 친일·독재교과서’라는 문구를 부착시켜둔 것을 두고 “일방적인 정치공세를 가하고 있다”며 정회를 요구하기도 했다./사진=미디어펜

이에 신 간사는 “일방적인 정치 주장, 구호 난무하는 국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자료제출 요구에 대해서도 강 의원이 절대 반대하고 있으며 “일방적으로 공문서로 규정하고 내놓으라고 압박하는데 응할 수 없다”며 “정당활동 간섭”으로 규정하고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은 교육부에서 작성했다고 시인한 문서가 사문서라는 논리가 말이 안 된다며 고성과 반말 섞인 비난을 보냈다. 설훈 야당 의원은 “당장 (여당 의원들) 들어오시라”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박 위원장은 “특정 의원이 공개를 반대한다 해서 자료제출 요구 받은 문서를 정부로 하여금 거부토록 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 없이 국감 자료제출 거부하는 행위의 공범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며 정당활동 간섭 주장에는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하루종일 소모적인 공방만 반복한 여야는 결국 오후 7시20분께 세 번째로 국감을 정회하고, 여야 간사 합의를 전제로 오후 8시30분부터 국감을 재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