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타도대상? '재미있는 정의’ 팔아 돈 벌겠다는 타락한 극작술
자유경제원은 ‘자유북소리’ 코너를 통해 편향과 거짓으로 점철된 언론과 교육, 왜곡된 신념을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주입하려는 도서와 예술을 고발한다. 편향된 시각과 서술은 기본이고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우리나라 언론계 교육계에 자성을 촉구하고, 편향된 내용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예술, 도서계의 반성을 꾀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자유경제원은 ‘자유북소리’ 코너를 시작했다.

자유북소리 코너의 문제의식은 공익을 내세운 공영방송까지 오염된 대한민국 언론계, 그릇된 방향으로 학생들을 호도하는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 교육현장, 386세대의 단골 레퍼토리를 답습하는 문화예술계에 있다. 향후 자유경제원은 자유북소리 코너를 통해 정기적으로 전문가와 일반시민들의 의견 및 제보 모두를 받아 대한민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한다. 아래 글은 자유북소리의 ‘예술고발’ 게시판에서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작성한 ‘베테랑, ‘사회적 포르노’에 열광하는 사회’ 칼럼이다. [편집자주]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베테랑, ‘사회적 포르노’에 열광하는 사회

영화 <베테랑>은 재미있다. 한국 액션영화는 감독 류승완을 전후로 해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베테랑은 헐리웃 액션 스타일과 한국 영화 특유의 하위코드가 빚어 내는 비하적 코믹요소가 잘 버무려진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일반 관객들의 평은 '시원하다’로 집약된다. 뭐가 시원할까? 그 시원함의 본질은 한마디로 '배설쾌감’이다. 돈 많고 파렴치한 재벌 후세를 '정의로운(?) 민중의 지팡이, 그것도 서민 형사가 때려 잡는다는 설정에서 오는 대리만족이다.

이 구도는 욕망의 대리만족, 포르노그라피와 본질적으로 같다.관객에게 쾌감을 주고 욕망을 풀어내는 영화는 그 주제가 무엇이든 본질적으로 포르노다. 그리고 오락이다.

헐리웃 영화 <슈퍼맨>인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을 응징하는 대리만족의 영웅을 제시한다면, 영화 <베테랑>은 재벌3세를 때려 잡아 줌으로써 ’재벌 때문에 못살겠다'는 한국인들에게 통쾌함을 준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그런 대리만족을 주기 위해 <베테랑>이 재벌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설정은 사실 전략적인 면이 다분하다. 류승완 감독은 한 언론사와 이렇게 인터뷰했다.

   
▲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전형성을 드러내는 것은 교훈을 만들려는 것이지, 인간을 조롱하고 능멸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렇기에 <베테랑>은 재미있지만, '나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 그런 영화에 1천만 관객이 들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 포르노는 잘 만들어 봐야 포르노인 셈이다./사진=영화 베테랑 포스터 캡처

“베테랑에서는 재벌을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엔 경제적인 부분에서 악역을 설정했는데 '베테랑2’에서도 그만한 척결 대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대상을 어떤 것으로 설정할지 고민하고 있다”

류감독은 '재미있는 정의’를 팔아 돈을 벌겠다는 사회적 포르노 구상에 몰두해 있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자, 좌편향된 언론들은 영화 속의 재벌 3세가 현실의 누구 누구를 조합한 것인지 분석에 나서기도 했다. EBS에 출연한 한 문화평론가는 영화평이 아니라 ’한국재벌 평'을 하는 엽기적(?) 모습마저 보여줬다.

계층의 인물 전형화는 타락한 극작술

한국 재벌가들이 모두 도덕적 인간들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는 방탕하고 타락한 이들도 있지만, 또 착실하게 가족 기업 승계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는 사람을 다루고, 사람의 이야기에서 메시지를 만들기에 어떤 계층을 '인간의 전형성’으로 내세우면 통속화되고 정치적으로 파쇼화된다.

그렇기에 영화가 배설적 쾌감과 오락의 도구로 인간, 그것도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하나의 고착화된 퍼스낼리티로 전형화시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영화를 잘 만든 이들이 바로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영화들이었다. 그들은 자본가와 유태인들에 대한 '전형성’을 만드는데 이골이 나 있었다. 그렇기에 사회주의나 파시즘의 영화들도 본질적으로는 포르노다.

그런 의도라면 차라리 영화 전체를 하나의 판타지로 설계하는 것이 도덕적이다. '판타지는 현실에 대한 복수’라는 점에서 그렇다. 전형성에 현실을 대입하는 것은 저급할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다. 영화에 무슨 도덕 타령이냐고? 모든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모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덕적 메시지를 발하기 마련이다. 도덕적 메시지를 발산하려면 도덕적 준칙이 있어야 한다. 영화 <베테랑>도 일종의 모랄을 내세우는 영화가 아닌가. 그렇기에 극작술에 인간의 도덕적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 영화 베테랑의 구도는 욕망의 대리만족, 포르노그라피와 본질적으로 같다. 관객에게 쾌감을 주고 욕망을 풀어내는 영화는 그 주제가 무엇이든 본질적으로 포르노다. 그리고 오락이다./사진=영화 베테랑 홍보영상 스틸컷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전형성을 드러내는 것은 교훈을 만들려는 것이지, 인간을 조롱하고 능멸하기 위함이 아니다. 세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악의 화신’으로 전형화시켰지만, 결말에는 샤일록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결말을 집어 넣었다. 그것이 극작술에서 미(美)가 선(善)으로 귀결되는 원칙이다.

'영화는 재미있으면 다’라는 식의 무도덕(amoral)적 관점이 한 때 조폭을 미화하는 '사회적 포르노’ 영화들을 양산했다. 그런 영화에서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 배제된다.

그렇기에 <베테랑>은 재미있지만, '나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 그런 영화에 1천만 관객이 들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 포르노는 잘 만들어 봐야 포르노인 셈이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