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처럼 자연스러운 격차를 인정해야 ‘해피 대한민국’이 될 수 있어
세상에 동일한 것은 없다. 동일한 사람도 없다. 외모, 성격, 능력, 감정, 의욕 등 모두 다 제각각이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산물 역시 모두 다 다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격차를 줄이자, 격차를 없애야 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하곤 한다.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지, 격차를 인정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동일하게 만들려 하면 자연의 조화는 깨진다고 취지에서 자유경제원은 자유주의 학자들과 함께 ‘격차, 그 지극한 자연스러움’ 격차에 대한 제2차 세미나를 열었다. 아래 글은 세미나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반대한민국·반시장 역사교과서로 배운 ‘헬조선’ 세대

윤서인 만화가와 이근미 작가는 개인적 경험의 차원에서 격차가 동기부여의 시작임을, 그리고 조우석 평론가는 박정희 대통령의 차별의 철학이 대한민국 경제성장과 새마을 운동의 성공을 가져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세 분의 주장의 공통점은 인간에게는 질투의 본능이 있지만 격차를 인정하고 노력하여 뒤쫓아 가는 경우 격차는 줄어들고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에도 해당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학업 성적에 A, B, C, D, F라는 차이와 격차가 없다면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수업에서의 발표와 레포트는 형편없어질 것이다. 중고등 학교의 평준화가 가져온 결과는 학생들의 학력의 저하에 따른 어디에도 쓸데없는 무능한 인력의 양산이다. 이는 대학에도 영향을 미쳤고 공대 졸업생들의 학력이 저하되어 첨단 IT 관련 기업들은 내국인 인력을 채용을 주저하게 되는 현실이다.

기업 격차의 불인정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평준화를 위한 최근의 경제민주화나 동반성장 정책이 한국 경제성장율의 하락을 가져왔음은 명확하다. 좌승희 교수가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백년동안, 2015)에서 지적하듯이 “박정희의 산업화 패러다임인 ‘자본주의 기업부국 패러다임’과 ‘정치의 경제화와 경제적 차별화’라는 성공요인이 바로 현재 (한국이 – 필자 추가) 부딪치고 있는,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의 유효한 해결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경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과거 중국이나 북한을 뒤로하고, 해양으로 진출하여 외국과 경쟁하면서 부강해졌다. 특히 이웃인 일본이라는 경제 선진국과의 격차를 인정하고 따라하고 따라가서 유사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에 (질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본받을 수 있는 일본이라는 이웃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그러한 길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Look East!”의 구호로 따라하였고, 중국은 경제개방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의 길을 벤치마킹했다. 중국은 경제개방 시작 당시 박정희의 근대화 과정을 따라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했었다. 흑묘백묘(黑猫白猫)론에 기초하여 나라를 근대화시키기 위해서라면 가릴 것이 없었고, 이웃한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의 길은 위대해 보였다. 만일 중국이 과거의 중화(中華)의 중심이며 대국임을 내세워 한국과의 격차를 인정하지 않고, 모방하지 않았었더라면 지금 중국의 경제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지옥 같은 헬조선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 떠나라. 다른 나라로 이민 간다 해도 아무도 붙잡지 않는다. 당신의 자유이고 선택이다. 헬조선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꼭 한번 살아보라./사진=jtbc영상캡처

이제는 도리어 한국에 과거와 같은 잘하는 기업에 대한 인정과 밀어주기가 존재하지 않고, 여론으로 끌어내리고, 온갖 정부규제로 제약하며, 나아가 동반성장으로 대기업의 과실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평등의식이 팽배해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격차를 인정하지 않는 배 아파하는 의식만으로는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격차를 인정하고 노력하여 성공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요즘의 잘하는 기업 협박하여 – 과거에 투자했고 미래 투자를 위해 쓰고자하는 기업유보금 - 빼앗는 방식과는 반대로 기업들을 경쟁시켜 맷집을 키우고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게 했다.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기업 격차 인정,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성장 전략이었다. 진정으로 중소기업을 소중히 여기고 키웠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쟁을 통한 성장 방식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민간기업에 대한 인식은 위의 중소기업 성장 정책의 기초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과 같은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경제활동의 자유를 누리며 자신의 창의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경쟁이야말로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다, 자유경제체제하에서 궁극적으로 경제질서를 움직이는 것은 민간기업이다.”(박정희, 『민족중흥의 길』, 1978, p.126, 구본호, 김은미, p.192에서 재인용.)

박정희 혁명정부는 신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하였다. 왜? 빈곤추방을 혁명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고, 그 성과를 달성한 중소기업은 우대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이 되었고, 결국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수출성과를 낸 잘한 기업우대를 정경유착 비리로 단죄하는 것은 반박정희 세력의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또 박정희 대통령식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대기업 육성정책으로 만드는 역사의 조작이고 이해 부족이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하듯이 박정희 대통령을 정경유착이라는 부패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것과 유사하다.

   
▲ 지난 10년간 해외이주자는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헬조선’ 한국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다./자료제작=미디어펜

『아시아의 다음 거인(Asia’s Next Giant)』에서 앨리스 앰스덴(Alice Amsden)은 박정희의 성공 전략을 ‘competition’ (수술 경쟁)과 ‘benefit/penalty’ (지원/벌칙)에 의한 ‘discipline’ (기율)의 적용이라는 3 단어로 정리하고 있다. 기업에게 수출 경쟁을 시키고 경쟁에서 이긴 기업에게는 ‘충분한’ 보상과 격려로 보답했다. 이것이 기업이 죽도록 열심히 국제시장에 경쟁하여 성공하고 국내에서도 성공하게 한 전략이고 비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 초기부터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을 중점적으로 적극 지원하였던 이유는 대기업이 잘했기 때문에, 즉 단기간 내에 경제적 성과를 내야하는 (혁명) 정부의 입장에서 경제발전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대기업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경제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하여 국제 경쟁을 이겨내고 높은 수익을 가져온 대기업 투자를 우대한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쟁에 살아남는 기업을 우대하는 원칙으로 경제를 운용한 자유시장주의자였다. 대기업이라서 대기업을 우대한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내고 잘하기 때문에 우대한 것이다. 성과의 격차를 인정했다. 그래야 목표한 성장을 신속히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잘하는 기업우대가 경제성장을 가져왔음은 지금의 못하는 기업 우대하고 중소기업, 골목상권 지원하여 경제성장이 곤두박질치는 정책과 크게 대비된다. 중소기업을 차별하는 정책이 아니고 잘 하는 기업을 키워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공생하는 메카니즘에 주목했던 것이다. 결국 대기업이 번영해야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서로 단절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 대기업이 성장하고 그 사업영역을 넓히면 대기업의 지도 아래 많은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과 같이 경제발전초기에 있는 나라에서 성장잠재력이 크고 높은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는 대기업을 진흥시키는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박정희, 1969, p.348, 구본호, 김은미, p.193에서 재인용).

이로 볼 때 박정희 대통령은 자본과 기술축적이 덜 된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번영은 대기업의 성공에 달려 있음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고 하겠다. 정부와 경제의 협력관계와 동일하게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협력관계를 이해했던 것이다. 정치가 경제를 협력관계로 인식하고, 또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협력관계로 인식하게 하여 서로 배우고 함께 나아가게 했다고 하겠다.

   
▲ ‘헬조선’이 아니라 ‘헤븐조선’…한국 떠나지 않는 사람들. 재외동포 700만 중, 국적포기자는 지난 5년간 소폭 하락했다./자료제작=미디어펜

최근 일부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비하(卑下)하면서 반(反)대한민국, 반(反)시장경제, 반(反)기업 의식에 매몰되어, 자신의 처지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누어 과거 배고픈 보릿고개에도 하지 않았던 가난 ‘조상 탓’이나 숙명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곰곰이 검토해보면 ‘헬조선’, ‘탈조선’을 주장하는 세대나 집단은 그러한 인식을 반대한민국, 반시장경제, 반기업으로 점철된 역사 교과서와 선생님들에게서 배운 것으로 생각된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를 주장하며 사회격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해븐 조선’ 또는 ‘해피 조선’으로 만드는 왕도는 불만에 차 사회를 비판만 하고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빠르게 적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주는 성공의 동기부여는 격차를 통해 만들어진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