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개인의 주관·개성 불허…시대상과 변화 입체적으로 드러나

   
▲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천리마 운동’은 1957년부터 추진된 북한 대중 증산운동의 이름이다. 그 해는 북한의 5개년 계획(1957~1961)이 시작되던 해이기도 했다. 당시 북한은 소련의 원조가 끊기면서 어쩔 수 없이 전후 원조경제에서 자력갱생경제로 경제운용 방식을 서둘러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천리마 운동’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 자발적인 최적의 대중 동원 수단은 아니라는 혐의가 짙다.

1957년부터 시작된 5개년 계획의 핵심 기조는 ‘절약과 증산’이었고 노동 생산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하라는 지침이 세워졌다. 바로 노동력(L/N)의 한계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채택된 것이 ‘천리마 운동’인 것이다. 그 추진 동력은 인민에게 ‘사상성’을 강화하는 것에서 찾았으니 북한의 온갖 정치구호가 그리고 자극적인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반면 한국의 새마을 운동은 인센티브 방식의 집단적 농촌 개선 운동이라는 점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아무튼 ‘천리마’가 상징하듯 이 운동이 보여주고자 했던 이미지는 ‘속도와 혁신’이다. 북한은 초기에 이런 대중 동원의 명칭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정작 ‘천리마’란 이름이 공식 등장한 것은 1958년 6월 13일 자 노동신문 1면(‘위대한 강령-제1차 5개년 계획의 성과적 수행을 위하여: 천리마로 달리자!’)이었다.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가 몰락한 것은 단지 계획경제의 내구적 한계의 실패가 아니라 R&D라는 슘페터식 혁신과정이 부재하고 실물경제의 바탕을 시장 매커니즘에 두지 않은 채, 오로지 노동력 중심의 생산력 증대운동에 매몰된 피치 못한 결과이다(김 2007). 천리마 운동은 바로 북한의 대중동원과 경제개발 전략의 체제 상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기에 천리마 운동이 어떻게 인민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갔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다. 이해를 텍스트로 하는 것과 시각적 자료를 바탕으로 갖게 된 이해의 차이는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이다. 예컨대, 그렇다면 텍스트로 주입된 천리마 운동을 북한의 화가들은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해 냈을까? 사회주의 국가에서 모든 예술가는 국가로부터의 임무작업을 부여 받는다. 천리마 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시각화 작업은 북한 미술가들에게는 중대한 과제였음이 틀림없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포스터(북한이름은 ‘선전화’)이다. 아래 이미지는 곽흥모가 그린 것으로 널리 알려진 천리마 운동의 대표적인 포스터이다.제작시기가 1958년으로 기재된 자료도 있고 1959년으로 나타난 것도 있다. 추정컨대 1958년이 아닐까 싶다. 앞서 설명한 대로 노동신문에 천리마 운동이 처음 나타난 것이 1958년 6월이니 그 해를 넘기지 않았을 것이란 짐작하기 쉽다.

이렇듯 북한 포스터를 넓고 깊이 들여다 보면 당시의 시대상과 변화가 입체적으로 포착된다. 텍스트로 받아들인 북한의 사회상과 변화의 기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체제의 정서랄까 느낌이 좀 더 풍부하게 전달된다고나 할까? 그만큼 북한을 다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원천소스인 것이다. 그야말로 이미지가 갖는 힘이다. 국가대표 북한의 작가들이 당의 지령을 받고 그린 포스터이기에 작가 개인의 주관적 취향과 개성이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말 그대로 국가 공인 객관적인 시각자료인 것이다.

자! '천리마 운동'이 새롭게 보이시는가? 어쩌면 북한을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지름길은 북한의 포스터를 연구한 결과물을 함께 학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북한 '천리마 운동' 포스터를 넓고 깊이 들여다 보면 당시의 시대상과 변화가 입체적으로 포착된다. 텍스트로 받아들인 북한의 사회상과 변화의 기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지난 8월부터 틈틈이 고민하여 지난 주 있었던 세계북한학 학술대회에서 관련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북한 인민의 사회문화사: 1950년~1960년대 포스터를 중심으로). 그러나 안타깝게도 ‘흥행’이란 차원에서는 大실패였다. 순수 청중은 채 10명이나 될까? 아직은 북한문화에 대한 수요는 미미한 형편이다. 의례 북한문제라면 '정치>경제>군사,안보>외교>사회>문화'의 순서를 따른다.

관심을 보인 몇몇 언론사에게는 원 이미지 소장자의 뜻에 따라 양해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아쉬움이 남는 학술대회였으나 외교안보라는 고유의 전공분야에서 북한 포스터라는 생소한 문화 주제로 관심범위를 확산하는 일은 일종의 모험이다. 다행히 관련 전문가들의 격려와 지지에 용기를 냈다.

PPT로 정리해 둔 발표용 자료는 북한의 1950년대와 60년대를 소개하는 두시간 짜리 시청각 자료로 손색이 없다. 적당한 기회가 오면 ‘열정페이’로 모시겠노라 다짐해 본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