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국사교과서, 평양 전체주의를 위한 ‘악마의 바이블’
역사교과서 편향, 그에 따른 국정화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정은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론지었고 교육부는 이를 12일 발표했다. 애초에 다양성 및 자율의 존중을 기치로 내건 검정교과서는 출판사 종류만 다를 뿐 결국 반대한민국, 헌법가치에 반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왔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6년 만에 환원되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이를 막기 위한 차선책’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교과서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비뚤어지게 되어 있다. 국사학계가 자신들의 전공영역이라며 장막을 치고 역사기술을 독점하는 동안 우리 역사교과서는 진실과 동떨어진 질 낮은 국사교과서가 되고 말았다. 자유경제원은 전문가들과 함께 역사학자들만 모르는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취지로 12일 ‘국사학자들만 모르는 우리 근현대사의 진실, 국사교과서 실패’ 세미나를 개최했다. 아래 글은 발표자로 참석한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쟁’을 위한 출사표

주류 국사학자들의 문제는 관점이다. 그들의 관점은 첫째, 협소화되어 있고 둘째, 비틀려 있다. 이 관점을 유포시킨 자들의 속내(hintergrund, 의도)는 “평양-전체주의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한편 평양-전체주의에 대한 부역질을 도덕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이다.

1. 인류도 없고 문명도 없다.

그들이 만들어낸 한국 근현대사에는 인류도 없고 문명도 없다.

그들은 국사를 한반도 안으로만 좁혀서 협소하게 해석한다. 그들은 국사를 ‘순수하고 착한 조선민족의 고고함을 조명하는 민족 나르시시즘’으로 타락시켰다.

그들에게는 “개체 속에, 작은 것 속에 전체, 혹은 큰 것이 들어 있다”는 마이크로코즘 통찰이나, “티끌 하나 속에 우주 전체가 들어있다”(一塵之中…. 一卽一切多卽一)는 화엄(華嚴)적 통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인류사 속의 한국사’ ‘세계사 속의 한국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동양사, 서양사,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 사회사 등 업제적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를 배척하며, 이와 같은 분야의 전문연구자들을 향해 “국사는 우리 전문 연구자들의 것이야! 비전공자는 우리 전문 분야에 대해 함부로 끼어들지 마!”라고 악다구니를 쓴다.

그 결과, 국사는 ‘순수하고 착한 조선민족의 고고함을 조명하는 민족 나르시시즘’이 되었고, 국사 연구-교육은 국사 전공 졸업자들의 철밥통이 되었다.

그들은 또한 한국 근현대사를 “제국주의 침략 세력에 대한 민족 해방 투쟁의 역사”로만 파악한다. 왜 그러한 침략이 일어났는지, 문명사적 통찰을 배제한 채 ‘나쁜 놈’이 ‘착한 우리’를 짓밟았다는 식이다. 문명사적 통찰이 증발한 국사는 피해망상 정신분열증(paranoid schizophrenia)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다.

문명사적 통찰을 하게 되면 마땅히 ‘현대 문명’, 지식-기반 문명(혹은 지식-상징-소통 문명, knowledge-base civilization)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 문명의 본질적 특징을 포괄하는 개념인 현대성(modernity)이라는 단어가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국사 교과서에도 이런 단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 현 역사교과서의 숨은 의도는 이렇다.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세워서 운영해 온 나라라고 폄훼 한다. 평양에 민족 정통성이 있다고 끊임없이 암시한다. 그리하여, 평양-전체주의에 대한 도덕적 판단 능력을 마비시킨다. 나아가 평양-전체주의를 추종하거나 역성드는 부역질을 ‘도덕적 행위’라고 착각하도록 만든다.”/사진=연합뉴스

산업혁명 이래 급속하게 농숙하기 시작한 현대문명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0여 년을 기점으로, 즉 1950년대를 기점으로, (영미-서유럽-일본을 중심으로) 지식-기반 문명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중후장대 제조업이 아니라 지식, 문화, 창의가 경제를 이끄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를 가장 빨리 알아차린 사람이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이다. 그는 이 통찰에 바탕해서 경영학이라는 새 학문 분야를 개척해 만들어 냈다. 드러커 이전에는 ‘경영학’이라는 학문 분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식-기반 문명으로의 진화는, 1990년대 초반에 특이점(singularity point, 모든 속성이 뒤바뀌는 혁명적 임계치)을 거치면서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겪었다. 공산 전체주의 체제의 주춧돌이었던 소련이 붕괴했으며(1991년), 세계시장 체제가 강화되었으며(WTO, 1994년), 컴퓨터 사이의 통신 방식인 인터넷 프로토콜(TCP/IP)이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연결 방식인 www(HTTP, 1994년에 미국은 인터넷 서비스의 상용화를 결정했다)로 확장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1970년대에 일찌감치 감지한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월남전 패망 이후 대혼란에 빠져 있던 미국 지성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공했다.

지금 우리는 매순간 고도화 되고 있는 지식-상징-소통 문명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이 문명은, 세계시장의 실시간성(real-time), 전재성(omni-presence, 어디에든 있음), 지능성(intelligence) 을 매순간 강화시키고 있다. 필자는 이를 ‘세계시장의 ROI’라 부른다.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에는 위와 같은 문명사적, 인류사적 통찰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버전의 한국 근현대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인류와 동떨어져, 세계를 초월하여 살아가는 고고한 존재란다. 이는 지독한 민족 나르시시즘이다.

이와 같은 근현대사적 관점을 따르면, 제국주의 침략 역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쁜 놈’이 ‘착한 우리’를 짓밟은 사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명사적 통찰이 있어야 할 곳에, 선과 악이라는 도덕관념이 흉측하게 똬리 틀고 있다. 도덕은 중요하지만, 아무데나 사용되면 지독한 위선과 독약이 되는 법이다.

애초 제국주의 침략이란, ”전통문명을 살아가는 한 국가 내지 민족을,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다른 국가 내지 민족이 덮치는 사건”이다. 냉정하게 말해, 인류사적 차원에서 보면, 이는 ‘현대화/근대화’가 실행되는 여러 경로 중 일방적이며 비극적인 하나의 경로일 뿐이다. 마치 아득한 과거에, 보쌈(약탈혼) 내지 강간이 배우자를 확보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였듯…

따라서 근현대사 해석이란, “현대문명의 특징을 무엇이라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진화형태인 지금의 지식-상징-소통 문명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한국인이 이 문명의 도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왔나?”라는 문명사적 도전-응전에 대한 풀이가 되어야 한다.

“근현대사는 문명사적 도전-응전(challenge-response)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아놀드 토인비(A. Toynbee)의 통찰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낸 한국 근현대사에는, 인류도 없고 문명도 없다. 그저 “‘착한 우리’를 ‘나쁜 일제’, ‘나쁜 미국’이 짓밟았다”는 소리 뿐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전형적인 피해망상 정신분열증일 뿐이다. 일찍이 1904년, 이씨조선 왕실에 의해 7년 째 감옥에 갇혀 있던 무기징역 죄수, 스물 아홉 살 청년 한 명이 이렇게 부르짖은 바 있다.

“도대체 우리는 왜 독립을 하려는 거지? 이건 완전히 다른 문명이야. 인류는 전혀 다른 문명으로 진입하고 있어! 그런데 왜 독립을 원하는 거야? 그건, 우리가 ‘독립적 개인’이 되기 원하기 때문이야. 조선 정도의 전통사회와 문화를 이룬 민족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독립적 개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러한 개인들에 의해 구성되는 ‘현대 독립 국가’를 이루는 방법 밖에는 없어… 독립운동이란, 독립적 개인이 그 개인됨을 위한 투쟁일 뿐이야…. 그런데 어떻게 하면 ‘독립적 개인’이 될 수 있지? 우선 정신이 독립해야 돼! 그래! 국가의 독립 이전에, 개인의 독립이 있어야 하고, 개인의 독립 이전에 정신의 독립이 있어야 해!”

이 처절한 절규에 이미 한국 근현대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이지, 그 철학, 관점, 방법론이 몽땅 들어있다. 이 절규를 내지른 불쌍한 죄수가 우남 이승만이다.

주류 국사학자들, 역사교사들은 1904년에 정립된 우남의 통찰을 전면 부정하는 행위를 ‘국사 연구’라 부른다. 선배세대가 이룬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통찰을 내팽개쳤다는 점에서 ‘개상스런 양아치’이며, 멀쩡한 놈이 피해망상 정신분열증 환자의 헛소리를 떠들어 댄다는 점에서 ‘미친놈’이다. 한마디로 ‘개상스런 양아치 미친놈들’이다.

2. 숨은 의도(hintergrund)

“숨은 의도(hintergrund)가 관점(optik)을 결정하며 관점(opitk)이 주장(vodergrund)을 결정한다. 관점을 파헤치면 숨은 의도를 알 수 있다.”

현대문명의 본질을 통찰한 니체(F. Nitzsche)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위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니체 철학을 ‘관점주의’(perspectivism)라 부른다. 관점을 나타내는 독얼어가 ‘optik’이고, 영어가 ‘perspective’이다.

주류 국사학자 및 역사교사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관점—즉 인류와 문명을 사상한 채, ‘착한 조선사람들을 짓밟은 일본과 미국’으로만 한국 근현대사를 해석하는 관점—을 만들어낸 의도를 잘 모른다.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철학자’(philosopher)가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학자와 교사란 3류 ‘철학 노동자’ 혹은 ‘지식 노동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3류 먹물 노동자는 ‘학위, 전공, 밥그릇’을 위해 토끼장의 토끼 새끼들처럼 길들여진 존재일 뿐이다. 반면, 참된 철학자란 까마득한 하늘 우듬지에서 현대 인류 20만년 역사를 통찰하는 가 하면, 깜깜한 수 천 미터 땅속에서 ‘인간’이라 불리는 이 경이로운 영장류에 깃들어 있는 악마성과 희롱할 줄 아는 존재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고 시작하자.

“주류 국사학자 및 역사 교사 여러분! 3류 먹물 노동자에 속하는 여러분들은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낸 흉측한 의도를 모르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철학자’라는 사납고 고달픈 운명을 타고난 기이한 존재가 아니라면 자신의 학문 분야에 깔려 있는 의도를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학위, 전공, 밥그릇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 온 인생에 대해 자괴감 느끼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지금 하시고 계신 대로 개상스런 미친 소리를 계속 하십시오. 단, 세상 분위기가 좀 바뀌면 얼른 입장 바꾸어 제법 말이 되는 소리를 내시면 됩니다. 어차피 여러분은 3류 먹물 노동자들일 뿐입니다. 밥그릇을 위해서라면 무슨 소리라도 주절댈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야말로, 여러분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가장 강력한 장점입니다. 바퀴벌레가 생명 진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히듯이, 여러분도 바퀴벌레에 버금가는 강력한 생명력, 강력한 변신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국사학계, 역사교사 커뮤니티는 바퀴벌레 집단이라는 점에서, 그 위대함이 있습니다.”

   
▲ 국사는 ‘순수하고 착한 조선민족의 고고함을 조명하는 민족 나르시시즘’이 되었고, 국사 연구-교육은 국사 전공 졸업자들의 철밥통이 되었다. 그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제국주의 침략 세력에 대한 민족 해방 투쟁의 역사”로만 파악한다. 왜 그러한 침략이 일어났는지, 문명사적 통찰을 배제한 채 ‘나쁜 놈’이 ‘착한 우리’를 짓밟았다는 식이다./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지금 역사교과서들을 보면, 이 흉악한 관점 밑에 깔려 있는 ‘숨은 의도’(hintergrund)가 생생하게 보인다. 짧게 말하자. 이 의도는 이렇다.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세워서 운영해 온 나라라고 폄훼 한다. 평양에 민족 정통성이 있다고 끊임없이 암시한다. 그리하여, 평양-전체주의에 대한 도덕적 판단 능력을 마비시킨다. 나아가 평양-전체주의를 추종하거나 역성드는 부역질을 ‘도덕적 행위’라고 착각하도록 만든다.”

문제는 이 같은 의도로 만들어진 관점이, 대한민국이냐 반(反)대한민국이냐라는 차원뿐 아니라, 개인(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성격-심리 형성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있다. 개인과 인류가 통합 차원에서 이해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걸려있는 게 그까짓 일개 국가 ‘대한민국’ 뿐이라면 이민 가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개인-실존과 인류 전체가 걸려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일개 국가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식-상징-소통문명과 세계시장과 자유민주주의의 성공을 나타내는 인류적 차원의 아이콘이다. 대한민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을 제대로 해석하고 옹위한다는 과제에 있어서는, 물러설 곳이 없다. 거기서 물러서면 우리 한 명 한 명이 존엄한 개인-실존이라는 진실을 포기해야 하며, 우리 한 명 한 명이 인류의 멤버라는 보편적 동질성을 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식-상징-소통문명과 세계시장과 자유민주주의의 성공을 나타내는 인류적 차원의 아이콘이 되어 있다는 점이야말로 한류의 숨은 비밀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한류를 보면서 받는 느낌은 이것이다.

“어? 쟤들 봐! 60년 전만 해도 르완다 급의 나라였어. 그런데 지금은 풍요와 활기가 넘쳐! 저, 노래! 저 춤! 저 영상! 어쩜 저렇게 인간의 고통과 환희, 우울과 열정을 생생하게 나타낼 수 있지? 아! 르완다 급의 민족도 현대문명, 세계시장, 자유민주주의의 역동성에 올라타면 단 60 년 만에 저렇게 될 수 있는 거구나! 정말 신기하네!”

3. 평양-전체주의 부역질을 위한 ‘악마의 바이블’

평양-전체주의는 인간이라 불리는 기이한 영장류에 깃들어 있는 악마성의 응축물이다. 현대문명의 광증인 전체주의가 평양보다 더 병적이고 평양보다 더 지독할 수는 없다.

“이보다 더 사악할 수는 없다!”

평양-전체주의는 나치즘보다 더 지독한 민족 제일주의이며, 일제 천황주의(Mikadoism) 보다 더 지독한 김조(金朝) 신격화이며, 모택동-폴포트보다 더 지독한 공산 계열 학살체제이다. 이는 UN이 채택한 인권보고서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지금 국사 교과서는 이와 같은 ‘악마의 체제’에 대한 일체의 도덕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나아가 이와 같은 ‘악마의 체제’에 대한 부역질을 ‘도덕적 행위’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또한 전체주의의 침략에 맞서서 지식-기반 문명, 세계시장,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원리로 번영해 온 대한민국에 대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수치스런 나라”로 느끼게 만든다. 그 대한민국 안에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식민지 체제에 빌붙어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라 혐오하게 만든다.

이건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악마에게 부역질 하도록 만드는 ‘악마의 바이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역사교과서는 두산그룹에 속하는 두산-동아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필자는 두산그룹이 코흘리개 돈 좀 벌겠다고 이 같은 악질적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대신에 차라리 (지금은 외국계 회사에 팔아치운 OB 맥주 대신에) 두산맥주를 만들어 그 속에 청산가리를 풀기를 기도한다.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망가지는 것보다는 필자와 같은 기성세대가 청산가리를 먹고 죽는 편이 낫지 않은가!

지금 역사교과서 중에 북한체제를 ‘전체주의’로 규정한 교과서는 교학사 하나 뿐이다. 작년에 교학사 교과서가 나왔을 때 역사교사조직, 국사 연구자 조직이 몰매를 놓아 단 한 군데 학교만 채택되었을 뿐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나? 역사교사들과 국사연구자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마피아”임을 뜻한다. 따라서 사실상 이들에게 선택 권한이 있는 검인증 체제를 없애고 국정화로 가야 한다. 이들은 작년에 조폭집단에 다름없는 짓을 저지름으로써 사실상 선택 권한을 포기한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다양성을 해치는 짓이다”

이자들은 이렇게 자못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다. 쥐를 잡아서 삽으로 찍어 죽여 본 적 있나? 그때 쥐가 얼마나 애처롭게 찍찍거리는 지 본 적 있나? 애처롭다고 놓아 준다면 바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밀어 붙여야 한다. 국사 학계 자체가 스스로를 정화하여 진화할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이다.

   
▲ 주류 국사학자들의 문제는 관점이다. 그들의 관점은 첫째, 협소화되어 있고 둘째, 비틀려 있다. 이 관점을 유포시킨 자들의 속내(hintergrund, 의도)는 “평양-전체주의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한편 평양-전체주의에 대한 부역질을 도덕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이다./사진=미래엔 국사교과서 현대사 첫 페이지.

이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이는 전쟁이다. 역사교사, 대학 교수, 연구자들로 이루어진 약 만 오천 명 철밥통 먹물 노동자 집단에 대한 전쟁이다.

첫째, 전쟁의 본질.
이 전쟁은 정신의 측면에서는 섬멸전(annihilation warfare)이며, 밥줄의 측면에서는 순치(taming)이다. “평양-전체주의에 대한 부역질을 부추긴다”는 그 악마성은 섬멸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가 왔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서 그 밥줄은 연명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둘째, 전쟁의 진용.
이 전쟁의 장수는 교과부 장관, 국사편찬위원장, 청와대 교문수석이다. 이 세 포스트에 장수를 제대로 꼽아 넣기 전에는 전투마다 판판히 깨진다. 국사업자(이들은 학자가 아니라 업자다. ‘악마의 바이블’을 파는 업자)들은 새민련 등 야당과 결합해서 대중적 저항운동을 만들려고 발악할 것이 틀림없다. 이때 이들이 내세우는 구호는 두 개다. 하나는 다양성. 둘은 ‘시장에 의한 선택’. 둘 다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구호들이다. 이 구호가 국민 대중을 현혹할 때 굳굳하게 버티며 밀고 나갈 장수들이 필요하다.

셋째, 전쟁의 양태.
이 전쟁은 홍보전이다. 사람들에게,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얼마나 흉악한지, 그 실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 전쟁의 요체다. 기존 역사교과서들이 “평양-전체주의를 정당화시키고, 평양-전체주의에 대한 부역질을 도덕적인 것으로 세뇌시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많이, 많이 알려야 한다.

넷째, 전쟁의 종심 타격(縱深打擊, deep strike)
적진 깊숙한 곳을 파괴하여 적진을 뿌리부터 무너뜨리는 것을 ‘종심타격’이라 부른다. 세 개 수단으로 종심 타격을 가해야 한다.

1) 우선, 두산그룹부터 양심선언을 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청산가리보다 더 지독한 독극물을 우리 청소년에게 주입하여 코흘리개 돈을 탐해 왔던 자신의 행적에 대해 오너 박씨 일가가 온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2) 한국사 분야의 EBS 인터넷 강의를 정상화해야 한다. 한국사 교육을 리드하는 것은 EBS 인강(인터넷 강의)이다. 여기를 잡으면 전국의 역사교사들이 ‘따라하기’를 한다.

3) 정부가 연구지원금을 살포하는 창구인 한국연구재단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한국사 분야뿐 아니라 그 관련 분야인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까지 전면적으로 정상화시켜야 한다. “평양-전체주의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않으면 정부 연구자금을 지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고한 전통으로 만들어야 한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욱일승천의 기세로 벋어나가던 스탈린의 공산 전체주의 팽창 모멘텀을 온 몸으로 막아낸 민족은 누구인가?

우리다. 우리뿐이다. 우리만 방어전쟁을 성공시켰다.

“세계시장을 겨냥한 개혁개방이야말로 후진국이 현대문명 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해서, 중국의 개혁개방(1979), 베트남의 개혁개방(1982), 동구의 개혁개방(1980년대 후반기), 소련의 붕괴(1991)를 촉발시킨 민족은 누구인가?

우리다. 우리가 해냈다.

이제 전 세계에 단 하나 남아있는, 흉측한 전체주의를 종식시키고, 지난 70년동안 산송장으로 시들어왔던 겨레의 반쪽을, ‘세계시장을 누비며 살아가는 당당한 개인-실존’으로 재활시켜 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자들은 누구인가? 인류 현대사에서, 현대문명의 광증인 ‘전체주의’를 최종 종식시킬 운명을 가진 민족은 누구인가?

우리다. 우리가 그 ‘운명적 존재’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매우 유니크하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바로 인류적 차원의 선택(자유민주주의, 세계시장, 지식-상징-소통 문명) 과정을 보여주는 마이크로코즘(microcosm, 한 개체의 미세한 구조 속에 우주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하고 있는 운명은, 인류의 광증, 현대 문명의 광증인 전체주의를 최종 종결시키는 매크로코즘(macrocosm, 우주적 원리와 구조)이다. 하여 우리는 오늘, 평양-전체주의를 정당화하고 그에 대한 부역질을 부추기는 너희, 국사업자들의 썩은 영혼에 대해 섬멸전을 선포한다.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