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선동 정치인·시민운동가 교과서부터 읽어보라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교육부가 현재 검정체제인 <한국사> 교과서를 2017년부터 국정화(國定化)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주장들 중에서도, 다양한 사고(思考)의 필요성이나 교과서 편찬의 자율성 같은 것을 그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일․독재 미화’니 ‘역사왜곡’이니 하면서 거리로 나서는 일부 정치인이나 시민운동가들의 행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소리를 하려면 적어도 새로 나온 한국사 교과서를 보고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2017년 이후에 나올 <한국사>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는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긴가?

나는 궁금하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그 책들을 한번 읽어보기라도 했는지 말이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들을 다 살펴본 입장에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사>교과서는 어떤 식으로든 수술대에 올라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제를 미화하라거나, 전태일에 대한 서술이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저질러졌던 잘못들을 빼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균형은 맞추라는 이야기다.

‘역사 왜곡’운운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보천보전투나 조선의용군에 대한 기술을 줄이고 유관순을 다시 집어넣거나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면 그게 ‘친일미화’인가?

대한민국의 건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헌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 정권의 성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기술한 것을 바로 잡는 것이 ‘역사왜곡’인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독재니, 압제니, 탄압이니 하는 말들을 쓰면서, 김일성-김정일에 대해서는 ‘권력강화’니 ‘권력독점’이니 하는 말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는 것을 바로잡으면, 그게 ‘독재 미화’인가?

제주 4․3사건이나 10․19 여수․순천사건(여순반란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노근리 사건, 보도연맹원 학살 뿐 아니라, 공산폭도들에 의한 양민 학살, 6․25때 공산주의자들이 2만 2000여명을 학살한 영광대학살 사건도 가르치는 것이 ‘역사 왜곡’인가?

   
▲ 서울중등교장평생동지회가 지난 16일 광화문 청계광장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울중등교장평생동지회 회원들은 정부의 중학교 역사 과목,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의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사진=미디어펜
<한국사> 교과서들은 과거 역대 권위주의 정권들이 ‘반공’을 정권연장이나, 비판세력 탄압에 악용했고, 각종 인혁당 사건이나 동백림 사건 같은 공안사건들을 조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자행한 이승복 학살, 육영수 여사 암살, 8․18도끼만행사건, KAL858기 피격 사건 등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런 걸 가르치면 ‘유신시대로 돌아가는 것’인가?

개발연대에 노동자들이 처한 참담한 현실을 온 몸을 던져 고발한 전태일의 얘기는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부부와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함께 통곡하면서 “우리 후손들에게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물려주자”고 다짐했던 ‘함보른의 눈물’도 가르치면, 그게 ‘독재미화’인가?

경제는 노동자의 힘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기업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오늘의 조국을 건설한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김우중 같은 기업인들의 이야기도 소개하자는 게 그렇게 부당한 얘기인가?

지금의 교과서는 각종 심화학습 코너에서 독재에 항거했던 학생, 시민들의 성명서와 수기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해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머슴살이에서부터 시작, 평생 근면․절약해서 결국 부농으로 우뚝 선,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도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던 전설적 새마을운동 지도자 하사용 선생 같은 분의 수기를 소개하면, 그게 ‘유신’을 찬양하는 게 되나?

누가 햇볕정책을 교과서에서 빼자고 했나? 햇볕정책도 가르치되, 제2차 연평해전에서 온 몸에 중상을 입고 84일간 투병하다가 결국 숨진 박동혁 병장을 치료했던 군의관의 수기도 나란히 소개하면, 그게 ‘냉전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인가?

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 같은 북한의 통치이데올로기를 소개할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탈북자들의 처절한 수기도 함께 보여주어야 ‘북한 바로 알기’가 되는 것 아닌가?

없는 사실을 있다고 하는 것, 거짓말을 하는 것만이 ‘왜곡’이 아니다. 있었던 사실을 없다고 하는 것, 역사의 일면만을 가르치는 것도 ‘왜곡’이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바로 그런 왜곡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