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인 10일 오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AN-2 항공기의 노동당 창건 70주년 축하비행 모습이 조선중앙TV로 생중계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10일 오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육성연설과 함께 대규모 열병식이 개최됐다.

열병식을 포함한 기념식은 당초 이날 오전에 9시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비가 내리고 구름이 낮게 깔리는 기상악화로 인해 6시간여 미뤄진 오후 2시50분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열병식이 미뤄지는 동안 모든 외빈들과 외신기자들은 일제히 호텔에서 대기 중이라는 홍콩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일부 국내 언론은 이날 열병식이 끝내 열리지 못한다면 열병식이 하루 연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오후가 되어서 푸른 하늘이 드러났을 때에야 북한 당 창건 기념식은 시작됐다.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날 행사를 북한 당국이 노심초사하면서 오후로 미룬 것은 무엇보다 항공기 에어쇼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날 김일성광장 상공에서는 AN-2라고 불리는 항공기를 동원해 망치와 낫, 붓을 형상화한 노동당 마크와 숫자 ‘70’ 모양으로 에어쇼가 두 차례 펼쳐졌다. 열병식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에어쇼가 펼쳐지자 외빈으로서 유일하게 주석단에 올라 김정은 바로 옆자리에 선 류윈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도 손을 흔들었다.

두 번째 에어쇼는 이날 열병식에서 최초로 300㎜ 신형 방사포가 등장했을 때 다시 펼쳐졌으며, 이번에는 항공기가 주체탑 쪽에서 나타나 주석단 쪽을 향해 날아오다가 사라졌다.

이날 항공기 에어쇼가 펼쳐지면서 북한이 기념식을 오후로 미룬 이유가 과거와 같은 항공기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에서 기념식 열병식 때 에어쇼를 하던 항공기가 추락했던 일이 있었고, 이날처럼 오전에 열릴 예정이던 열병식이 오후로 미뤄진 적도 있다.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1992년 4월25일 북한군 창건일 열병식 때 에어쇼를 하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며 “당시 김일성광장 상공에서 이미 엔진이 꺼진 항공기를 비행사가 억지로 양각도까지 몰았고, 결국 양각도 축구경기장과 추돌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비행사는 사망했지만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기상이 좋지 않은 날 함부로 항공기를 띄울 수 없는 교훈이 됐을 것이다. 특히 이날 두 번째 에어쇼는 항공기가 주석단 위로 지나가는 모습을 연출한 만큼 기상 조건은 더욱 중요했을 것이다.

또 북한의 기념식 열병식이 이날처럼 오후로 연기된 일이 지난 2008년 9월9일에도 있었다. 그해 9월9일은 공화국 창건 60돌 기념식이었으므로 북한이 중요하게 기념하는 날이었다. 뒤늦게 알려졌지만 이 즈음 김정일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통상 모든 기념식은 오전에 열리기 마련이지만 이날 기념식은 오후3시에 시작됐다. 소식통은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 이날 행사가 열리지 못한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오후3시가 되어서야 당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민방위 군복을 입고 나와서 사열하면서 열병식이 치러졌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번 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1년 예산의 3분의 1 수준인 1조~1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이번 열병식은 리영길 군 총참모장의 지휘 하에 2만여명의 병력이 동원돼 사거리 1만㎞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08과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 300㎜ 신형 방사포, 장사정포 등 북한군의 전략 무기들이 총 출동했다.

특히 2013년 정전협정 60주년 기념 열병식에 처음 등장했던 ‘핵배낭’ 마크의 보병부대가 또다시 등장했다. 핵배낭은 소형화된 핵을 가방 안에 넣은 뒤 폭파시키는 무기로 한 개 사단을 궤멸시킬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식통은 “북한 입장에서 아직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형 무기를 내올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열병식은 무력시위라기보다 인원을 대거 동원한 군중시위 중심으로 치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또 “김정은 연설에서는 핵 언급이 없었지만 ‘미국이 거는 어떤 형태의 전쟁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으므로 우회적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수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