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체제만이 인류 빈곤서 구원…통일정책 시사점 커
자유경제원은 14일 리버티홀에서 앵거스 디턴 노벨상 수상 기념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디턴의 위대한 탈출과 한국에 주는 메시지>로, 지난 12일 ‘소비, 빈곤, 복지에 대한 분석’의 공로로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이 한국에 주는 메시지를 되새겨보는 자리였다. 한국에선 잘 사는 국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에서 시작됐으며, 빈부격차와 불평등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된 바 있다. 앵거스 디턴은 “세계가 과거보다 훨씬 더 평등하게 되었으며, 분배가 아니라 성장이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실증적 연구를 통해 보였다. 앵거스 디턴은 빈곤과 불평등을 사회악으로 생각하면서도 피케티와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아래 글은 토론회에서 발표한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사상 :
한국에 주는 시사성1)

☐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은?

-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전공분야는 미시경제학을 토대로 빈곤과 복지, 경제성장 간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규명한 학자.
한국에선 피케티 경제학을 비판하는 논리로 디턴 교수의 2013년 출간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이 많이 인용되었음.

o 디턴의 논리는 피케티와는 반대로, 성장과 불균등(inequality) 간의 관계를 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가짐. 피케티는 주어진 성장수준에서 불균등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고소득층에 높은 세금을 주장한 반면, 디턴은 성장함으로써 빈곤에서 탈출할수 있음을 주장. 또한 피케티는 전체 인구의 불균등 수준을 문제시한 반면, 디턴은 전체 인구가 아닌 빈곤층에 초점을 맞추었음. 결국 중요한 건, 빈곤이 문제지, 불균등이 아니라는 입장임.


☐ 잘사는 나라의 의미는

잘 사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여기에 대해선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경제성장 수준을 통해서 그 국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생각으로 불평등 수준을 통해 국가를 평가하는 시각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접근이지만, 절대 빈곤층의 비중을 통해서 국가를 평가하는 방법도 있다. 세가지 접근은 서로 상충하는 듯하여,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주제다. 특히 경제성장과 분배가 상충적이냐에 대한 대립적 시각은 경제학에서도 오래전부터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한 국가의 경제수준을 정의하는데 이 세 가지 시각은 서로 대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종합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 디턴은 최근 저서, 위대한 탈출에서 시장경제 체제가 지속되면서, 소득수준과 건강실태의 분포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좀 더 단순하게 접근하기 위해, 한 국가의 소득분포를 그림과 같다고 가정하자. 이때 A는 국가의 평균소득을 의미하고, B는 빈곤층 비중, C는 부유층의 비중을 나타낸다. 잘 사는 국가를 정의하는 논쟁은 A, B, C 중에서 어느 곳에 가중치를 주느냐의 문제이다. A를 강조하면 경제성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시각이고, B는 빈곤층 비중을 통해 국가를 평가하는 시각이다. C는 부유층의 점유수준을 통한 평가로서, 많이 사용되지 않으나 피케티는 주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잘사는 국가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위해 소득분포 수준을 통한 평가 방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분포곡선에서 퍼져있는 정도(수학적으로는 표준편차라고 함)를 살피는 방법이다. 전체 분포수준은 지니계수와 같은 하나의 함축적 지표로 표현가능하다. 그러나 A, B, C는 서로 연관성을 가지므로, 서로 배타적인 정책목표가 설정되면, 본질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게 된다.

한국에선 잘 사는 국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에서 시작됐으며, 빈부격차와 불평등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되었다. 이 책자는 300년 간 선진국의 불평등 실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부유계층에 자본이 집중됨으로써, 소득 및 부의 불평등 수준이 더욱 악화 되어간다고 설명하였다. 자본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경제성장율이 저하될 수밖에 없고, 이는 자본보유의 불평등을 더 심화시켜, 불평등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불평등은 사회를 불안하게 함으로써, 민족주의, 보호주의 등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자본과세를 강화함으로써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피케티의 접근방법은 특히 상위층 1%의 자본집중도를 수치로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유발할 수 있었다.

   
 

☐ 피케티가 바라보는 세상

피케티가 바라보는 ‘잘사는 국가’의 정의는 위 그림에 의하면 C에 집중한 것이다. 상위계층에 편중된 자본을 완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A, B, C는 서로 연계를 가지므로, C만을 정책목표로 내세우면, A와 B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부유층에 대한 배아픔의 감성은 보편적이지만, 경제성장에서 C 역할은 결정적이다. 어쩌면 시장경제 체제에서 C는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볼 수 있다. 부유층이란 중세시대처럼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고, 생산성이 가장 높은 계층을 의미한다. 이 계층에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포함되어 있다. 최고 경영자의 기업가 정신수준에 의해 한 기업의 생존여부가 결정되는 구조가 시장경제 체제이며, 이들이 성공적인 기업이 되면, 그 대가로 높은 소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C 계층의 소득 및 부는 B 계층의 경제적 희생과는 무관하며, 새롭게 창출된 부가가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결과 A 수준도 높아진다. 만약 피케티가 주장한 바대로 C 계층의 부를 억제하는 세금정책을 펴게 되면, 국가의 경제성장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일인당 국민소득을 낮추고, 빈곤층도 더 높아지게 된다. 즉 A가 하락하고, B 계층이 더 늘어나게 된다.

우리는 어느 한 시점을 독립적으로 떼지 않고, 동태적으로 파악할 때 시장경제의 위대한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를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과거와 현재의 분배구조는 차이를 가지는데, 시간이 감에 따라 분포 그림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즉 소득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소득불균등 수준은 더 심각해 진다. 따라서 불균등 관점에서 평가하면, 과거가 현재보다 나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어디에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문제다. 사회의 가치는 불균등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전체의 수준이다. 경제성장을 통해 일인당 국민소득은 A에서 A'로 상승하게 되고, 빈곤층의 절대소득도 B에서 B'로 상승하게 된다.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B'는 더 이상 빈곤층에 속하지 않게 된다. 시장경제의 위대한 동태적 특성은 여기에 있다. C' 계층이 더 잘 살게됨으로써,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의 소득이 높아지게 된다. 물론 상대적인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상대적 차이를 중요시해서 C' 계층의 경제활동을 억제하면, 이 나라의 A', B', C'는 모두 낮아져서, 전체 분포 그래프는 왼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잘 사는 나라는 C를 통해 A와 B를 높이는 것을 정책목표로 한다.

   
 

디턴은 최근 저서, 위대한 탈출에서 시장경제 체제가 지속되면서, 소득수준과 건강실태의 분포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림에서 보면 빈곤층의 분포는 B에서 B'로 변화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주로 소득 수준을 통해 B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으나, 이 책자는 건강수준이라는 실증자료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B 계층의 변화를 좀 더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피케티는 상위계층의 점유비중을 보여줌으로써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즉 최고상위계층인 C'가 전체 소득에서 점유하는 비중이 과거 C에 비해 높아지고, 빈곤층인 B’ 계층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점차로 낮아지는 현상을 B와 비교해서 집어냈다. 그러나 디턴은 시장경제 체제가 지속되는 상황이라면 B와 B’ 계층이 차지하는 상대적 점유비중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음을 설명한다. B 및 B’ 계층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항상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신 빈곤계층이 향유하는 소득수준 및 건강실태의 변화를 통해 시장경제 체제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피케티에 의하면 C 계층의 점유비중은 시간이 감에 따라 커지는데, 이는 동시에 B 계층의 점유비중이 낮아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B 계층의 소득수준과 건강실태에도 상당한 변화를 야기했으므로, 이는 이들 계층에도 커다란 축복이 될 수 있다. 피케티는 C 및 B 계층의 점유율을 좀 더 평등케 하기 위해, C 소득을 세금으로 억제하는 정책을 제안한다. C의 소득이 억압받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A 수준을 낮추고, 이는 전체적으로 소득분포 곡선을 왼쪽으로 이동시킴을 의미한다. 이는 20세기 동안에 사회주의 체제를 실시했던 국가들에서 나타난 현실이었다. 결과적으로 C를 경제적으로 억압하면, 빈곤에 빠지는 B계층이 더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디턴은 시장경제 체제로 인해 인류가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소득측면에서 전 세계에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1981년에 약 15억 명이었는데, 2008년에 인류 인구가 20억 명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8.5억 명으로 감소하였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환산하면, 빈곤인구 비율이 42%에서 14%로 빠르게 하락하였다. 물론 피케티류의 학자들은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빈곤율이란 수치로 빈곤층의 삶이 개선되는 현실을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빈곤문제는 상대적 기준보다 절대적 기준으로 접근해야 이들 계층의 빈곤탈출에 대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보건분야의 발전은 빈곤층뿐만 아니라 인류전체에 지대한 개선을 보여주었다. 지난 세기 동안에 인간의 기대수명은 30년가량 증가하였으며, 10년마다 2-3년씩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앞 그래프에서 A가 A' 수준으로 개선되는 현상이 소득뿐 아니라 보건분야에서도 적용됨을 의미한다. 교육측면에서도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1950년에 세계인구의 절반가량이 문맹이었지만, 지금은 문맹률이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 한국에 주는 의미

디턴 사상의 핵심을 담은 책자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은 영화제목에서 책 이름을 따왔다. 수용소로부터의 탈출에 성공한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남겨졌고, 또한 도중에 죽었다.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인류의 시도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나라도 있고, 아직도 탈출하지 못한 국가들도 많이 있다. 한국은 운좋게도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한 국가며,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탈출에 성공했다.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6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한국은 빈곤을 완전히 벗어났고, 선진국의 문턱에 와있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보릿고개 세대와 배고픔을 전혀 겪어보지 않았던 세대가 공존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빈곤이 어떻게 이 땅에서 그토록 빠르게 사라질 수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한국이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위대한 탈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 체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가 왜 났는가를 생각하면 이는 극명하다. 1960년대까지 북한의 일인당 국내총생산액이 남한보다 높았지만, 1970년대부터 차이가 벌어져, 이젠 비교자체가 의미가 없다. 남한은 빈곤에서 탈출하였지만, 북한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고생하고 있다. 유전자가 같았던 한 민족이 이렇게 경제적 격차를 가지게 된 유일한 원인은 체제에 있다.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빈곤층은 더 증가하였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거의 모든 국민을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하였다. 피케티류의 생각은 부자계층에 대한 배아픔의 정서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가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 우리경제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빈곤층이 다시 늘어나는 결과를 가지게 된다.

   
▲ 토마 피케티 파리정경대학 교수. <21세기 자본>에서 부자들에 대한 세금징수를 통해 세습자본주의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케티의 이론은 부자에 대한 증오와 질투를 부추기고 있으며, 국제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하는 한국경제에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어떤 이념을 가졌는가에 관계없이 한국을 잘사는 국가로 만들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사는 나라를 정의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피케티식으로 잘사는 국가를 만들려고 하면, 과거 인류가 겪었던 빈곤과 죽음을 한국에서 다시 겪게 될 것이다. 잘사는 국가는 모든 국민이 빈곤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국가다. 빈곤에서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빈곤과 성장은 같이 가야하며,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반대로 성장이 빈곤층의 경제적 희생에 의해 생겼다는 ‘제로섬 게임’처럼 생각하는 피케티류의 사고가 우리 사회에 퍼지면, 우리는 다시 빈곤에 빠질 것이다.

디턴은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위대한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민들을 빈곤에서 탈출시키기 위해서 빈곤에 탈출한 사람들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턴은 서구 국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국가 원조는 오히려 이들 빈곤 국가들이 위대한 탈출을 하는 데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한다. 조건 없는 원조는 원조를 주는 국가에 감상적인 자만심을 심어주고, 원조를 받는 빈곤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빈곤에서 탈출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이러한 디턴의 주장은 한국의 통일정책에 커다란 시사성을 준다. 우리는 빈곤으로부터 탈출한 국민으로서 절대빈곤에 처해있는 북한주민에 책임감을 느낄 수 있지만, 북한주민들을 위해 조건 없는 원조를 확대한다고 해서 북한주민들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건 없는 원조확대는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만들려는 자생적인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그 결과 빈곤을 연장시켜줄 따름이다.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1) 본고는 한국경제신문에서 발간한 “위대한 탈출”에 게재한 필자의 안내글을 토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