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단일 교과서라 해서 다양한 해석 수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현행 역사교과서에 대한 문제점은 결국 역사교과서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아이들이 배울 역사교과서는 정설에 입각해야 하는데, 소수 역사학자들과 그들의 사관이 교과서에 투영되고 그것이 反대한민국 관점으로 집필되어 있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역사는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경제·정치·철학·사상·문화사 등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학문이다. 그래야만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볼 수 있고, 대한민국이 어떻게 기적을 이룩했는지, 우리의 미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역사는 소수의 공급자들의 통제에 볼모잡혀있다.

이에 자유경제원은 역사학자들에게만 역사를 맡길 수 없는 이유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짚어보고, 역사교육의 바른 길을 모색했다. 아래 글은 21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국사교과서 실패 연속 세미나 4차 ‘역사학자들에게만 역사를 맡길 수 없는 이유’에서 토론자로 나선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학과 교수

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시작하는 말

조그마한 촛불이 횃불이 되고, 들불로 번져 전국토를 불태우고 있다. 역사 교과서가 현재 같이 큰 정쟁으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10월 4일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금성출판사의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민중사관에 입각했다고 주장하면서 국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졌다.

금성출판사 교과서에 대해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 수정 없이 100만부 이상 배포됐다. 이 교과서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2005년 3월 '교과서포럼'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한국 근현대사 개설서 집필에 착수했고, 2008년 3월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기파랑)가 출간됐다. 2013년에는 교학사 교과서가 발간되었지만, 교육 현장에서 거의 채택되지 못했다. ‘해방 전후사 인식’의 역사관이 역사 교육을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중ㆍ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검정과 국정을 왔다 갔다 했다. 1974년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되었다. 2003년부터 교육이 시작된 고교 『한국 근현대사』는 검정이었지만, ‘국사’는 국정이었다. 2011년에는 고교 ‘국사’와 ‘한국 근현대사’가 ‘한국사’로 통합되면서 검정으로 발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검정이 필요 없는 ‘교사용 지도서’는 좌편향 기술이 교과서보다 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다시 국정화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2015년 10월 국정 복귀가 확정되자, ‘교과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국사 교육의 목적과 목적 설정의 주체

여러 논의에 앞서 우선 중ㆍ고등학교에서 국사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가 검토되어야 한다. 목적에 따라 교과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은 목적 설정의 주체이다. 국사 교육의 목적과 목적 설정의 주체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본다면 목적을 결정하는 주체는 국가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주체는 교육부다.

현재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할 것인가 검정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정이든 검정이든 그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진영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검정 교과서의 경우에도 국사 교육의 목적이나 내용을 출판사나 집필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교육부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검정 체제에서는 출판사들이 집필진을 구성하여 교과서를 만든 다음, 그 내용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사를 받는다. 대부분의 다른 검정 교과서의 경우에도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이 개입한다. 따라서 검정 교과서의 경우에도 그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이다.

   
▲ 국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과 바람직함을 내세워 검정을 지지하지만, 다양성이 국정이냐 검정이냐에 달린 문제는 아니다. 국정 단일 교과서라 해서 다양한 해석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검정의 경우 교과서가 다양하기 때문에 해석이 다양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한 종의 교과서이기 때문에 교실에서 다양성 해석을 접하는 것은 아니다./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국사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국사 교과서는 국사 교육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도구이다. 교과서를 가지고 교사는 교육을 통해 목적을 실현한다. 현재 국사 교과서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국사 교육이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목적을 실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며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다.

현재 일부 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우리 역사에 자긍심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 13일 청와대 회의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올바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자라나도록 가르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사 교과서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국사 교육의 목적이 ‘대한민국의 정통성, 자긍심, 자부심을 가르치고 키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국사나 한국사 교과서의 지침이 되는 <교육부 교육과정>에도 그것이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는다.

1973년 국사과 일반목표에 ‘민족사의 정통성’, ‘문화민족의 후예로서 자랑을 깊이 하게 한다.’라는 대목이, 1974년 국사과 목표에 ‘민족적 자부심’이, 1981년 중학교 교육 과정에 ‘역사적 정통성’이, 1981년 고등학교 국사과 교육 목표로 ‘역사에 대한 긍지를 배양하며, 자주적인 태도로 민족 중흥에 이바지 하게 한다.’라는 대목이, 1987년에는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자주적 역사에 대한 긍지를 지니며’라는 구절이, 1992년 ‘국사’의 성격에 ‘민족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1997년 ‘국사’의 성격에도 ‘민족의 정체성’이라는 말이 나온다. 1997년에는 문제가 되었던 <한국 근ㆍ현대사>가 들어온다. 그리고 2010년까지는 정체성과 자부심이라는 말이 사라진다. 그러다가 2010년 ‘한국사’의 성격에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 문화에 토대를 둔 세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함양하게 한다.”라는 구절이 다시 나온다.

2012년 고등학교 <역사>의 교육과정에는 아예 이러한 언급이 없고, <한국사>에는 “학습자가 세계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과 한국 문화를 토대로 둔 세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함양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한국사’ 과목의 구체적 목표에는 이것이 빠졌다. 2015년 9월에 발표된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고등학교 <한국사>에서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정체성을 가진 세계인으로 성장하게 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라는 개념은 우리 역사나 한국사 교육의 목표가 된 적이 없다. 다만 ‘역사적 정통성’이나 ‘민족의 정통성’이 1973년과 1987년 교육과정에 나올 뿐이다.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1997년 나왔다가 그 다음부터 정체성, 자부심이라는 말도 사라졌다가 2010년에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최근에 발표된 교육과정에서는 ‘자부심과 정체성을 가진 세계인’이라는 말이 나올 뿐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라는 말은 없다.

단일 교과서와 역사적 사실과 해석의 문제

역사 인식론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가 자연과학과 같은 객관성을 획득할 수는 없다. 역사에는 불가피하게 선택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랑케가 주장한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에 대한 서술로서 역사는 종언을 고했다. 그렇다고 모든 역사가 ‘현대사’라는 역사 관념론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역사가의 의도에 따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은 선택된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사실이고 해석은 해석이다.

사실은 사실이고 해석은 해석이기 때문에 단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현재 역사 교과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 건국과 북한 건국의 의미, 이승만 ·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주화와 산업화에 대한 기여와 권위주의적 통치, 산업화ㆍ민주화 과정 등에 대한 서술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사실은 하나이나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특정 해석을 강요할 수는 없다.

   
▲ 국사 교과서는 국사 교육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도구이다. 교과서를 가지고 교사는 교육을 통해 목적을 실현한다. 현재 국사 교과서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국사 교육이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목적을 실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사진=연합뉴스

국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과 바람직함을 내세워 검정을 지지하지만, 다양성이 국정이냐 검정이냐에 달린 문제는 아니다. 국정 단일 교과서라 해서 다양한 해석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검정의 경우 교과서가 다양하기 때문에 해석이 다양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한 종의 교과서이기 때문에 교실에서 다양성 해석을 접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과 국정ㆍ검정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발행되지도 않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두고 ‘역사 왜곡 교과서’, ‘친일 미화ㆍ역사 왜곡 교과서’, ‘친일ㆍ유신 교과서’ 라고 예단하는 것은 지성적 태도가 아니다.

해석의 다양성은 어디까지 수용되어야 하나

동일한 사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역사 인식론의 기본 전제를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중ㆍ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가 모든 해석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 공동체 사이에서 허용될 수 있는 다양성과 국사 교과서에서 허용될 수 있는 다양성은 구분되어야 한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중ㆍ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그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국사 교과서는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들은 피차에 서로 남침과 북벌을 위하여 그 가냘픈 주먹을 들먹이고 있지 아니 하였는가 …….”라고 6ㆍ25관련 서술을 하고 있다. 중ㆍ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가 아무리 다양성을 수용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북한은 자주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반면 남한은 외세 의존적이고 불의의 나라라는 해석은 수용될 수 없다. 이런 해석들이 사실에 입각한 해석인지에 대한 논의는 제쳐두고,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에 포함시킬 수 없다. 국사 교과서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