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대 반일'·'우리 민족끼리'…북한식 파당 프레임에 갇혀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올바른 역사교육, 원로에게 듣는다’ 간담회가 열렸다. 발표자로 나선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사 하는 이들의 절대 다수는 바깥 세계를 잘 모른며 심지어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면서 현 국사학계에 대하여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에 갇혀 있다”고 밝혔다. ‘올바른 역사교육, 원로에게 듣는다’ 간담회는 원로학자들을 통해 現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국정 역사교과서의 필요성 및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취지로 열렸다.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및 주요 당직자, 당 소속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으며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와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발표자로 나서 국사교과서 국정화, 올바른 역사교육에 대한 고견을 나눴다. 아래 글은 송복 명예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어떻게 버렸는가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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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들 중, 영어로 강의 할 수 있는 학자가 몇이나 되는가. 과문의 탓이라 해도 있다면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영어가 아니라면 일본어, 중국어로 외국인에게 한국사를 강의 할 수 있는 학자는 또 있는가? 영어, 일어, 중국어가 아니면, 사료(史料)로서의 한적(漢籍)을 자유로이 읽을 수 있는 학자는 얼마나 되는가. 그 많은 학자들 중에서 이 역시 손가락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라면 도대체 한국사 하는 사람들은 무슨 글, 무슨 말로써 한국사를 연구하는가?

연전(年前)에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저명한 학자가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한다고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사를 듣는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교수가 영어로 강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 학생들이 무슨 재주로 한국어로 하는 한국사 강의를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불문가지로 교수가 영어로 강의할 수밖에 없고, 영어로 강의할 수 없다면 자동적으로 한국사 강의는 요란한 선전과 달리 폐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어로 강의하는 것은 차치하고, 외국 학회지에 나오는 연구물들은 제대로 읽을 수 있는가. 한글로 된 논문들이나 다름없이 이해할 수 있는가. 평생 책을 통해 공부해 왔기 때문에 외국어로 강의는 못한다 해도 저술이나 논문을 읽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자신한다면, 그 저술이나 논문들의 명시적 의미(denotation) 외에, 함축적 의미(connotation)도 파악 할 수 있는가. 「맹자」에서 말하듯 “以意逆志(이의역지)” 할 수 있는가. 글을 읽는 사람이 그 글을 쓴 작자의 원래 의도며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까지 깨칠 수 있는가.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서 그 같은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외국어에 어둡다는 것은 외부세계와 그만큼 접촉이 적다는 것이고, 그것은 상자 안의 수인, 동굴 안의 환영(幻影)처럼 바깥 세계를 모르거나 착각, 착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나는 책을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혹은 여행이나 안식년의 해외거주 기간 등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알 만큼 안다고 자신해도, 그 앎은 지극히 제한된 것이다. 물론 『노자(老子)』에서처럼 “不出戶知天下(불출호지천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훤히 아는, 그러나 그런 사람 수는 너무 적어서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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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바깥 세계에 대한 앎이 얼마나 많으냐 적으냐가 아니다. 그 앎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느냐 있지 않느냐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학문하는 이의 마음이다. 학문을 함에 있어 그 마음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이다. 요지는 학문하는 이의 ‘학문의 열림’이다. 핵심은 학문하는 이의 마음의 세계화, 글로벌 마인드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바깥 세계와 접촉이 많아 바깥 세계를 향해 물리적 창문이든 심리적 창문이든, 창문을 늘 열어놓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열림’이 훨씬 클 것이라는 것, 글로벌 마인드를 더 많이 가질 것이라는 것,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더 물어볼 필요가 없다.

한국사 하는 이들의 절대 다수는 바깥 세계를 잘 모른다. 심지어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한 가지 외국어도 잘 못한다. 심지어는 잘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근거로 감히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가. 대답은 간명하다. 두 가지 점에서다. 하나는 한국사 하는 학자들의 거개(擧皆)는 한국사 외에 다른 나라의 역사는 공부하지 않는다. 한국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도 이웃나라 역사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를 둘러싼 4강(四强)의 역사 즉, 일본사, 중국사, 러시아사 그리고 미국사이다.

조선의 정체(停滯)와 달리 17-18세기 도쿠가와(徳川家康) 시대의 일본은 어떻게 그렇게 발달했는가, 명치유신 훨씬 이전 이미 일본은 조선을 합병하고 중국을 점령할 정도의 국력을 갖고 있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했는가. 17세기 중반 이후 18세기 전(全)기간의 대청(大淸)제국은 오늘날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세계 최강의 국가였다. 하지만 19세기를 넘어서면서 서구와 일본의 반(半)식민지 국가로 전락했다. 그 전락과정을 적어도 60년 이상을 지켜보면서 조선은 계속 반외세 쇄국정책을 썼다. 청국의 그 무엇이 조선을 그토록 폐쇄국가로 만들었는가.

오늘날의 한국분단 70년사는 태평양 전쟁 종전(終戰) 바로 이듬해인 1946년, 김일성을 시켜 단독정부를 수립케 한 스탈린의 한반도 분단정책으로 만들어졌고, 동구(東歐)분할 정책과 같은 스탈린의 한반도 정책은 18-19세기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의 속성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그 러시아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의 지난 70년 분단사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이 불과 2백 년 동안에 어떻게 해서 오늘날 인류의 주가치(主價値)인 자유, 평등,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확장시켰는가. 우리 또한 그 보편적 가치를 떠나서는 이제 살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이같이 이웃나라들의 역사는 바로 우리 역사와 직결되어 있고, 그 이웃나라들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것이 바로 우리 역사, 특히 우리 현대사를 새롭게 보고 확실히 보는 첩경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 나라 언어부터 먼저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한국사 하는 사람들이 이웃나라들의 언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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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한국사 하는 학자들의 대다수는 민족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는 아직도 민족주의(nationalism)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그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다수는 국수주의자(ultranationalist)들이다. 민족주의만 해도 ’아직도 그런 사상’을 하는 판에, 그것도 모자라 앞에 ‘초(超)’니, ’극단의‘ 혹은 ‘과도한’ 이라는 한정어가 붙는다면, 그 학자는 도대체 50년 전 사람들인가 1백 년 전 사람들인가.

‘우리 역사가 최고다. 우리 역사는 자랑할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빛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역사를 만든 우리 조상들은 위대하다. 우리민족은 다른 민족들 보다 강인하고 창의성도 높다. 우리는 우리의 그런 정체성, 우리의 그런 우수성을 지켜야한다’는 자긍심(自矜心)을 갖고 그런 자존심을 간직하는 것, 그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다. 자기 역사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는 것, 그것은 조금도 나무랄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자기 역사에 대해 오직 그 생각만 갖고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닫힌 생각이고 닫힌 마음이다. 역사를 공부하는데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그러한 닫힌 생각, 닫힌 마음이다. 다른 나라도, 적어도 이제 막 생겨난 신생국이 아니라면 우리만큼 다 우수하고 우리만큼 다 빛나는 역사,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선진국 사람들만이 아니라 아직도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 사람들, 심지어는 오지(奧地)에 있는 나라의 사람들도 그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 조선의 정체(停滯)와 달리 17-18세기 도쿠가와(徳川家康) 시대의 일본은 어떻게 그렇게 발달했을까. 17세기 중반 이후 18세기 전(全)기간의 대청(大淸)제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였지만 19세기를 넘어서면서 서구와 일본의 반(半)식민지 국가로 전락했던 이유는 무얼까. 한국사 교과서는 이러한 점을 다루지 않는다. 청국의 전락과정을 60년 이상을 지켜보면서 조선은 계속 반외세 쇄국정책을 썼다. 청국의 그 무엇이 조선을 그토록 폐쇄국가로 만들었을까./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모두가 우수하고 그 모두에게 우리가 배우고 취할 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열린 마음이고, 특히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깊이 간직해야할 열린 생각이다. 그들과 우리, 누가 더 우수하냐, 누가 더 좋은 역사를 가지고 있느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좋은 공부 방법이지만, 어느 것이 낫고 못 하냐, 좋고 나쁘냐를 따지는 것은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연구방법도 공부자세도 아니다. 그것은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그 무엇에도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고 역효과만 가져다 줄 뿐이다.

역사를 가진 모든 민족은 다 의미가 있다. 그 의미가 서로 다를 뿐이다. 그 의미는 생활양식의 다름에서 나타나고, 사고방식의 다름에서 나타나고, 행위유형의 다름에서 나타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름’이다. 그 다름을 존중하고, 그 다름에서 우리가 갖지 못한 것, 우리가 모자라는 것, 우리가 새로이 찾고 개발해야 할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열린 마음이고 열린 학문을 하는 길이다.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는 그 열린 마음을 닫게 하는 것이고 열린 공부, 열린 학문을 저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숙고해보면 그 대답은 자명해진다. 삼척동자(三尺童子)라도 왜 그러한가를 안다. 구태여 학교에 가서 배우지 않아도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안다. 그것을 꼭 한국학 하는 사람들만이 모르고 있다고 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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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한 시대의 사상이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 특유의 사상을 갖는다. 어떤 사상이든 그 시대 특유의 산물이다. 민족주의는 19세기 후기와 20세기 전기의 사상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독일, 이태리 같은 후발국(後發國), 여타 지역에선 우리와 같은 약소국가들이 자기를 지켜내기 위해 고양(高揚)했던 사상이다. 특히 우리와 같이 식민지 경험을 가졌던 나라들은 민족정신을 고취(鼓吹)하고 민족심을 불러일으키고 민족의기를 불태우고 민족단합을 강화하는데 이보다 더 유용한 사상은 없었다. 우리의 지난날을 한번 돌아보라. 적어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불탔던가. ‘민족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엉엉 우는 사람들 그 때 그 시대에는 많았다.

지금도 그러한가? 지금 지구상에서 제대로 된 나라치고 ‘민족’, ‘민족주의’를 말하고 외치는 나라가 있는가? 민족주의에서 으레 내세우는,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고 있는 나라가 여전히 존재하는가. 있다면 유일하게 북한이고, 또 있다면 한국 내에서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이고, 또 있다면 미상불(未嘗不) 한국사 하는 학자들 중 상당수를 점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는 절대로 ‘우리 민족끼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르치고 외치는 사람이 아직도 없는 것이 아님에도,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은연중 그리고 경험으로 그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을 살리고 우리민족을 지키는 길이 민족주의며 ‘우리 민족끼리’가 아니라 그 민족주의, ‘우리 민족끼리’를 초극해서, 세계의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 속으로 뚫고 들어가, 그들의 세계관 그들의 물질관을 수용하며, 그들의 사회구조와 산업체계 안에서 공급과 수요를 창출해내는 것, 그 길이 바로 우리가 살 길이고 우리를 지키는 길이란 것을 치열했던 해외 경험을 통해 알아냈기 때문이다.

   
▲ 오늘날의 한국분단 70년사는 태평양 전쟁 종전(終戰) 바로 이듬해인 1946년, 김일성을 시켜 단독정부를 수립케 한 스탈린의 한반도 분단정책으로 만들어졌고, 동구(東歐)분할 정책과 같은 스탈린의 한반도 정책은 18-19세기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의 속성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그 러시아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의 지난 70년 분단사도 제대로 볼 수 없다./사진=미래엔 국사교과서 현대사 첫페이지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성취(大成就)는 바로 그렇게 해서 이루어낸 것이다. 2차 대전 이후의 신생국들, 140여 개국이 넘는 그 나라들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반성취(同伴成就)한 나라, 그리고 유일하게 ‘선진국 진입 성공’이라는 신화를 쓰고 있는 나라, 그것은 더 이상 ‘우리 민족끼리’라는 ‘우물 안 개구리’ 행태며 사고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60년대 이래 해외로 뻗어나가며 지구촌 곳곳을 누비면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렬했던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이겨내서 더 넓은 세계로 도약해 나간 우리 국민들이야 말로 드물게 우수한 사람들로 칭찬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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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북한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민족끼리’ 뿐이다. 지난 세기, 60년대 이래 북한이 성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공장, 일제가 남겨준 철도와 도로, 일제 강점기의 그 산업수준 그 사회수준을 넘지 못한 채, 일제시대의 우물 안에서 그 우물 안의 개구리로 여전히 살고 있다. 그 시대 그 우물 안에서 외쳤던 구호가 ‘우리 민족끼리’이고, 그 ‘우리 민족끼리’에서 자동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이 ‘친일 대 반일’이다. 그 60년 전의 구호, 그 60년 전의 프레임을 여전히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친일 대 반일’의 프레임은 한국사 연구자들에서 보듯이 너무 고루(固陋)하고 고루(孤陋)한 것이다. 너무 낡아서 발전의 가능성이 없어진 것이고, 너무 세상과 동떨어져 변통의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삶의 지향, 삶의 가치, 국가발전에 역류(逆流)하는 것이고 역기능(逆機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 수명이 다했다.

생명이 다한 것은 어떤 수를 써도 살아날 수가 없다. 죽은 것은 빨리 땅속에 파묻을수록 좋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식 비명이고 ‘친일 대 반일’이라는 북한식 파당(派黨)구분의 프레임이며, 그 추종 세력들의 맹종형(盲從形) 역사심리이다. 그래서 자기와 다른 소리를 내는 교과서에 대해 “테러리스트 김구, 깡패 유관순”이라는 기상천외의 허황된 괴담까지 만든다. 제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생명이 다한 것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마지막 기름 한 방울에 매달려 등잔 불꽃이 다시 살아나기를 제아무리 고대해도 최후의 순간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누구보다 한국사 하는 사람들이 왜 한국사가 그렇게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지,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자국 역사연구보다 한국사 연구가 왜 탈바꿈하지 못하는지, 어째서 한국사연구의 지평이 그렇게 좁고 그렇게 낡은지, 이 모두 한국사 연구자들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한국사 연구, 그것은 오로지 한국사 연구자들의 책임이다. 쇠퇴와 위기는 안에서 먼저 오는 것이지 밖에서 먼저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사 연구자들은 밖을 먼저 탓한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