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근로·파견 지유화·사무직 초과근로급여 면제 우선돼야
지난 9월 22일 현대차 노사의 임단협 합의가 실패하면서 노조가 파업을 단행했다. 23일~25일 3일간 진행된 파업으로 약 2000억 원의 매출 차질이 생긴 현대차 사측은 노조의 교섭재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노조는 추석 이후 파업은 잠정 중단했지만 교섭 재개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측으로써는 노조의 교섭재개를 강제할 권한도 없고 파업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노조법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업 중인 근로자를 외부인력으로 대체하거나 그 업무를 도급 줄 수 없기에 노조 파업기간 동안 사측은 생산 중단이 불가피하다. 근로자가 파업을 통해 자유롭게 사측을 압박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구조이다. 비대칭적 우위에 있는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매년 수천억에서 수조원대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의 노동쟁의 행위에 대한 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합리적 노사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근로자 파업권과 사용자 경영권을 대등히 보장해주는 여러 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노동쟁의 행위와 관련된 선진국의 현황을 살펴보고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법적 과제들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래 글은 14일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노동쟁의 행위의 문제점 진단과 개선방안’ 노동시장 개혁과제 연속 토론회에서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몽펠르랑소사이어티 회원

파업 중 대체근로 인정과 직장점거파업 금지

1. 노동조합의 순기능과 역기능

생산의 2대 요소는 자본과 노동이다. 자본은 금융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조달된다. 금융시장은 개방경제에서는 자본이동과 같은 세계화의 거친 파도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과 통합되지 않을 수 없고 국제 기준에 따라 상대적으로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노동부문은 세계화로부터 격리되어 도처에 지대추구적(rent-seeking) 암초들이 산재해 있고 국제 기준에서 많이 벗어남으로써 공정성(fairness)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이런 상태로 노동부문이 방치되면 아무리 자본이 풍부해도 노동이 보틀넥으로 작용하여 생산이 원활하게 되지 않으며 경제는 성장은커녕 퇴보할 것이다. 노동부문의 공정성을 제고하는 노동개혁은 우리가 지구상에 번듯한 국가(decent nation)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시대적 명령이다.

가장 중요한 공정성 원칙은 일한만큼, 즉 생산성만큼 임금이 지급되는 것이다. 이 생산성을 어떻게 정확하게 측정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근로자는 본인의 생산성을 과다계상하고 고용자는 과소평가하므로 당사자인 근로자와 고용자에게 생산성 평가를 맡길 수 없다. 근로자와 고용자가 자유롭게 구직・구인을 할 수 있으면 시장에서 생산성만큼 임금이 지급되어 공정성이 확보된다. 생산성과 임금이 일치하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달성되므로 공정성은 또한 효율성을 보장한다.

그러나 근로자와 고용자의 자유로운 구직・구인을 방해하는 것이 노동공급을 독점하는 노동조합(monopoly unionism: Lazear 1983)이다. 노동조합의 과도한 임금인상에 대해 고용자는 고용조정으로 대응하고 싶지만 노동조합의 압력과 노동법에 의해 거의 불가능하므로 임금은 어쩔 수 없이 생산성을 초과하게 되어 자원배분의 공정성 및 효율성이 훼손된다. 노동부문의 가장 큰 암초가 과도한 힘을 발휘하는 노동조합이다.

   
▲ 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성과해고 선제 적용, 사무실 강제폐쇄 등 공무원 노조 탄압 대응 투쟁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중남 공무원노조 비대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노동탄압과 노동개혁 중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동조합도 순기능을 한다. 경영자의 비리(malfeasance, misfeasance)를 인지한 근로자나 각종 고충(grievances)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근로자가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통로가 없을 때 노동조합에 호소하여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냄으로써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이러한 기능을 집단적 의사소통 기능(collective voice mechanism: Medoff and Freeman 1984)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뚜렷한 경험적 증거는 없으며, 이런 기능이 있더라도 이 순기능을 뛰어넘는 노동조합의 과도한 힘의 발휘는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준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조합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면서 그 과도한 힘의 발휘를 억제하여 노동조합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2. 파업 중 대체근로 인정과 직장점거파업 금지

우리나라에서 모든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막강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180만명의 노동조합원이 누리고 있는 영향력은 4,250만명 생산가능인구 전체에 걸쳐 매우 크다. 이런 비대칭적 기형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나라의 노동법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용자가 쟁의행위(파업)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고 그 중단된 업무를 도급 또는 하도급 줄 수 없다.

그러나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나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도급을 금지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주요 선진국은 없다. 이상희(2015)에 의하면 미국은 파업 시 일시적으로 외부 인력으로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금인상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파업(economic strike)의 경우 파업참가자가 복귀를 거절하면 영구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파업 시 무기계약근로자를 채용하여 대체하거나 그 업무를 도급 주는 것이 인정되고 있고, 실제로 도급을 통한 대체근로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독일에서도 파업 기간 중 신규채용, (하)도급 등의 방법으로 대체근로가 자유롭게 인정되고 있고, 다만 파견근로자로 대체하는 것은 금지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신규채용, (하)도급, 파견근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체근로가 인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국에서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파업권)과 고용자의 영업권(경영권)을 대등하게 보장해 주기 위해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참가자에 대한 대체근로가 자유롭게 인정되고 있다. 우라나라도 고용관계(employment relations)에 있어서 고용자와 노동조합이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함으로써 임금을 생산성 수준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수도・전기・병원 등 필수공익사업장(50%내 대체가능)뿐만 아니라 모든 사업장에서 쟁의행위기간 중 외부인력을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있고 그 업무를 도급・하도급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고용관계가 시장기제에 의해 견제되고 균형될 것이다. 이를 위해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43조를 개정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조합 제자리 찾기의 첫걸음이다.

김영문(2007)은 노사 간의 무기대등의 원칙에 입각해서, 근로자의 파업권이 보장되면 고용자의 대체인력 투입권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다수의 근로자들이 파업에 참여할 때 사업장내의 인력만을 대체인력으로 사용하는 것은 대체근로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므로 영업의 자유나 직업의 자유 같은 기본권 침해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는 고용자의 기본권과 근로자의 단체행동권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쟁의행위 기간 중에 파견근로자를 대체인력으로 사용하는 것에 소극적이다.

그러나 파업 기간 중에 대체인력을 구하는 것이 실제로 매우 어렵고, 파업에 참가했던 노동조합원이 파업 종료 후 복직할 때 대체인력으로 파견근로자가 고용되었다면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고용이 해지되어 쉽게 노동조합원이 복직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개혁의 원칙인 임금과 생산성의 일치를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대체근로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므로 파견근로자를 대체인력으로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어야 한다.

   
▲ 14일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노동쟁의 행위의 문제점 진단과 개선방안’ 노동시장 개혁과제 연속 토론회에서 사회자인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사진=바른사회시민회의

미국과 일본에서는 파견근로자에 의한 대체근로가 인정되고 있으며, 영국 정부가 최근 발의한 노동개혁안에는 파견근로자에 의한 대체근로와 관련된 제한을 철폐하는 것(removal of current restrictions on using agency workers to cover for strikers: Middleton 2015)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가 가능하려면 파업 등 쟁의행위는 사업장 밖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1997년 노동법 개정 이전에는 쟁의행위를 사업장내에서만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파업을 워크아웃(walk out)이라고 하는데 파업을 하면 사업장 밖으로 나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파업 중인 근로자는 인원수와 장소의 제한을 받으면서 피켓을 들고 사업장 앞에서 시위한다. 파업불참근로자나 대체근로자는 이 피켓선을 가로질러(cross a picket line) 사업장 안으로 들어간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42조에서는 주요 시설에 대한 직장점거파업을 금지하고 있으나 주요시설이 매우 제한적이어서(동법 시행령 21조) 실제로 모든 파업은 직장점거파업이다. 직장 내에서 지속적인 시위・농성・소음 등으로 업무를 방해하지만 경찰력 등 공권력은 고용자가 요청을 해도 개입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용자가 취할 수 있는 대응수단은 직장폐쇄 뿐이다. 직장폐쇄를 해야만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들을 직장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직장점거 파업이 불법이므로 실질적으로 직장폐쇄가 파업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만 고용자가 직장폐쇄를 할 수 있다.

더욱이 직장폐쇄의 적법성은 사법적 판단에 의해서만 확보된다. 동법 46조에 고용자는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개시한 이후에만 직장폐쇄를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노동조합이 직장폐쇄의 적법성을 가려달라고 소송을 하면 판사의 판결에 의해 그 적법성 여부가 결정된다.1) 만약 직장폐쇄가 적법하지 않은 소위 공격적 직장폐쇄로 판결이 나면 고용자는 1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동법 91조). 고용자가 직장폐쇄를 결정할 때는 각 판사의 재량권에 따라 공격적 직장폐쇄가 되어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형을 받게 되면 공무원이나 교원은 해임된다. 그러므로 고용자가 직장폐쇄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며, 특히 공무원이나 교원으로서 기관장인 경우 직장폐쇄를 단행한다는 것은 이후 인생을 건 모험이다. 이런 점에서 고용자는 노동조합보다 매우 불리하며 노동조합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활용하여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다. 쟁의행위가 직장 밖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파업불참근로자나 대체근로자의 일할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재산권과 영업권 보호차원에서도 정부가 강력하게 집행해 나아가야 한다.

3. 노동개혁의 첫 단추는 노사정위원회 폐지

노사정위원회가 1년 동안의 협상을 거쳐 지난 9월 15일 발표한 노사정합의(?)는 최악의 합의이다. 지난 4월 협상을 결렬시키고 나간 노동계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과 국민은 노동계를 성토하고 어떤 언론은 파렴치한 행위라고까지 비난하였다. 과연 이런 성토와 비난이 타당한가? 우리의 노동법은 임금, 고용 모든 면에서 이미 취업한 근로자(인사이더)에게 매우 유리하고 직장을 찾고 있는 미래의 근로자(아웃사이더)에게 매우 불리하다. 기득권자인 노동조합원 입장에서 볼 때 백해무익한 노동개혁에 동의하라는 것은 노동조합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하라는 것이다.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와 타협으로 노동개혁의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자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일지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17년간 노사정위원회 운영의 결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순기능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corporatism)를 배격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corpus)로 보는 것이다.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이 모여 한 유기체를 형성하듯이, 개인이 기능적 동질성에 따라 협동체를 이루고 협동체가 모여 사회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다.

근로자의 협동체인 노조의 대표와 고용자 연합체의 대표 그리고 정부의 대표가 모여 원칙을 무시하고 무엇이든지 합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場(venue)을 제공하는 것이 노사정위원회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의사는 사회의 목적 또는 협동체의 결정에 의해 억압되거나 제한되므로, 사회적 합의주의의 귀결은 전체주의이며 하이예크 말한 개인의 자유가 억압받는 “예종에의 길(road to serfdom)”이다.

이 협상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의 정책적 판단에 노총, 경총 등 사적 이익집단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결정의 주체라는 것이다. 국가의 공적 영역과 사적 자치의 영역이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국가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두 영역이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이상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권혁철 2015). 이것은 마치 축구 경기에서 양 팀의 선수 대표와 심판이 어우러져서 판정을 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그 대표도 진정한 의미의 대표가 아니다. 누가 이런 경기에 돈을 내고 관전하겠는가?

우리 국민은 노사정위원회에 연 42억원의 예산, 청사, 파견인력 등의 기회비용을 지불하면서 허망한 결과를 보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기를 또 관전하도록 한국노총 등을 독려하여 노사정위원회를 재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에 개혁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진배없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조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면서 그 과도한 힘의 발휘를 억제하여 노조가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조가 개혁의 대상인데,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개혁의 주체가 되는 주객전도의(preposterous)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 근원적인 문제는 지금의 ‘노조천국 경영지옥’을 만들어내는 노동법에 있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법제도가 허락한다면 누구나 강성노조로 치달을 수 있다. 노동개혁이 미진해 현 노동법이 대동소이하다면 지금의 귀족노조, 강성노조는 여전할 것이다. 사진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제 59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한 노조원이 노사정 합의문에 반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을 시도하자, 이를 제지하기 위해 소화기가 뿌려져 회의가 파행을 빚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9월 15일의 노사정합의는 가장 우려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의 독자적인 노동개혁을 봉쇄한 노조의 완벽한 승리이다. 노조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면서 합의문 곳곳에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라는 문구가 있다. 앞으로 노총은 실태조사 등 충분한 협의를 이유로 각종 회피 및 독소조항을 만들거나 지연시켜 노동개혁을 형해화(形骸化)하려고 할 것이다.

여당은 노사정위원회 합의를 기다리면서 직무유기를 위장할(camouflage) 것이다. 벌써 여당 의원은 “노사정 간에 충분한 논의를 하고 실태조사를 해서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국회에 넘어왔을 때 분란이 없을 것”(뉴시스 2015. 9. 14)이라고 노사정위원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 합의 때문에 기간제법 및 파견법 개정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지난 1년 동안 협의하고 또 한다고 하니 Enough is enough 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정규재칼럼(한국경제신문 2015. 9. 15)은 “협의하기로 합의했다는 합의문”이라고 비꼬았다. 이와 같이 노사정위원회는 태생적으로 합의를 명분으로 노동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개혁의 첫 단추는 노사정위원회의 형해화 내지 폐지이다.

노사정위원회의 대화와 타협과 같은 도덕적 설득(moral suasion)으로는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명확하게 판명된 지금 우리는 어떤 원칙에 따라 사회를 운영할 것인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시장에 의해 견제되고 조화를 이루는 시장경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노사갈등 사업장에 대한 입장”(2015. 9. 11)이라는 자료에서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금호타이어, 한국델파이 등 임금 및 근로조건이 우수한 대기업의 노사갈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노사가 다투기보다 서로 힘을 합쳐 경쟁력 제고를 하라고 도덕적 설득을 하였다. 적법한 노사분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도덕적 설득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런 우려스러운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노동개혁 과제 중 하나인 대체근로가 인정되었다면 최고의 직장인 현대자동차에서 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될 수 있었을까? 아마 파업을 들먹이는 노조집행부를 몰아내고 회사 경쟁력 제고에 힘쓰는 집행부를 선임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운영 원리와 정부의 역할은 자명해진다. 정부는 공정성 원칙이 잘 작동하도록 대체근로와 같은 법・제도를 정비하고 민간은 사적 자치에 따라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다.

이번 노사정 합의에는 근로소득 상위 10% 안의 임직원은 임금인상분을 반납하여 그것을 재원으로 청년 채용을 확대하고 비정규직・협력기업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합의주의의 전형이다. 제3자인 노사정이 근로자 임금의 일부를 빼앗고 그 사용처까지 명령하고 있다. 이와 같이 노사정위원회는 법과 원칙 없이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결정하는 것으로 반자유주의적이고 반시장적이다.

더욱이 이 조항을 경총이 제안했다는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도대체 경총은 어떤 이념을 가진 집단인가? 노사정합의와 관련해서 고용부장관과 노사정위원장에게는 원칙고수보다도 합의 자체가 더 중요하지만, 경총회장이야말로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경총회장이 최악의 합의문에 동의했다는 것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합의문에 서명한 날(9월 15일) “노사정합의에 대한 경제계 입장”에서 경총회장을 포함한 경제 5단체장은 입법청원 계획을 밝히면서 “이번 합의 과정에 성실히 동참한 것은 노사정이 합의를 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부정이며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경총을 비롯한 경제단체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점검해 봐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각계각층의 고통분담 차원에서 청년일자리(청년희망) 펀드를 조성할 것을 지시했다는 대목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이렇게 후진적인가하는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한국이 아프리카 어디에 있는 부족국가인가.

   
▲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대기업 강성 노조 사업장에서 임금 등 과도한 근로조건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그 이면에는 기존 노동제도의 한계가 존재한다./사진=미디어펜

박근혜 정부가 진정으로 노동개혁을 원한다면 전문가에게 개혁안의 성안을 일임하고 성안이 되면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노사정의 타협을 기다리다가는 엉뚱한 괴물이 나오거나 결렬되면서 개혁저항세력의 내성만 키우는 꼴이 될 것이다. 독일의 하르츠개혁은 2002년 2월 22일 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위원회는 독일 경총, 전경련, 노총, 야당, 여당인 사민당의 전통세력, 노동부를 모두 배제하고 15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Gaskarth 2014, p. 13). 불과 10개월만에 개혁안의 확정 및 입법화가 진행되어 2003년 1월 1일 첫 번째와 두 번째 하르츠개혁이 시행되었다.

네 번째 하르츠개혁은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는데 그해 가을 하르츠개혁을 주도한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은 선거에서 져 정권을 내주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노동개혁을 노사정의 타협에 미루는 것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 일종의 직무유기이다. 최근 영국의 노동개혁도 노사정 타협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와 집권당인 보수당(Conservative party)이 이끌고 있으며, 특히 경제, 혁신, 노동(business, innovation, and skills)을 통합하여 책임지고 있는 경제부 장관(business secretary: Sajid Javid)이 주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법・제도라는 유인체계(incentive schemes)를 통해 가장 효율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는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또다시 노사정위원회라는 원칙과 현실에 안 맞는 기구를 통해 노동관련 유인체계를 짜려고 하고 있다. 개혁이 아닌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계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노사정위원회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전면적인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은 지나갔다. 정부와 여당은 파급효과가 가장 크고 상대적으로 쉽게 개정할 수 있는 세 가지 개정(three point amendment) - 파업 중 대체근로 인정, 제조업무 등 파견 자유화, 사무직 초과근로급여 면제 - 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지금까지와 같이 노사정 합의에 의한 노동개혁을 시도할 바에는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이 더 낫다. 노동개혁은 영국의 대처개혁이나 독일의 하르츠개혁처럼 국가적 위기에나 가능하다. 또는 지금 영국의 캐머론 총리와 같이 뛰어난 정치가나 국민을 설득하여 위기 전에 선제적으로 노동개혁을 할 수 있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몽펠르랑소사이어티 회원

1)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기조는 판사의 재량권을 크게 인정하는 사법적 적극주의(judicial activism)이므로 기업이 결정을 할 때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법적 보수주의(judicial conservatism, judicial restraint)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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