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택율 가장 높은 미래엔 교과서, 8쪽에서 29개 오류 보여
자유경제원은 14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국사교과서 실패 - 역사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어 있나’를 주제로 2차 연속세미나를 개최했다. 검인정 체제를 택한 역사교과서는 현재 8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7종의 교과서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한민국에 우호적이지 못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다양성은 커녕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부정적으로 평가고, 북한에 대해서는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미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유경제원은 “이런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편협한 역사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역사교과서가 어떻게 편향되어 있는지 그 실태를 낱낱이 밝히고, 대책을 논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발제자로 참석한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현행 검정 국사교과서가 지니고 있는 29가지 오류에 대해 낱낱이 밝혔다. 아래 글은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현행 역사 교과서의 오류 실태

분석대상 : 채택율이 가장 높은 미래엔과 비상교육의 ≪한국사≫ 중, 해방공간 및 건국직후 3년의 역사 서술. 미래엔의 ≪한국사≫ 308~315쪽에 내포된 오류

1. 서술상의 오류

(2)절, 광복과 미·소군정의 서술에 내포된 오류 308~309쪽

오류 1: 광복 당일, 여운형은 조선 총독을 만나 행정권을 만나 행정권 이양을 논의하여 정치활동의 불간섭 등을 약속받고(여운형이 능동적으로 총독부와 담판한 듯 서술)
진상: 여운형은 해방 며칠 전부터 총독부로부터 치안권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그에 의하여 해방 당일 조조에 아베 정무총감을 만났으며, ‘약속을 받아낸’ 것이 아니라 양자가 사전에 조율된 내용을 재확인했다.

오류 2: 안재홍 등과 함께 좌·우익을 통합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진상: 안재홍은 우익의 대표적 인물이 아니라 중도파의 대표적 인물이고, 건준은 좌·우익을 통합한 조직이 아니라, 좌·중세력의 통합조직이었다. 우익은 건준 참여를 거부했다. 단 지방에서는 안재홍이 해방 다음날 발표한 건준 조직 방송연설을 듣고 건준의 정체를 잘 못 파악하여 우익인사들이 참여했으나, 지방조직에 착각하여 참여한 것은 참여라 할 수 없다.

오류 3: 건준은 전국에 지부를 설치하고.
진상: 건준이 전국에 지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건준은 중앙 지도부만 조직하고, 지방 조직은 건준 출범 방송을 듣고 지방의 유지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했다. 건준 지방 조직은 중앙 지도부의 지휘에 따라 조직된 것이 아니다.

오류 4: 좌익이 건준의 주도권을 장악하자 안쟁홍 등의 우익은 건준을 탈퇴하였다.
진상: 건준은 처음부터 좌익의 주도 하에 조직되었고, 안재홍은 우익의 인물이 아니다.

오류 5: 좌익세력은 미군의 진주를 대비하여 건준을 해체하면서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전국 각 지방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진상: 건준에서는 인공 선포문제가 논의된 바도 없으며, 건준의 해체는 인공 선포 후에 취해졌다. 인공이 전국 각 지방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건준 지부들이 좌익의 요구에 따라 인민위로 전환했다.

   
▲ 지난 12일 교육부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하였지만 대한민국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오류 6: 인공의 주석에는 이승만, 부주석에는 여운형이 선임되었으나, 이승만은 취임을 거부하였다.
진상: 좌익세력은 이승만 등 우익진영 인사들의 명단을 인공 간부진에 일방적으로 도용했으며, 당시 미국에 있던 이승만은 취임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주석 취임을 무시하고 있다고 후일 귀국 후 좌익이 자신의 좌우중도 통합노선을 방해하자 인공주석 취임을 거부했다.

오류 7: 건준의 활동에 비판적이었던 반민족 친일 경력자들과 보수적인 민족주의계열의 인사들은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고,
진상: 한민당 창당은 반민족 친일경력자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며, 반민족 친일경력이 강한 자들은 창당에서 배제되었다. 한민당에는 ‘진보적인’ 민족주의계열 인사들도 참여했다.

오류 8: 소군정은 인민 위원회의 자치를 인정하는 간접 통치 방식을 취하였다.
진상: 소련군은 북한주민으로 하여금 각급 행정단위 별로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도록 하고, 각 지역별로 군경무사령부를 설치하여 군경무사령부가 인민위원회를 밀착 통제하는 방식을 취했다. 인민위원회의 자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류 9: 조선공산당 등의 좌익세력은 처음에는 신탁통치 반대 입장을 취하다가 신탁통치를 빠른 독립을 위한 지원으로 받아들여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 회의 결정을 지지하게 되었다.

진상: 좌익세력은 소련의 지시를 받고 반탁에서 모스크바협정 지지로 입장을 돌변했으며, 신탁통치를 빠른 독립을 위한 지원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기들은 ‘신탁통치를 지지하지 않고 모스크바협정을 지지한다’는 모스크바 협정은 ‘신탁통치를 규정하고 있지 않고 후견제를 규정하고 있다’는 등으로 변명했다.

오류 10: 회의에서 미국은 최고 10년 신탁통치를 제안했고, 소련은 임시정부 수립과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한국의 정당 및 사회단체의 참여를 제안하였다.(소련은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한국민의 참여만 주장한 것처럼 서술)
진상: 소련은 신탁통치 5년을 제안했다.

(3)절, 통일 정부 수립 운동 310~311쪽

오류 11: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파는 미군정의지지 아래 좌우 합작 위원회를 조직하여 통일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진상: 여운형은 앞 절 건준 관계에서 교과서 집필자들이 인정한 바와 같이 중도파가 아닌 좌익진영의 인사이며, 김규식도 좌우합작운동이 있기 전에는 우익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좌우합작운동은 여운형과 김규식이 능동적으로 조직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한정책을 지지할 제3세력을 양성하려는 미군정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또한 통일 정부 수립도 목적으로 삼지 않은 남한 내부의 좌우합작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오류 12: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 등 우익은 좌익과 협조 자체를 거부하였다.
진상: 이승만은 김규식에게 좌우합작운동에 나서도록 권유했을 정도로 좌우합작 정신 그 자체는 지지했다. 다만 좌우합작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거세하려는 흐름으로 전개되자 그에 반대했다.

오류 13: 김구와 김규식은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추진하였다.
진상: 남북한의 공산주의세력과 그에 의해 조종되는 좌경중간파 군소정당들이 소련의 외군조기철수 한국인에 의한 한반도 문제 해결 제안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안한 남북협상에 김구와 김규식이 뒤늦게 참여했다. 김구는 47년 12월 초까지는 남북협상에 반대하고 이승만의 정부수립노선을 지지했다.

오류 13: 제주 4.3폭동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폭등’을 빼고, ‘4.3사건’으로 표기했고, 그 원인이 47년 3.1절 행진시의 경찰 발포인 것처럼 오도하고, 48년 4월 3일의 폭동을 가치 중립적 내지 긍정적 함의를 가진 ‘무장봉기’나 ‘저항’으로 표기했다.※이 오류는 교과서 집필자들만의 오류가 아니라 노무현정부의 역사왜곡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진상: 제주 4.3폭동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위한 남한 총선실시를 저지하기 위해 전개한 남로당의 ‘구국투쟁’의 제주지역 투쟁이다.

   
▲ 한국사 교과서 검정에 관계하는 교육과정 개발 요원, 검정 요원들은 거의 모두 민중사관에 동조하거나 방관적인 인사들로 구성된다. 이에 관계하는 국사편찬위원회 자체가 민중사관 기관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이다./사진=미래엔 교과서 현대사 첫페이지

오류 14: 여수·순천 (14연대)반란사건을 ‘여수·순천 10.19 사건’으로 표기하고, 14연대의 반란을 ‘무장봉기’로 표기했다.
진상: 여수 주둔 14연대의 반란이었고, 반란군은 경찰과 우익진영 민간인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오류 15: 정부군이 14연대반란을 진압함에 있어서 미국의 지원을 많이 받은 것처럼 서술했다.
진상: 극소수의 미군사고문이 현지 작전을 참관했고, 미군의 화력지원은 없었다.

오류 16: 제주 4.3폭동과 여순 14연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도 일어났다고 기술하여 폭도와 반란군은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는데, 국가 공권력만 학살을 자행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진상: 먼저 학살을 자행한 것은 폭도와 반란군이었다. 제주 폭동과 14연대 반란에서 폭도들과 반란군은 경찰과 우익민간인들을 대규모로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4)절,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활동 313~315쪽

오류 17: 5.10선거에 김구와 김규식 등 남북협상파와 좌익세력이 불참한 사실만 기술하고, 참여한 세력, 유권자 등록률과 투표율, 입후보자의 평균경쟁률 등은 기술하지 않았다.
진상: 5.10선거에는 다양하고 많은 정당 단체들이 참여했고 유권자들의 등록률과 투표율도 높았으며, 선거관리도 공명했다.

오류 18: 헌법에는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한다’라고 명시하여 라고 특기하여 마치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이 대한민국의 건국이고 48년 8월 15일의 행사는 ‘재건’이라는 점을 암시하려 했다.
진상: 건국 헌법 전문의 인용된 내용은 이론적으로도 타당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은 잘못된 내용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가일 수가 없으며, 임시정부는 멸망한 적이 없으므로 ‘재건’은 있을 수 없다.

오류 19: 유엔총회는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 내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승인하였다.
진상: 유엔 결의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이 말은 한반도에 복수의 정부가 있더라도 합법적 정부는 대한민국뿐이라는 뜻이다.

오류 20: ‘좌절된 반민족 행위자 처벌’이라고 표기하여 친일파 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고, ‘공산당과 내통했다는 구실로 반민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구속하였다.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기술하여 행정부가 반민특위를 탄압하기 위하여 반민특위 국회의원들을 구속하고 경찰이 반민특위 전체를 공격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진상: 반민족 행위자 처벌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지 못했던 것이 진상이다. 친일파로 처벌된 인사들은 적지 않다. 반민특위 소속 국회의원 중 국회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은 극소수이며, 경찰은 친일파로 규정되어 구속된 경찰 간부를 구출하기 위해 반민특위 특경대를 점령한 사건이 딱 한 번 있었다.

오류 21: 남한의 농지개혁을 기술함에 있어서 그 긍정적 측면은 극히 소략하게 기술하고 부정적 측면은 많이 상세히 기술했다. 농민에게 유상분배한 것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부각시키고, 다음 쪽의 북한 토지개혁의 무상분배와 대조했다.
진상: 농지개혁은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는 매우 과감한 것이었고 그로 인한 빈농들의 수혜는 매우 컸다.

오류 22: 김일성이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부터 실질적인 북한 정권 수립 작업이 진행되었다. 임시인민위원회는 친일 민족 반역자 [숙청] 및 지주의 5정보 초과 토지를 무상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분배하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북한에서는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최고 인민 회의는 헌법을 제정하고 김일성을 초대 수상으로 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것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한 것으로 표기한 것에 유의할 것. 대한민국과 관련해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표기하고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표기하지 않음.
진상: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북한 지역의 단독 정권이다. 출범 당시 북한에서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정부라고 선전했다. 다만 임시정부였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정부가 아니라면, 무슨 권한으로 친일파 숙청과 토지개혁을 실시할 수 있겠는가? 북한에서는 1946년 11월각급 인민위원 선거를 실하고, 1947년 2월 각급 인민위원들이 평양에 모여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하고, 인민회의에서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로써 북한 지역에는 임시 정부는 정식 정부로 전환되었다. 북조선 인민회의는 47년 12월부터 헌법 초안을 작성하여 48년 4월 말에 헌법을 정식으로 채택했다. 단독정부를 먼저 만든 것은 북한이다. 48년 9월 9일에 만들어진 것은 북한 공산당의 논리로는 북한의 정부가 아니라 남북한 전체의 정부이다.

   
▲ 민중사관이 표면화된 지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민중사관 세력은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의 학과뿐 아니라, 연구소, 박물관을 좌지우지한다. 나아가서 역사관계 연구비의 대부분도 연구재단이나 한국학진흥사업단을 통해 이들에게 간다. EBS방송 역시 이들 차지이다. 특히 교과서 제작에 책임이 가장 많은 국편은 민중사관 기관이라고 불릴 정도다./사진=연합뉴스


2. 서술 구성상의 오류

(2)~(4)절이 커버하는 기간인 45년 8월부터 50년 5월까지 기간 중 한반도에서 발생한 사건들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도 높은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서술은 하지 않거나 소략하게 서술하거나, 부정적인 맥락에서만 서술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부정적인 사건들만 긍정적으로 상세히 서술했다. 그 사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오류 1: 48년 8월부터 12월까지의 기간을 서술함에 있어서 여운형과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인공에 대해서 상세히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이승만의 귀국과, 이승만이 귀국 후 결성한 진정한 좌우중도 총집결체인 독립촉성중앙협의회 활동, 좌익의 방해로 인한 독촉중협활동의 약화된 사실은 기술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을 교육하기 위한 교과서가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과 그가 주도한 대한민국 건국운동의 출발 조직에 대해 외면하고,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세력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상세하게 서술한 것은 오류다.

오류 2: 모스크바3상회의에서의 미국과 소련의 입장을 소련에 호감이 가도록 구성하고 대한민국 건국 주도세력이 전개한 반탁운동의 명분을 정확히 서술하지 않고 대한민국 건국 방해세력의 모스크바협정지지 관련 서술만 긍정적으로 자세히 서술하도록 구도를 짠 것은 오류이다.

오류 3: 대한민국 정부 수립운동을 설명하지 않고 통일정부 수립운동만 3쪽에 걸쳐 상세히 서술하면서, 통일정부 수립운동에 제주 4.3폭동과 여순14연대 반란사건을 포함시킨 것, 그리고 해당 기간에 있었던 이승만의 활동은 정읍발언과 좌우합작에 대한 반대로만 국한한 것,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에 대해 그 진상을 기술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만을 유도하도록 서술 구도가 짜여진 것은 오류다.

오류 4: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세력이 왜 남한에서만이라도 총선을 거쳐 대한민국을 건국하려 했는지, 그들이 추구하는 건국의 이념은 무엇이며, 그들이 건국을 위해 취한 전술은 무엇이었던가, 그들에 대한 민중에 대한 지지도는 어떻했던가, 그들의 건국운동을 방해한 세력은 누구였으며, 왜, 어떻게 방해했던가, 대한민국 건국주도세력은 그러한 방해를 어떻게 극복했던가 등에 대한 서술을 일체 외면하고, ‘통일정부수립운동’ 다음절에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활동’을 배치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통일정부 수립운동에 반하는 분단추구적 행동이었던 것처럼 느끼도록 하고,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5.10선거 실시와 헌법제정, 유엔의 승인만으로 간단히 서술한 것은 오류이다.

오류 5: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48년 8월 15일에 수립되었다고 기술하면서, 그 정부의 모체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언제 건립되었는지를 인지할 수 없게 서술한 것은 오류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교육하는 교과서가 자기 나라가 언제 건국되었는지 알 수 없게 서술되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오류는 교과서 집필자들만의 오류가 아니라 한국사 교과서에 ‘건국’이란 용어를 표기하지 못하도록 한 교과부 편수지침을 작성한 자들의 오류이기도 하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들은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에 대해서는 다 건국되었다고 표기하고, 북한의 인공에 대해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표기하면서 유독 대한민국에 대해서만은 건국, 건립, 수립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또는 대한민국 성립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오류 6: 대한민국 건국이후 50년 5월까지 발생한 국가적으로 중요한 많은 사건들 가운데 반민족행위자 처벌과 농지개혁만을 기술한 것은 오류이다. 건국 후 좌익세력과 기타 대한민국 건국 반대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존립을 흔들기 위해 어떤 활동을 전개했으며, 대한민국은 존립 유지를 위해 어떻게 대처했던가? 북한의 남침준비에 대한 남한의 대비태세의 어떠했던가 등은 기술한 사항들보다 더 중요하며, 기술한 반민족행위자 처벌과 농지개혁도 그런 큰 틀 속에서 기술되어야 올바른 기술이 될 것이다.

오류 7: 4절의 말미에 5분의 3페이지를 할해하여 ‘가상 포스터로 보는 광복 직후 남한 주요 정치세력의 성향’은 한민당의 김성수와 독촉의 이승만만 분단지향적이고 신탁통지를 반대하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갖도록 하고, 김구에 대해서는 신탁통치 반대 주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하고, 박헌영에 대해서는 공산정권 수립 목적은 말하지 않고 단정음모 분쇄하자는 주장만 소개하고, 김규식과 여운형도 좋은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갖도록 선전 문안이 작성되었다. 이러한 서술구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3. 결어

채택률이 최고인 한국사 교과서가 불과 8쪽의 분량에 서술상의 오류 22개, 서술 구성상의 오류 7개, 도합 29개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