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공동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특별다수제로 국민 기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KBS 사장 선임 과정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KBS이사회 야당 추천 이사들은 물론이고, 새정치민주연합, 민언련과 같은 단체들이 갑자기 또 특별다수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선 점이다. 미디어내일이 취재한 사실에 의하면 여당 추천 이사들은 야당 측 이사들이 사장 후보 공모 일정에 합의를 다 해 놓고 갑자기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는 일정을 늦추자 요구했다고 한다.
 
21일 후보를 추려 면접대상자를 선정하는 날에도 특별다수제 등을 요구하다 다수 이사들이 받아주지 않자 회의도 멋대로 보이콧했다. 그날 이사회가 끝난 후에야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사장 선임절차를 강행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은 7인의 다수 이사에게 있다”고 여당 측에 책임을 모두 덮어씌우는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새정치연합 측은 그 다음날 "KBS 사장 인사를 청와대와 여권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지금까지 진행돼 온 KBS 수신료 인상 논의를 전면 중단하겠다"며 여당을 압박했다.

특별다수제는 ‘더 나은 후보자’를 뽑을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민언련과 같은 친언론노조 단체들도 일찌감치 사장 선임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고, 후보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하며, 특히 특별다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야당과 언론노조, 민언련 등 친야 단체들의 이러한 주장들은 마치 진실인양 다수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리고는 여당이 다수의 힘만 믿고 마치 야당을 무시하고 사장 선임 절차를 강행이라도 한 것처럼 왜곡된 이미지를 얻게 됐다. 소수 이사들은 처음부터 이점을 노렸던 것 같다.

다수인 여당 추천 이사들에 소수를 무시하는 횡포를 부렸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씌우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정을 다 합의해놓고 막판에 그런 식으로 등에 칼을 꼽는 행태를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특히 “합리적 논의를 통해 더 나은 후보자를 선출하자는 제안을 다수의 힘으로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후보자를 선출하려는 일련의 과정”이란 식의 주장은 차라리 비방과 음해에 가깝다.

   
▲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처럼 KBS를 마비시킬 특별다수제는 새누리당이든 새정치민주연합이든 꺼내선 안 된다. 사진은 지난해 6월 KBS 양대 노조와 직능 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장 선임 관련 특별다수제 도입 및 사장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야당 측 이사들이 이렇게 공정한 사장뽑기의 유일무이한 방법인양 떠드는 특별다수제란 제도는 필자를 비롯한 논객이나 양심적인 언론학자들이 이미 여러 번 언론을 통해 설명했다. 쉽게 비유하자면 다수당이 법안 하나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거는 국회선진화법과 비슷한 제도다. 자력으로 하려면 현 300석 기준으로 180석(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을 얻어야 가능한, 야당에 코를 꿰게 돼 있는 제도다.

명분만 그럴듯한 실은 우리 정치현실에서 최악의 제도가 국회선진화법이란 얘기다. 이 제도는 국민이 과반 이상을 만들어줘 봤자 180석 이상을 얻지 못하는 이상 소수 야당이 뻗치기로 나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것처럼 특별다수제는 KBS이사회가 사장 선출과 같은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는데 11명의 이사 중 8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가능하다. 현재 여야 구도가 7대 4라는 구도를 감안하면 야당 이사 1명 이상의 찬성을 반드시 얻어야 사장 선출이든 뭐든 이사회 운영이 제대로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별다수제는 다수를 왜곡하는 지능적인 꼼수, 여야 모두 포기하라

누누이 강조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이든 특별다수제든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적대적 여야 정당정치, 좌우이념대결의 현실에서 이런 제도는 정상적인 제도의 운영을 막는 하나의 거대한 장애물로 작용할 뿐 소통이나 합리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다수의 의지가 실현되는 것을 방해하려는 소수의 지능적인 방해수법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듯, 특별다수제를 주장하는 야당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특별다수제를 하자고 하고, 법을 고치면 된다. 자신들이 다수일 10년 동안엔 아무 말이 없다가 소수가 되니 이제와 하자는 건 다수의 뜻대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꼼수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놓고 다수당의 횡포 운운하면서 적반하장식으로 여당 측 이사들을 비판하고 책임을 덮어씌운다는 건 너무나 속 보이는 정략이다.

어찌됐든 KBS 사장은 26일 결정이 난다. 다시 사장을 뽑게 될 3년 후가 되면 어떤 정권이 들어섰을 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이든 여당이든 간에 특별다수제 운운하면서 이번처럼 지저분한 방해작전은 없길 바란다. 우리의 정치현실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특별다수제는 다수의 뜻을 방해하려는 소수의 못된 꼼수제도에 불과하거나 여야의 적당한 타협 속에서 가장 무능한 최악의 사장을 만드는 제도에 불과하다.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처럼 KBS를 마비시킬 특별다수제는 새누리당이든 새정치민주연합이든 꺼내선 안 된다. 다수가 지지하는 사장이 나오고 그 사장 체제의 KBS를 비판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지 이도저도 아닌 여야의 합의로 무능한 사장이 나와 KBS를 말아먹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야당과 언론노조도 특별다수제에 대한 가증스런 위선은 이제 그만 거두고 정직해져야 한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