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대 종북 프레임의 싸움…현대사 민중사관에 난도질
역사교과서 편향, 그에 따른 국정화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정은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론지었고 교육부는 이를 12일 발표한다. 애초에 다양성 및 자율의 존중을 기치로 내건 검정교과서는 출판사 종류만 다를 뿐 결국 반대한민국, 헌법가치에 반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왔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6년 만에 환원되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이를 막기 위한 차선책’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교과서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비뚤어지게 되어 있다. 국사학계가 자신들의 전공영역이라며 장막을 치고 역사기술을 독점하는 동안 우리 역사교과서는 진실과 동떨어진 질 낮은 국사교과서가 되고 말았다. 자유경제원은 전문가들과 함께 역사학자들만 모르는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취지로 12일 ‘국사학자들만 모르는 우리 근현대사의 진실, 국사교과서 실패’ 세미나를 개최했다. 아래 글은 발표자로 참석한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한국사 교과서 大戰

좌파들의 친일 프레임과, 보수우파들의 종북 프레임의 싸움

현행 중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 특히 근현대사 부문을 다룬 교과서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격하며, 북한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도배질 되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그리고 2005년부터 뜻 있는 보수우파 진영의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좌편향적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한국 현대사 교과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왜곡된 그대로 학교 현장에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말 그대로 우리 아들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는 좌편향적이고,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격하며, 민중사관에 심각하고도 충격적일 정도로 오염되어 있다. 그 오염의 발원지 및 근원을 추적해 보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과 그 궤적이 일치한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열기가 폭발한 것은 1987년 6·29 선언이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을 통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여 6공화국 헌법이 제정되고,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1988년 역사 교육과 관련된 중대한 변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바로 이 해에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이 결성됐고, 이 모임의 구성원들이 학교 현장에서 국정으로 되어 있는 국사교과서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공격하여 여론몰이를 하면서 좌편향 된 학생들을 위한 현대사 교과서들을 만들어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은 김영삼 정부다. 김영삼 정부의 교육문화수석 김정남과 서중석이 중심이 되어 교육부는 1994년 11월 제6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준거안’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에 폭탄을 터뜨렸다. 바로 이 준거안에 의해 ‘여수 순천 반란사건’은 ‘여수 순천 10·19 사건’으로, ‘5·16 군사혁명’은 ‘5·16 군사정변’으로 둔갑하는 등 용어와 개념들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 역사교과서는 기술의 좌편향,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방해 사태, 대한민국 역사 왜곡 등 현재 한국사회의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다./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준거안에 대한 명분은 그럴 듯 했다. 여수, 순천 지역 주민들이 반란의 주체로 오인될 소지가 있으니 용어를 순화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앞세워 1995년 2월 21일부터 ‘여순 반란사건’은 ‘여수·순천 10·19 사건’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확정하여 중고교 교과서에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여순 사건은 새로운 시각으로 재단되기 시작했다. 2010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는 여순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반란을 시작으로 9·28 서울 수복 이전까지 약 2년 동안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 사건과 관련하여 [비무장 민간인이 집단 희생되고 일부 군경이 피해를 입은] 사건.”

괄호로 표시한 부분을 주목해서 봐 주시길 바란다. ‘희생’이란 무고한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음을 말하고, ‘피해’란 물적 재산 및 가옥의 손상을 의미하기에 희생이란 용어보다 경미한 것으로 인식된다. 과연 여순 사건 당시 비무장 민간인이 ‘집단 희생’되고, 일부 군경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시대가 이처럼 미쳐 돌아가자 좌편향적 학자들은 노골적으로 기존의 전통적 사관과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기 시작했다. 남원진이란 학자가 쓴 ‘역사를 문학으로 번역하기 그리고 반공 내셔널리즘’이란 논문은 여수 순천 사건과 관련하여 “반란군은 경찰, 친일파 등을 처형했고, 진압군은 반란군 및 그 부역자를 학살했다”고 기술했다.

처형’은 법적 절차에 의해 엄정한 집행을 했음을 뜻하고, ‘학살’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살해했다는 뜻이다. 남원진은 반란군은 법적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죽였지만, 진압군은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무장 양민을 불법적으로 잔인하게 죽였음을 은연중에 함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런 류의 좌편향적 역사해석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치 거대한 댐이 무너져 속수무책의 상황이 된 것이나 다름없이 현대사의 거의 전 영역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대한민국 현대사를 민중사관에 입각하여 난도질 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시리즈로 발간되면서 지식 사회를 좌경화시켰고,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이 등장하여 감수성이 민감한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저주하도록 만드는 쓰나미 사태를 일으켰다. 영화 <남부군>을 비롯한 빨치산을 미화 찬양하는 작품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 역사교과서 편향, 그에 따른 국정화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정은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론지었고 교육부는 이를 12일 발표한다. 애초에 다양성 및 자율의 존중을 기치로 내건 검정교과서는 출판사 종류만 다를 뿐 결국 반대한민국, 헌법가치에 반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왔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사진은 미래엔 국사교과서 현대사 부분 첫페이지.

1997년 교육부는 제7차 교육과정을 고시하여 민중사관에 입각한 교과서가 합법적으로 등장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같은 괴물 교과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충격을 받은 보수우파 진영은 2005년에 ‘교과서 포럼’을 결성하여 아우성을 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와중에 2014년부터 학생들이 사용할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보수우파 진영에서도 2013년에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 맞게 집필된 한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공감을 한 여섯 분이 모여 교과서를 집필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학 교수로 재임 중인 권희영 교수를 대표 집필자로 이명희 공주대 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 장세옥 부여고 교사, 김남수 대전외고 교사, 김도형 사단법인 통일미래사회연구소 박사, 최희원 서울세종고 교사 등 6인의 필자가 집필하여 교학사에서 발간한 <고등학교 한국사>가 바로 그것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심의를 통과하자 역사학계와 교육계, 정치권, 언론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친일 교과서’로 공격해댔고, 전국 고등학교 2352개교 중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곳이 사실상 한 곳도 없게 되었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은 이 상황을 보고 ‘2352 대 0’이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왜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었을까. 결론은 간단하다. 이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하면, 좌파들은 그 학교와 재단을 친일 학교, 친일 재단으로 낙인찍어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교학사 교과서를 매도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교학사 교과서는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유관순 열사를 여자깡패로,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괴담을 퍼뜨려 교학사 교과서를 ‘아주 몹쓸 교과서’ ‘친일 교과서’로 주홍글씨를 새기는 데 성공했다.

좌파들에게 ‘친일 프레임’으로 찍히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점에서 좌파들의 공격은 확실하게 성공했고, 보수우파들은 완벽하게 패배한 셈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 내지 왜곡, 공격하고 좌파 사관을 퍼뜨리고, 북한 체제를 미화 찬양하다시피 하는 국사교과서가 시대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 그 배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전대협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 핵심 세력들은 민주화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받아들였으며, 북한의 혁명노선을 통해 한국 사회를 공산화하기 위해 집요하게 공작을 벌였다. 1983년 대학교 운동권에 유포됐던 <예속과 함성>은 북한 혁명론을 남한의 학생운동에 소개한 것인데, 이들은 <예속과 함성> 책자에서 한국은 1945년 이래 미국의 식민지이며,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은 미국에 의해 양성·조종되는 괴뢰정권이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강철서신’으로 알려진 김영환은 북한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한 것을 토대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NLPDR, 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cy Revolution)을 본격 제기했다. 김영환 그룹은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의 한반도 근대사 100년은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요, 제국주의에 대한 민중의 투쟁 역사다. 한국 사회는 미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가 파쇼적으로 지배하는 식민지 사회”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학생운동 지도부는 북한의 남한 혁명을 지도하는 한국민족민주전선(이하 한민전)의 지도하에 북한이 제공하는 투쟁구호 및 투쟁전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남한 사회에 ‘민주화’라는 외피를 두르고 실제로는 북한의 지시를 받아 반미 자주화 투쟁, 반독재 민주화 투쟁, 조국통일 촉진 투쟁 등 3대 투쟁을 공산 혁명을 진행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이 반독재 투쟁을 벌인 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 투쟁이었다. 바로 이러한 목적 하에 좌파들은 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현대사 교과서를 ‘민주화’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채 만들어 전국의 학교에 공급하고 가르치는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북한 주체사상과 북한의 혁명론을 받아들인 운동권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오늘날 우리 국사 교과서에 실린 현대사의 기술은 놀라울 만큼 일치한다. 그 이유가 있다.

과거 전대협의 핵심 멤버였다가 사상 전향을 한 이동호 캠페인전략연구소장의 글에 의하면 전대협의 지하지도부에 반미청년회란 조직이 암약했다. 반미청년회는 산하에 선전부를 설치했는데, 이 조직을 통해 김일성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론에 대한 조직원들의 사상무장을 위해 ‘자주언론’이라는 지하 간행물을 발간했다.

이 선전부의 활동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 KAL 858기 폭파사건이 남쪽 정부의 자작극이란 것을 대대적으로 전파한 것이다. 당시 반미청년회 선전부는 북한의 지령을 통해 이처럼 날조된 이야기를 각 대학 대자보를 통해 전파하여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증언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전대협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 지도부는 ‘민주화’라는 가면으로 위장하여 북한이 주장하고 지령하는 내용들을 한국 사회 곳곳에 전파했고, 그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분탕질하기 시작했다.

   
▲ 검정체제 이후 출판된 교과서를 살펴보면 국사학계가 자정 능력을 상실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대표는 선택의 자유와 사가들의 자율성을 얘기하지만, 국사학계 및 그들이 조장해낸 교과서에는 ‘자율’과 ‘경쟁’이 없다. 전체주의 집단화하여 반일 반미를 포함,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과 종북사관 민족사관을 담기에 바빴다. 9월 8일 자유민주수호연합, 나라사랑실천운동, 바른사회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한 교육정상화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사 교과서는 그들이 점령해야 할 중요한 진지였다. 그들은 놀라운 조직력을 발휘하여 한국사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봉인해제 한 다음, 좌파 친북 논리로 충실하게 무장된 필진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날조된 교과서를 집필했다. 그리고 이처럼 오염된 사상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라는 권력의 힘과 전교조라는 조직력을 이용해 학교 현장에 일사불란하게 보급하여 교육을 시행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격하고 망치는 내용으로 도배질 된 교과서가 좌파 정권의 권력의 힘을 업고 전광석화처럼 보급되어 교육이 자행되는 것을 눈을 훤히 뜨고 허용해버린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사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해 칼을 빼든 것은 대한민국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교육을 다루는 교육부가 있고, 교육을 책임진 장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국사 교과서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해 왔다. 국사 교과서 문제에 관한 한 교육부장관 이하 전 교육부 공무원들은 중립이거나 좌파 동조적인 입장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사 교육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가히 무정부상태다. 이런 문제에까지 대통령이 총대를 메고 나서야 할 정도로 고질병 중의 고질이 되어버렸다.

국사 교과서 논란의 흐름을 추적해보면 국사 교과서의 주도권 싸움은 이미 1988년부터 시작되었고,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에 본격화되었으며, 2005년부터 폭발하여 좌파가 압승한 꼴이 되었다. 따라서 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27년간의 전쟁은 대단히 힘들고, 어려우며, 고난에 찬 싸움이다. 때문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수 있다는 단단한 각오로 전쟁에 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다.

또 한국사 교과서 전쟁은 ‘프레임 전쟁’이다. 좌파들의 친일 프레임과, 보수우파들의 종북 프레임의 싸움이다. 좌파들이 역사를 장악하고, 한국 현대사를 장악하고, 교과서마저 장악한 현 상황은 마치 6·25 때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간 상황이 연상될 정도다. 지금 이 순간,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기적적인 대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전쟁은 좌파들의 완벽한 승리로 끝날지도 모른다.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