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역동성 하락요인은 ‘관치 경제평등주의’ 정책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는 폭넓은 학술활동을 통해 기업정책 및 경제발전 연구에 매진한 ‘기업경제’ 전문가다. 좌 교수는 양극화와 저성장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답,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동반성장 기조를 회복시킬 방안에 대해 기존 주류경제학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좌 교수는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을 통해 “오늘날 세계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고난도의 경제문제와 더불어 한국경제 동반성장의 해법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박정희 시대의 기업부국패러다임, 신상필벌의 차별화원리 속에 있다”고 밝힌다. 미디어펜은 향후 한국경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취지에서 좌승희 석좌교수의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의 일부를 발췌하여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마지막 열 번째 연재다. 저서를 펴낸 곳은 출판사 ‘백년동안’이다. [편집자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미디어펜 회장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⑩] 한국발 경제학 혁명을 고대하며

9장 한국의 발전경험과 한국발 경제학 혁명을 고대하며

소위 이단적 경제정책으로 성공한 박정희 정책 패러다임은 1980년대 이후 점차 교과서적인 정책으로 대체되었다. 시장 중심적 신고전파 경제학과 균형발전 이념이 지배하면서 지난 30년 한국의 선진화 전략은 철저히 박정희를 청산하고, 국토와 지역간의 균형발전과 기업생태계의 균형발전, 소득균형, 경제력집중의 규제, 경제민주화 등선진국의 평등 지향 사민주의를 따라 하기였다.

1980년대 후반 이후의 경제 역동성 하락요인: 관치 경제평등주의 정책

아래 그림의 ‘지난 60년 동안의 한국경제발전사’ 그래프에 의하면 개발연대 시기 연평균 8~9퍼센트 성장으로 30년 동안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경제는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오늘날 3퍼센트대로 추락하고 있다. 이런 성장 잠재력 둔화원인은 무엇일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5공화국 정부에 의해 박정희 정책 패러다임을 청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박정희 정책이 경제 불균형을 초래했기 때문에 더 평등하고 균형 잡힌 경제를 지향한다고 각종의 규제와 지원 정책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박정희 시대에 대비해서 한마디로 부른다면 경제평등주의라 할 수 있다. 그 진수가 바로 1987년 민주헌법에 등장한 경제민주화이다.

   
▲ 지난 60년 동안의 한국경제발전사 : 잠재성장률 추세.

지난 30여 년의 경제성장의 둔화와 경쟁력 저하의 원인은 ‘경제를 민주화’한다고 흥하는 국민들을 폄하하는 경제사회 제도를 만들어 내 국민들의 자조와 발전정신을 약화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남 탓하고 대기업, 부자, 수도권 탓하는 국민들이 양산되고 이제 “내 실패는 사회 탓이며 정부가 책임지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더욱 커지면서 정치는 지속적으로 포퓰리즘 민주정치로 전락해 왔다. 개발연대 자조정신으로 충만했던 국민들이 이제 남 탓, 정부 탓하는 국민들로 바뀐 것이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은 우수한 경제주체에게 경제적 자원을 집중시키고 집적을 유도해 온 시장과 정부의 기능을 해체했다. 그리고 경제적 평등과 실효성 없는 균형발전 등을 추구해 왔다.

우리는 1980년대 중·후반 이후 특히 1990년대부터 균형발전과 유사사회주의 이념인 경제민주화로 대변되는 반 차별화 경제평등주의를 정책 패러다임으로 지향해 왔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개발연대의 ‘관치 차별화’에 대비하여 ‘관치(에 의한) 평등주의’라 부를 수 있다. 그 구체적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대기업은 크기 때문에 무조건 규제하고 중소기업은 작기 때문에 성과를 무시한 채 평등지원하고, 지역균형을 위한다고 수도권의 성장은 규제하고 지방을 평등하게 지원하여 기업과 지역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해 왔다.

농업 지원정책은 개발연대 새마을운동과는 정반대로 가난한 농민만을 우대함으로써 농민을 더 가난한 농민으로 주저앉게 만들고 오히려 농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더구나 노조는 약자라고 무소불위로 키워 국내 투자의 걸림돌이 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노조로 방치해 왔다. 수월성을 포기한 교육 평준화 정책은 우수학생 역차별로 실력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고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의 발호를 조장함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을 고착시켜 왔다.

나아가 획일적 대학 지원정책과 과학기술 지원정책으로 우수한 학교와 연구자를 역차별하여 연구 수월성을 훼손해 왔다. 최근에는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수도를 분할하여 정부의 효율성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무차별 보편복지로 그동안 실패해 온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길로 치닫고 있다.

심지어 산업정책에서도 경제적 차별화 원리는 사라지고 골고루 나눠 지원하는 평등 지원정책이 지배하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 육성정책, 노무현 정부의 동력산업 육성정책,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정책들이 모두 말은 산업 육성정책이라지만 그 내용은 모두 균등배분 지원정책으로 일관해 일종의 사회정책으로 전락하여 별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정부에 의한 경제평등의 보장은 성장·발전의 안티테제로서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이라 했다. 이뿐이 아니다. 민주화된 정치는 끝도 모를 포퓰리즘으로 치달아 이제 경제가 완벽하게 정치화되었다. 경제적 논리도 없이 기업에 대한, 크기·분야·입지에 따른 정치적 차별 규제가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은 개발연대 박정희의 ‘정치의 경제화와 경제적 차별화’ 정책 패러다임과는 정반대의 ‘경제의 정치화와 경제평등주의’라 할 수 있다.

   
▲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좌승희 著)은 ‘기피의 대상’으로 방치된 한국경제의 핵심적 시기를 경제학적 분석의 화두로 삼은 저작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능적 본질에 입각하여 박정희 시대를 분석함으로써 박정희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성공원리를 밝히고 있다.

결국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은 균형발전과 경제민주화의 이념 하에 경제적 평등을 앞세워 경제적 수월성을 희생함으로써 경제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경제의 역동성 저하와 각종 양극화의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겉으로는 경제발전 정책이라지만 실제로는 많은 경우 성과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지원하는 사회보조 정책이 남발되면서 경제발전 효과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상 경제적 차별화를 통한 동기부여 정책으로서의 경제정책이 실종된 것이다. 경제역동성의 하락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한편 수출제조 대기업들이 각종 국내규제 때문에 수출수익을 국내 투자로 환원하지 않음으로써 수출과 내수 간의 연계가 사라져 각종의 양극화에 시달리게 되었다. 오늘날 국내 대기업 투자규제정책은 투자할 능력이 있는 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막고 해외투자에 나서게 조장하여 일자리를 해외에 수출하는 양극화 조장정책으로 전락하였다.

흥미롭게도 신고전파의 경쟁시장 모형은 평등한 시장을 가정하고 있어 평등과 균형의 이념을 수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수정자본주의나 사민주의를 추종해온 OECD 평균 따라가기가 어느새 경제정책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다. 개발연대 30년 가까이 세계 최고의 성장과 가장 양호한 동반성장을 실현했던 경제가 지금은 3퍼센트대의 잠재성장능력에 분배의 악화, 청년실업의 누증, 가계부채, 심지어 경제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발 경제학 혁명을 고대하며

이렇게 해서 한국은 지난 60년 동안 정반대의 두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실험하였다. 전반은 ‘정치의 경제화와 경제차별화’, 후반은 ‘경제의 정치화와 경제평등주의’이다. 그 성과를 요약하면 전반은 ‘세계 최고의 성장과 가장 양호한 동반성장’, 후반은 ‘추락하는 성장잠재력과 경제양극화’라는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1) 이런 경험은 경제발전 정책을 연구하는 경제학도들에겐 연구과제로서 너무나 값진 경험이다. 물론 오늘날 경제적 어려움을 국민들에게 강요하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60년이라는 2세대 정도의 짧은 기간에 이렇게 극명하게 서로 대립되는 경제정책 패러다임과 경제 현실을 경험한 경제가 지구상에 한국 말고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역사적 지평을 더 넓혀 보면 이런 우리의 경험은 우리만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다. 200여 년의 자본주의 경제발전 역사를 가진 서구 및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우도 18세기 후반~19세기 초 산업혁명 이후 150여 년에 걸쳐 ‘역동적 성장과 분배개선’ 경험을 했다. 그리고 지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수정자본주의와 사민주의 체제로 전환했고 그후 오늘날 ‘저성장, 분배악화’를 겪고 있다.

   
▲ 좌승희 교수는 "현대적 의미의 기업이야말로 생산요소를 효과적으로 결합·활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 또는 부(富)를 창출하는 핵심장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요체는 ‘시장경제’라기보다는 ‘기업경제’라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좌 교수는 박정희 경제정책이 자본주의 본질적 기능인 ‘기업경제’에 부합하도록 추진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시대 정책패러다임을 ‘기업부국 패러다임’으로 정의한다./사진=미디어펜

우리의 지난 60여 년의 경험과 다르지 않다. 단지 우리는 더 압축적 경험을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들로 출발한 지금의 많은 개발도상국들도 저성장 국면을 못 벗어나고 있다.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역동적 성장과 분배개선’의 시대는 바로 ‘정치의 경제화와 경제적 차별화’ 시대인 반면, ‘저성장과 분배악화’는 ‘경제의 정치화와 경제평등주의’시대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세기 후반의 수정자본주의나 사민주의 체제의 경험을 통해 경제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인위적 분배개선이 지속가능한 개선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세계 경제학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반세기 이상의 평등주의 정책 속의 장기 성장 침체와 양극화라는 역설의 원인도 바로 평등민주주의에 의한 경제의 정치화와 그에 따른 경제평등주의 정책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금의 경제양극화 현상을 자본주의의 본질 때문이라 주장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개혁을 주장해 왔지만 실은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이 바로 평등을 지상과제로 추진해 온 사회민주주의, 수정자본주의 혹은 복지국가 모형 등의 평등민주주의에 있음을 알 수 있다.2)

평등민주주의에 대한 개혁 없이 지금 전 세계 경제가 봉착한 장기 성장정체와 양극화 문제를 풀 길은 없어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경험의 관점에서 볼 경우라야 이 모든 그림이 더 명백해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우리의 경험이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이미 선진화된 국가들의 장기간에 걸친 (쉽게 잘 보이지 않는) 일반적 경험의 압축형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 성공정책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경험을 잘 살려내 기존 이론들을 보완하여 새로운 경제발전 정책이론으로 체계화해 낼 수 있다면 세계 70억 인류의 보다 밝은 경제적 미래를 위한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그동안 필자를 포함 한국의 경제학계를 지배해 온 학문적 사대주의와 훈고학(訓詁学)적 연구관행을 과감히 탈피하여 보다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접근하는 일일 것이며 이를 위한 신념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창조경제인 위대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민이 아니었던가! 여기서 삼위일체 차별화 경제발전론으로 우리는 그 여정의 첫 페이지나마 써 보고자 노력하였다.3) 한국발 경제학 혁명에 더 창의적인 경제학도들의 도전을 기대해본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미디어펜 회장

1) 이상의 관점에서 본 지난 60년 한국경제발전의 역사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졸저(2006, 2008) 참조

2) 다소 논쟁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경제양극화라는 용어는 일상적인 경제적 차이나 차등과 같은 불평등 현상을 의미하기보다 극단적인 1대99나 10대90 등과 같이 소수의 슈퍼 부자와 대다수의 가난한 자로 양분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는 사실상 중산층이 무너져 소멸되는 경우에 해당하겠는데 자본주의 경제의 일상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경제가 극단적 저성장국면에서 소득원으로서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저하되어 중산층이 와해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가 멸망할 때 산업기반이 몰락하여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일부 공산당원들을 제외한 전 인민이 궁핍화되어 사실상의 농경사회로 역진했던 현상과 같이 일상적 불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장기간 저성장이 진행되면서 일부의 슈퍼 부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궁핍한 평등한 사회로 역진하는 초기 과정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양극화의 원인은 장기 성장 정체에 있다고 할 수 있고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저성장을 초래하는 평등민주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일한 분석에 대해서는 졸고(2012a) 참조.

3) 이 이론의 더 체계적 논의에 대해서는 졸저(2006, 2008, 2012)와 졸고, Jwa(201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