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저지에 사활을 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입’이 주목받고 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겨냥해 “선대가 친일, 독재에 책임 있는 분들”이라는 말까지 쏟아내면서 제1 야당 대표로서 자격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표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을 만나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친을 거론했다. “5.16 쿠데타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을 명예회복시키기 위해 국정화가 강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문 대표의 행태를 보면서 공감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야당의 ‘정치력 복원’이 점점 요원해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의 특성이 아무리 권력 추구라고는 하지만 문 대표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는 국가를 위한 것도, 당을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자신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과욕으로밖에 설명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제1야당으로서 역할도 하지 못한 채 당내 계파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국정화가 이 시기에 경제와 민생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 난리인지...”라며 “박 대통령과 김 대표 두 사람의 역사관이 아베 신조 총리를 포함한 일본 극우의 역사관과 똑같다”고 비판했다.

   
▲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역에서 연 '친일독재 미화 국정교과서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에서 한 보수단체 회원이 서명운동 중인 문재인 대표 등 지도부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교과서에서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배우기보다 대한민국 발전사에서 공과를 균형있게 알려야 한다는 여론은 바로 우리 국민 절반에서 나왔다. 국내 우파의 이런 주장을 문 대표는 과거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와 동일시했고, 이 때문에 자격 상실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문 대표가 지금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 국민의 절반은 훌륭한 우리 역사도 알고 싶고, 자랑스럽게 내세워, 후세대에게 가르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과거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 때 대한민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국됐다. 1950~1960년 마차를 굴리던 농업경제를 놀라울 정도로 발전시켜 민주주의가 가능한 중산층을 만들어낸 것도 우리 역사이다. 이런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적도 평가하자는 것이 우파 국민들의 주장이다.

그런데도 문 대표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국정교과서에 대해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공(功)을 인정받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과(過)까지도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려 한다”면서 “국제적으로 국가 이미지가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다. 다른 나라가 비웃을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9일 지적했듯이 “야당 대표가 국민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는 형국이다. 지금 문 대표는 당내 고질적인 문제인 반호남주의적 지역주의, 패권적 계파정치, 야권연대로 인한 이념적 편협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문 대표가 국정교과서 문제로 대통령과 야당 대표를 헐뜯을 그 시점에도 야당 내부에서는 그가 내세운 혁신위원회와 비주류 간의 설전이 오고갔다. 19일 해단을 선언한 혁신위가 당내 의원 79명이 당론으로 요구하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주장을 비판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 활동은 끝났지만 앞으로 공천을 주도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에 조은 동국대 교수가 임명되면서 야당 내 공천갈등은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비해 비주류들은 연쇄 교차 회동을 가지면서 혁신안을 무력화시킬 태세이다.

한마디로 집안 단속도 안되는 문재인 대표는 국정교과서 저지를 위해 19일 오후 심상정 정의당 대표, 천정배 무소속 의원과 ‘3자 연석회의’를 갖는다. 벌써부터 이 자리가 20대 총선을 위한 야권연대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 내 계파갈등 요인 중에는 문 대표의 ‘이유 없는 온정주의’가 포함된다.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대표를 감쌀 때에나 대선 개표조작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강동원 의원에 대해서도 “사법부의 판결이 끝나지 않았다”며 힘을 보탰다.

당내에서 “낡은 진보 청산”이라는 뼈아픈 지적을 받고도 외면하고 있는 문 대표가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선친까지 거론하면서 ‘교과서 연좌제’ 지적을 자초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역사교과서 문제를 선거용 프레임전쟁으로 규정해 폄하시키고 있지만 국정교과서 채택은 국가 정체성 회복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와 여당 측에서 나오는 발언 가운데 역사교육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8일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에 대해 “국정을 영원히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날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바람직한 것은 자유발행제”라며 “하지만 교과서 자유발행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나 헌법가치 등에서 화해가 이뤄진 경우에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부총리는 “국정교과서가 친일이나 독재를 미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런 교과서가 나오면 학교 선생님들이 가르치겠느냐”라고도 말했다.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19일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분들이 역사 교육의 다양성을 죽이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이것은 아주 잘못된 시각”이라며 “초중고교에서는 좋은 역사교육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학문의 다양성은 대학에서 실현해도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